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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스박씨 Nov 22. 2018

독박 육아의 시작

 아이를 통해 낯선 세상을 읽다 - 3

Best. Day. Ever. _그래 그랬던 것 같다.....

   밴드에 온 이후 8개월 정도의 시간은 아내가 아이들을 돌보았다. 엄청난 인고의 시간이었음은 독박 육아의 경험이 있는 부모들을 알 수 있을 듯하다. 외국에서의 이 시간이 특히나 힘든 이유는 주위에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네 명의 언니가 있지만 함께 해줄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아내에게 그 부분은 정말 큰 허전함이었을 듯하다.

8개월짜리 쌍둥이와 3살을 갓 넘긴 동물 수준의 남자아이...

이들과 누구의 도움도 없이 한 공간에서 반년을 함께 한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미치지 않은 게 용한 일이 아니었나 싶다. 퇴근 후 도와주는 것 정도로는 도움의 기별도 가지 않는... 아내에게 한 최고의 몹쓸 짓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는 천국과 같은 시간이었다. 캘리포니아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렌트비로 방 3개, 넓은 리빙 스페이스를 가진 하우스를 렌트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친정과 시댁을 오가며 지내 온 문간방 살이 삶의 설움에 비하면 2막의 시작은 우리에게 충분히 화려했다. 리빙룸은 전체를 아이들의 놀이 공간으로 꾸몄다. 인디언 텐트 안에 아이들이 뒹굴뒹굴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었고, 벽에는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모든 결과물들을 전시했다. 작은 이케아 테이블과 의자를 놓아주고 창가 쪽에는 미끄럼틀을 놓아주었다. 아이들은 온종일 엄마와 거실에서 시간을 보내며 엄마가 한가해 보이기라도 하는 듯 온갖 일거리를 만들어 줌과 동시에 어느새 우리의 전부로 자리한 우리 가족 안에 없어서 안될 존재들이 되어갔다.

앞뜰에서 담소도 나누시고
'밖에 눈 온다!!'

재하가 창밖을 보고 소리쳤다. 정말 새벽 내내 내린 눈이 온통 세상을 새하얗게 덮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정말 많은 눈이었다.  2016년 겨울은 밴드에 30년 만에 기록적인 대설이 내린 해로 기록되었다. 밴드에서 가장 오래된 초등학교의 강당 지붕이 내려앉는 일이 생겼다고 하면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밴드는 일반적으로 겨울에 눈이 많이 오는 편이다. 특히나 산 쪽에는 11월 중순부터 눈이 차츰차츰 쌓이기 시작해서 12월 말이면 절정에 이른다. 본격적인 스키시즌이 시작된다.

눈은 아이들을 자연스레 문 밖으로 모이게 했다. 온 동네 아이들이 길거리에 나와 눈으로 미끄럼틀을 만들고 눈사람을 만들어 집 앞에 새워놓는다. 그 모양도 가지각색이다. 이 이색적인 풍경에는 어른들도 함께 하는데 눈 덮인 거리를 크로스컨트리 스키를 타고 동네를 이동하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눈으로 인해 밴드는 어느 순간 아이도 어른도 즐길 수 있는 놀이의 공간으로 변한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자라난다. 생각이 자라고 손과 발, 몸이 자란다. 밴드는 몸소 그것은 어린아이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님을 증명한다. 자연이 사시사철 다른 모양으로 우리에게 제공하는 여러 놀이를 통해 아이도 어른도 같은 것을 보며 함께 자라 간다. 그렇게 밴드가 선사하는 자연의 매력은 독박 육아로 찌든 어른들의 마음도 차츰 풍요롭게 만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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