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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빼미와 눈썹달 하나

괜찮아, 지구별엔 누구나 처음인걸

올빼미가 되어가나 보다.


출퇴근이 없는 프리랜서에게 하루의 마감은 직장인의 아침 눈뜨기만큼이나 치열하다.

직장인의 아침은 1초의 어긋남 없이 울리는 알람 소리에 1분만 더, 5분만 더를 외치며, 날카로운 현실과 포근한 꿈 사이에서 방황한다. 

한동안 현실과 꿈 사이의 줄다리기가 이어지지만, 출근시간이라는 데드라인 덕에 달콤한 꿈을 접고 어느 순간 눈을 번쩍 뜬다. 


반대로, 프리랜서에게 잠자리에 드는 시간을 지키는 것은 직장인의 아침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온종일 들려오던 도심의 소음이 잠잠해지고, 어둠만큼이나 차분하게 내려앉은 분위기는 집중하기에 최고의 시간을 마련해준다.

나오라고 유혹하는 맑은 하늘과 나부끼는 나뭇잎도 보이지 않으니 낮동안 방방 뛰었던 마음도 제자리를 찾은 양 고요하다. 



밤에 듣는 음악은 왜 이리 더 좋은지.

오후 내내 미적거리던 일도 척척. 

그렇게 밤을 즐기다 보면 어김없이 새벽 2시.


그나마 다른 작업을 하고 있을 때는 2시라는 나름의 데드라인을 지키려고 노력하지만,

붓을 들고 있는 날이면 한 장만 더!, 딱 한 장만 더!, 마지막으로 한 장만 더!! 를 외치다가는 3시.

어쩌다 반짝이는 영감이 오시는 날에는 이 시간마저 엿가락처럼 늘어난다. 


  

아침 출근이 없으니 어느 때 자는 것이 딱히 문제 될 것 없어 보이나,

수면 일정량의 법칙이라도 있는지, 늦게 잔만큼 늦게 일어나는 시간이 문제다. 


어느 날은 오랜만에 잘 움직이는 붓에 취해 한참을 놀다가 잠이 들었는데, 눈을 떠보니 12시! 

하루의 반이 사라졌다. 

여름이야 해가 길어 그나마 괜찮았는데, 요즘같이 해가 노루 꼬리만큼 짧아질 때는 눈 뜨고 몇 시간 만에 다시 밤이 되니, 하루를 도둑맞은 기분이 들었다. 



그날도 늦은 밤을 보내고 있었다.


잠들 준비를 하며 열린 창을 닫으려고 내다본 하늘은 고요했다.

유난히 어두운 밤. 

잘 다듬어진 눈썹달 하나가 떠 있었다. 

긴 속눈썹을 아래로 내리깔아 새초롬하게 보인 눈썹달이 그날따라 더 차분해 보였다.



깊고 고요한 밤이라 그랬을까. 

그 가느다란 눈썹 위로 세상의 무게를 모두 짊어지고 홀로 이 밤을 지새우고 있는 듯했다.

평소에는 툭 하고 건들면 여지없이 두 동강이 날 것 같았던 가느다란 눈썹달이, 그날따라 강단 있어 보였다.

세상을 구할 힘은 없지만, 잠시라도 우리에게 눈을 붙일 틈을 벌어주고 있는 것처럼 의연했다.

그런 달을 보니 위안이 되었다. 


그래, 다들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구나.

서로에게 손을 내밀어주지 않아도,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고 있는 요즘, 

여린 듯 보이지만 굳센 달 하나가 홀로 밤을 지키고 있었다. 




캘리그래피 by 정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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