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스박씨 Nov 30. 2018

어쩌다 어른

 아이를 통해 낯선 세상을 읽다 -5

회사의 도움으로 밴드 초기 정착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집을 구하는 동안에는 임시로 거주할 공간을, 차를 구하는 동안에는 렌터카를 제공해주었다.

빚을 두려워하는 남자 vs 빛을 보고 싶은 여자

처음 정착 단계에서 나를 제외한 가족들은 엘에이의 언니 집에 잠시 머무르면서 집이 구해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집은 이미 구했지만, 입주까지 기다리고 있던 상황이었다. 다음 단계는 가족이 탈 차를 구입하는 것이었다. 

캘리포니아 시절 내내 10만 마일이 넘는 중고차를 타고 생활했다. 그 시절 호기 있게 아내에게 '중국 갔다가 오면 새 차 사자!'라고 말했었다. 이젠 지켜야 할 순서였다. 

일단은 SUV냐 미니밴이냐의 갈림길에 놓였다. 이 부분에 대한 결정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애들 카씻을 세 개나 설치해야 하는데 당연히 미니밴으로 사야지.'

두 번째는 일본/한국계 미니밴이냐 미국계 미니밴이냐의 문제였다. 이 부분은 상당한 고민이 필요했다. 객관적으로 보면 당연히 일본 회사 모델의 미니밴을 사야 했지만, 문제는 미국계 미니밴은 엄청난 세일과 옵션들이 추가된 상태였다. 뭐든 직접 경험해봐야 한다고 했던가. 시승을 하고 나서는 생각이 바뀌었다. 미국계 미니밴의 승차감은 생각 이상으로 딱딱한 느낌이었고, 그 부분에 대해 아내의 반대로 일본 회사의 미니밴으로 생각을 정하게 되었다. 이 역시도 나는 밴드에서 아내는 엘에이에서 시승해보는 번거러움을 감내해야했다. 

마지막 관문은 마지막답게 큰 다툼을 불렀다. 

'왜 그런 옵션이 필요한데!!!'

무언가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여자와 남자가 사용하는 생각의 영역은 다름이 분명하다. 언제나의 결정에서 나는 경제상황 안에서 사용가능한 재정을 정하고 그 안에서 기능적으로 적합한 옵션을 찾는 구조로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그러나 아내는 결정 앞에서 기능보다는 편리와 아름다움 기준으로 문제를 해결해 가는 경향이 있다. 어찌보면 역방향의 해결 구조이다. 함께 차를 보러 다녀도 쉽지 않았을 텐데 따로 알아보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협상은 북미회담만큼이나 쉽지 않았다. 대화 가운데 나는 무능력한 남편이 되고,아내는 개념 없는 여자가 되기도 한다. 결론은 나지 않고 감정만 상하게 하는 무의미한 대화로 서로의 힘을 빼놓기도 한다. 그렇게 인생 최대의 지출은 즐거움과 기대보다는 실망과 감정싸움으로 결론이 나는 듯하다. 

전혀 다른 방식의 삶을 살아온 두 남녀가 함께 살며 삶에서 중요한 문제들을 결정하며 살아간다. 거기에 아직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지 모를 세 아이까지...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서 어쩌면 불가능한 일을 저지른 건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흘러가기에 남편이 되고 부모가 되는 것이지 엉망징창으로 주어진 역할들을 살아가고 있는건 아닌지...

막다른 길에 놓인 것 같은 감정의 코너에 몰릴 때 가장 먼저 생각하는 단어가 있다. 

맞네. 너희 둘도 평생 함께 할 관계구나..
'관계'

날 중심으로 거미줄처럼 이어진 관계들, 나와 내 아내를 중심으로 연결된 관계들, 아이들과 우리 가운데 연결된 부모와 자식이라는 끈들.. 우당탕탕 살고 있지만 우리를 다시 일어나게 하고 협상의 테이블로 다시 나가 상대의 생각을 다시 한번 듣게 하는 원동력은 관계의 끈이다. 그것은 비단 날 중심으로 한 관계만을 고려함은 아니다. 아이가 만들어가는 관계의 시작점이었던 나와 아내라는 관계, 지금은 먼 곳에 있지만 부모와 자식으로 연결되어 자식의 삶을 지켜보고 계신 한국에 있는 가족, 그 외에도 수많은 관계들... 아이들에게 말뿐이 아닌 삶의 과정과 그 결과를 통해 알려주고 싶은 것이 어쩌면 이 관계 가운데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관계의 끈은 생각의 차이를 넘어 또 한발짝 나아갈 공간을 만들어준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웃의 새로운 이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