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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인연의 끈을 잡고 있는 사람

캘리그래피 프리즘


친구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늘 생각나는 얼굴이 있다.

이름만 불러도 입꼬리가 올라가고, 백만 년 만에 전화를 해도 아침에 통화한 것처럼 스스럼없고 편한 사람.



우리의 호칭은 ' O 여사 '

' O 여사 잘 지내셨소~ '

결혼한 여자를 높여 부른다는 의미를 적용하기엔 그녀는 싱글이고, 사회적 지위를 따지기엔 둘 다 별 지위가 없으니, 우리 사이의 여사라는 호칭은 장난과 애정이 적당히 범벅된 별칭이다.



O여사는 몸이 불편하신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싱글이다. 

나이로만 따지자면 벌써 애 둘쯤 있을 나이인데, 나이와 결혼이 필수불가결이 아니니 결혼을 권하고 싶지는 않지만, 살면서 맞닥뜨려야 하는 수많은 상황들을 혼자 감내해야 하기에, 옆에서 지켜보는 친구로서 애달프고 짠하다.


O여사는 내 고등학교 절친의 친한 친구이다. 

절친과의 약속에서 우연히 만나 연락처를 나눈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 고등학교 절친보다 지금은 더 돈독한 시간들을 쌓아가고 있다. 

우리 인연은 재미있는 우연이 겹쳐서 만들어졌고, 처음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 내 절친과 몇 년간에 걸쳐 지지고 볶으며 만들어왔던 시간과 우정이라는 감정들이 한순간에 응축되어 와 닿는 기분이었다.    


함께 보낸 시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서로의 감성이 맞닿아 있었고 생각의 결이 비슷했다.

그런 통에 내 절친은 한동안 가자미눈을 하고 우리 사이를 시샘했다 ㅎㅎ



우리 삶에 수많은 만남이 있고 그 만남에 각각의 이름이 붙어 있다면, ' 마음속 친구'라는 이름의 실 한쪽 끝을 잡고 있던 사람을 비로소 만나게 된 것 같았다.


친구라는 관계도 몇 번의 연이 거듭되어 인연이 되었으니, 부부의 인연은 필연적인 운명일 것이다. 


대학생일 때 친구의 언니는 30대 중반으로 당시 우리 기준에는 노처녀였다.

생명공학 연구소에 다니는 언니는 학창 시절부터 수재 소리를 들었지만, 공부 외에는 도통 재능이 없어 보였다. 

그런 언니에게 아는 분이 잘 어울릴 것 같다며 소개팅을 주선했지만, 결혼에 관심이 없던 언니는 몇 번의 거절로 소개팅은 무산이 되었다. 



몇 년이 지나 나이 40에 접어든 친구 언니가 별안간 결혼 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며 친구들 모두 박수를 치며 기뻐했는데, 알고 보니 형부 되실 분이 몇 년 전 지인이 소개팅해주려고 했던 그 상대인 것이다. 

더 신기한 것은 이번 인연의 주선자는 또 다른 사람이라는 것! 


몇 년 전 형부도 결혼에 관심이 없던 터라 누가 소개팅을 해준다고 했을 때 어렵게 거절을 했었는데, 그 상대가 바로 친구 언니였던 것이다. 

그 소리를 듣고 결혼식에 간 우리(단체로 솔로였던)는 만날 사람은 결국 만나게 되어 있다면서, 서로를 위로하며 모두 일말의 희망을 갖게 되었다.



서로 같은 곳을 마주 보고 있지 않으면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되지만,

부부라는 이름의 실을 잡고 있는 두 사람이었기에, 오랜 시간이 지나 서로 먼길을 돌아왔지만 결국 서로를 발견한 것이다.



운명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없을 것만 같던 내 끈의 끝을 잡고서, 온 우주를 헤쳐 내 앞에 발걸음을 멈추고 서 있는 그 사람을 발견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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