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그래피 프리즘
밀당은 썸을 타는 연인들만 한다?
밀당은 썸남썸녀, 신혼부부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불꽃같은 신혼을 지나 교집합을 만들어가는 10년 차 부부도, 눈빛만 봐도 익숙한 20년 차도, 사랑보다는 의리로 서로를 지킨다는 30년 차도 밀당은 필요하다.
밀당은 자칫 기선 제압을 위한 단순한 감정 소모전으로 보일 수 있지만,
악기로 치면 제대로 된 소리를 내기 위한 조율 과정이고, 옷으로 치면 내 몸에 딱 맞는 옷을 짓기 위한 마름질에 준한다.
부부가 된다는 것은 서로 다른 두 세상이 만나 하나의 우주를 만들어내는 과정의 연속이다.
누구 한 사람의 무던한 인내와 완벽한 희생으로 만들어진 유리막 같은 세상이 아닌, 따로국밥처럼 각자 나름의 본성을 지니면서도 국밥이라는 이름으로 묵직한 뚝배기에서 조화롭게 맛을 내는 것이 부부다.
국밥이 제대로 된 맛을 내기 위해서는, 이른 새벽부터 재료를 다듬는 손길과 맛을 내기 위한 오랜 경험과 정성이 필요하듯, 부부도 건강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 서로의 합을 맞춰가야 하는데, 이 합이 일종의 밀당이다.
밀당은 관계 속에서 배려와 존중이라는 기본 하에
완급을 조절하는 완충제 역할을 한다.
밀당에는 반드시 수평관계에서 쿵하면 짝하고 서로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한다.
밀고 당기는 관계에서 한 사람의 일방적인 승리만 있다면, 그것은 합을 이루기 위한 발걸음이 아닌 종속으로 향하는 내리막길이 될 수도 있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배려와 존중이 필요하지만, 밀당은 더더욱 배려와 존중이 쿠션감 좋은 매트리스처럼 기본이 되어야 한다.
알고도 모른 척 끌려가 주는 배려와 이끄는 대로 따라와 주는 상대에 대한 존중이 없다면, 멋대로 당기는 상대의 힘에 지쳐 스스로 끈을 놓아버릴 수 있으니, 건강한 밀당의 필수조건은 완급 조절이다.
단합대회의 단골 레퍼토리인 줄다리기가 경기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잡고 있는 이 끈을 놓지 않을 거라는 상대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양쪽 모두 기를 쓰며 버티는 것처럼, 밀당도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20년 차도 밀당이 필요할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지 않은 것이 있을까?
현악기는 한동안 방치하면 줄이 느슨해지고, 견고하게만 보이는 콘크리트도 시간이 지나면 경도가 변하며,
결이 멋진 고가구도 눈길을 주지 않으면 뿌연 먼지에 고유의 광택을 잃고 만다.
오랜 관계는 익숙함을 주기에 편안한 듯 보이나, 자칫하면 무뎌지게 되어 시간 속에 잠식당한 체 고착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럴 때, 노화된 피부에 리프팅이 필요하듯 사랑이라는 이름하의 관계에도 밀당이라는 양념이 필요하다.
20년 차 밀당은 아마도 썸을 타던 그때와는 다르게 설렘과 풋풋함은 없어질 테지만, 서툰 시간들이 지나고 상대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깊어진 만큼 좀 더 고급스럽고 성숙했을 테지.
연인이나 부부뿐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는 어떤 형태이건 어떤 감정이건, 분명 건강하고 긍정적인 관계를 위해서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마치 건강한 맛을 위해 좋은 재료를 찾아 조리법을 꾸준히 발전시키는 것처럼,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는 다른 모양과 강도로 삶을 살아가는데, 밀당이라는 양념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캘리그래피 by 정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