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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스박씨 Dec 01. 2018

자연과 친해지기

 아이를 통해 낯선 세상을 읽다- 6

    오랫동안 도시 문화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게 자연과 친해진다는 건 사실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니다. 이제 '친해지다'라는 관계의 개념을 알기 시작한 아이들에게는 좋은 시작점이었다. 하지만 부모에게는 모든 일이 도전이었다. 아이들이 자연과 친해지도록 도와주기 위해선 낯선 감정이 즐거움의 감정으로 바뀔 때까지 기다려주는 인내가 필요했다.


Deschute River_ 물과 친해지기

밴드 중앙을 가로질러 흐르는 Deschutes River는 많은 놀이를 선사해준다. 강을 만나기 위해선 적게는 30분 많게는 몇 시간을 운전해서 찾아가야 하는 다른 도시와는 달리 밴드에서 강을 만나기 위해선 단 5분 이내의 시간이 필요하다. 인내의 결실은 달다. 하지만 또 다른 도전을 야기시킨다. 아내는 밴드에 오고 난 두 번째 해, 여름 내내 강가에 나가 있었다. 아이들은 매일같이 강에서 시간을 보내고 집에 와선 모자랐는지 욕조에서 물놀이를 계속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수영복을 찾고, 물안경과 구명조끼를 입고 하루를 보내는 건 어느덧 일상이 되었다.

여름의 시작 즈음에...
'아빠! 구스 보러 가자!'_동물과 친해지기

밴드에서는 계절마다 만날 수 있는 동물들이 달라진다. 물론 각양각색의 애완견들은 어디서나 볼 수 있고 갓 겨울이 지난봄에는 먹이를 찾아 동네로 내려온 사슴 가족들을 만날 수 있다. 지나가던 차들도 사슴을 만날 때면 서행하며 그들의 식사를 방해하지 않도록 도와준다. 창문을 내리고 반갑게 인사하는 아이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너희들이 살던 곳을 내어줘서 고마워...

사슴이 동네로 내려온다는 것의 의미는 밴드 역시도 그들의 서식지였기 때문이다. 그들의 서식지에 사람이 들어와서 살게 된 것이지 사람의 마을에 사슴이 내려왔다는 말은 맞지 않다. 동의도 구하지 않고 그들의 보금자리에 들어와 집을 짓고 내 집, 내 땅이라고 한다. 이미 당연시된 도시의 삶에서 벗어나 도시화와 자연 경계에 있는 밴드에 오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자연은 원래 그들의 것이었다.

집 앞 마당의 풀을 뜯는 사슴 가족

거위 가족 역시 어디서나 마주할 수 있다. 특히 해 질 녘 어린 새끼들을 이끌고 잔디밭으로 산책 나온 모습은 아이들의 시선을 주목시킨다. 어미들이 아이들을 보호하고 한 줄로 서서 길을 지나가는 모습은 마치 우리 내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이런 광경에 익숙한 사람들은 산책을 멈추고 모두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도록 기다려준다. 거위 가족들도 이에 익숙한지 사람의 등장을 의식하지 않고 새끼들을 인솔해서 목적지로 향한다. 그곳의 유일한 방해꾼은 재하와 재인이었다. 거위를 만져보겠다고 슬그머니 다가가지만 이내 거위의 움직임에 뒷걸음질 친다.

재인아. 조용히 해! 도망갈꺼야.

발맞추고 눈 맞추고 _산과 들과 친해지기


자연이 주는 작은 행복들을 충분히 느끼기 위해서는 내 안의 볼륨을 줄일 필요가 있다. 아이들과 함께 한다는 것도 비슷할 때가 많다. 아이들과의 산책은 단어에서 오는 따뜻함과 거리가 멀 때가 많다. 아이들의 눈에는 어찌 그리 많은 것이 보이는지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때론 업어야 하고 때론 안아야 한다.

         

  빨리 가자... 엄마 앞에서 기다려...

  잠깐만 아빠. 저것 좀 봐봐.


로하의 말에 익숙해졌던 것들을 슬그머니 내려놓는다. 걸음걸이를 늦추고 평소에 보지 않던 무릎쯤에는 곳을 응시한다. 아이의 눈높이에 익숙한 곳. 한참을 그곳에서 왜를 반복한 로하는 또다시 몇 걸음 걸어가 이번에는 바닥에 웅크리고 앉는다. 아이 옆에 함께 앉는다.


 이 꽃 예쁜데 따다가 엄마 가져다줄까?

 꽃이 아플 것 같은데?


그렇게 한참 로하와의 대화를 지속하고 다시 걷기 시작한다. 로하를 끌고 가다시피 하던 발걸음은 어느새 로하의 작은 보폭에 맞춰졌고 몇 번의 대화로 기분이 좋아졌는지 로하의 발걸음이 경쾌하다. 도착하고자 하는 목적지까지는 좀 늦어졌지만 로하와 나 사이의 거리는 좁혀진 것 같았다.

함께 걷기

'이청득심'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친해지다'란 단어 안에는 마음을 얻다의 의미가 들어있다. 자연은 언제나 우리에게 마음을 열고 있는 듯보이나 사실 우리가 귀를 열고 관심을 갖기 전까지 자연과 친해지기까진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내 소유라 언제나 내 뜻대로 될 것 같은 아이의 마음도 눈을 맞추고 어눌하지만 또렷하게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을 때 비로소 얻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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