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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스박씨 Nov 29. 2018

이웃의 새로운 이름

 아이를 통해 낯선 세상을 읽다 - 4

얀, 퀸, 홀든

    밴드에서의 시작을 가장 따뜻하고 인상적으로 시작하게 만들어 준 이름들은 얀, 퀸, 홀든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을 둘러싸고 있는 세 집의 아이들의 이름이다. 모두 우리 아이들보다 나이가 많은 12세 전후의 아이들인데 세 집 모두 비슷한 시기에 동네에 들어와 아이들이 3살 정도쯤부터 이웃으로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그동안 오랜 시간 이웃의 이름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지냈지만 사실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는 못했었다. 하지만 밴드에서의 이웃의 모습들을 통해서 어린 시절 골목골목 아이들이 모여 함께 하루를 놀이로 보내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학교가 끝나면 하나둘 아이들이 모여들고 

방과 시간이 끝난 오후면 아이들이 하나둘 집 앞 공터에 모여든다. 차가 다니는 길이긴 하지만 양쪽으로 'STOP

사인이 있어 그리 차들이 바삐 다니지 않는 길이다. 차들도 그 시간 아이들이 나온다는 걸 아는 듯 느릿느릿 주위를 살피며 다닌다. 퀸은 주로 스케이트 보드나 롱보드를 가지고 나와 기술을 연마하곤 한다. 점프하고 착지하는 모양새로 보아 꽤 오랜 기간 그렇게 시간을 보냈던 듯하다. 홀든은 자전거를 타는 걸 좋아하고 때론 농구공을 가지고 나와 놀기도 한다. 얀은 그들과 함께함을 즐기는 듯하다. 각기 다른 선호들이 있어도 어느덧 함께 놀고 있는 모습을 본다. 놀이 안에서 모양새를 바꾸며 새로운 재미를 찾는다. 스케이트 보드로 기술을 익히던 퀸은 어느덧 얀을 롱보드에 앉히고 멀리서부터 속도를 내어 마치 봅슬레이를 하듯 길을 활주하고 있고 홀든은 도착지에서 차가 오는지 안 오는지 확인한 후 출발 사인을 보낸다.

 

겨울이 되니 모양새는 달라지나 놀이는 계속된다. 제설차가 밀고 지나간 가장자리는 계속 쌓인 눈으로 아이들 키만큼의 눈산이 생겼다.동네 아이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미끄럼틀을 만들어 서로를 밀어주어 재미를 더하고 있다. 아직 어린 우리 아이들은 창밖으로 그 모습을 보며 '아빠! 우리도 나가자!'를 반복했다. 우리는 그들의 놀이에 참여하진 못했지만 집 앞에 작은 이글루를 만들고 그 앞을 지키는 눈사람을 만들었다. 첫째 재하가 웅크리면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이글루에 재하,로하,재인이는 차례로 들어가며 나를 보며 배시시 웃는다. 그 모습을 본 이웃 아이들은 잠시 본인들의 즐거움을 멈추고 우리에게로 다가온다. 아직 영어를 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할 수 있는 의성어들과 손짓 발짓을 동원해 이웃 아이들과 소통하려고 시도한다. 아이들은 키를 낮추고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기 위해 집중한다. 이내 무슨 뜻인지 이해했는지 아이들을 도와 눈두덩이를 굴리며 커지는 눈덩이처럼 재미에 재미를 더한다.

아이들이 자주 놀던 그 길은 어느새 눈으로 덮혔다.
나이 40에 어린 시절을 떠올리다

어린 시절 작은 골목길에 살았던 나에게 무한한 놀이를 제공해주었던 것은 그 ‘골목길’이었다. 골목길 벽에 약간 벗겨진 벽면을 손으로 뜯으면서 그 뜯기고 난 흔적들에 즐거워했다. 또 골목길 끝에 있던 재개발을 위해 버려진 집의 모든 것은 새로운 장난감이었다. 기어가는 개미들도, 가끔 찾아오던 잠자리들도 모두 새로움을 가져다주는 좋은 친구들이었다. 밴드에서 만난 이웃 아이들은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그 모든 것이 놀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기억하게 했다. 그렇게 여섯 아이들의 웃음 속에서 어린 시절 친구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재하와 둥이들의 삶에도 이웃이란 이름의 새로운 관계가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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