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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스박씨 Dec 08. 2018

도전과 친해지기

 아이를 통해 낯선 세상을 읽다_ 쉬어가기 1

    아이들과 친해지는 것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글로 풀어내려고 결심한 데는 '왜 내 아이와 굳이 친해지려는 노력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마주할 수 있을 듯하다. 본의 아니게 시작한 유학길이 해외에서의 생활과 맞물려 전혀 다른 문화권의 장소들을 경험해왔다. 참 축복된 이야기이다. 어쩌면 누군가에겐 꿈꾸는 삶의 모습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삶에는 꾸준히 기회비용이 발생하고 지난 삶의 궤적 가운데서도 끊임없이 선택과 포기는 존재해왔다.


한국 - 샌프란시스코 - 광저우 - 밴드...

한국뿐만 아니라 현재 거주하는 미국에서도 근 몇 년 사이 '노매드(Nomad)라는 단어가 자주 거론된다. 유목민이라는 의미를 닮고 있는 이 단어는 삶의 거주지를 한 곳으로 정하고 가정을 꾸리고 살던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국가나 지역의 경계 없이 여러 곳을 누비며 살아가는 현세대의 달라진 주거관이 담겨 있다.

나 역시도 큰 틀에서 디지털 노매드라고 불릴 만한 시간을 보내왔다. 하지만 가족에 대한 가치를 높이 여기는 개인적인 성향 탓에 가족과 더불어 노매드 생활을 해야 했다. 개인 혹은 소규모의 가족 중심으로 움직이는 일반적인 노매드의 모습과는 달리 여러 가지 고려할 문제들이 발생했다. 그렇다면 디지털 노매드 생활은 가족으로 인해 포기해야 할 방식일까?

안정 vs 도전


제한되게 주어지는 시간 가운데 얻고자 하는 여러 가지를 함께 얻기 위해서는 정확한 선택과 고도의 집중이 필요했다. 유학시절 많은 쾌락의 덫이 주위에 존재했지만 결혼으로 인해 떠안게 된 책임의 무게는 이른 시기에 우선순위를 정해 차선을 포기하게 했다. 꼭 졸업을 해야 했고 이와 더불어 취직을 통해 미국에서의 삶을 계속해나갈 수 있는 신분의 보장이 필요했다. 생각해보면 이때부터 삶의 기울기가 개인보다 가족 중심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운 좋게  취직이 되어 일을 시작한 이후에는 미국 사회의 특성상 다음을 위한 개인적인 노력이 필요했다. 포트폴리오를 준비해야 했고, 직무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는 노력이 요구됐다. 이와 더불어 아이를 갖기 위해선 몇 번의 이직이 필요했다. 그만큼 샌프란시스코의 물가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큰 압박이었다.  

쳇바퀴 돌듯했던 3년의 시간이 지나가던 어느 날, 다음 3년을 생각을 하게 되었다. 손 안에든 선택지는 2가지였다. 현재와 비슷한 어찌 보면 예상 가능한 미래가 보장된 3년의 시간이냐, 아니면 중국이라는 새로운 장소에서의 시작이냐. 두려움보단 도전에 대한 기대가 앞서서였을까. 구체적인 리서치도 없이 중국행을 덜커덕 결정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마음 한편에 한국과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고 싶은 맘이 작동했던 것 같다. 그 당시 재하는 2살과 3살 사이를 살고 있는 아이였다.

다름 vs 틀림

중국행을 결정하고 잠시 쉬어간 여행에서 뜻밖의 결과물이 생겼다. 쌍. 둥. 이. 그 결과물들은 모든 계획을 바꿔놨다. 중국의 의료환경이나 생활환경의 차이로 인해 가족들은 한국에 나는 중국에 거주하며 생활하는 것이 결정되었고, 어찌 보면 고통스럽던, 그러나 화려한 디지털 노매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중국에서의 시간 동안 많은 경험을 했다. 여행의 경험이 아닌 문화와 사람에 대한 경험. 우리가 틀리다고 생각했던 것이 어떤 공간에선 맞음이 되는 것을 보았고, 다름을 인정해야 관계가 시작되는 것을 경험했다. 그 경험에 의하면 문화와 가치의 차이를 마주할 때 우리에게 두가지 선택지가 주어진다.

다름을 인정하고 넓은 관용으로 수용하거나, 다름으로 인한 불편함을 받아들이지 않고 무시 혹은 배척하거나.

누구나 전자를 선택할 듯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나는 다름 속에서 살아갈 내 아이들에게 어떤 아빠의 모습으로 그려질까? 미래의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질 아이들과 나는 함께 걸을 수 있을까?

두려움 vs 기대

지금의 삶은 결국 나의 결정에 따라 흘러간다. 한국에 있었다면 그렇게 무겁지 않을 결정의 무게가 외국생활을 이유로 꽤 묵직하게 느껴진다. 언제쯤 다시 고국에 돌아갈 수 있을까? 5년 후에 나는 과연 지구 어느 곳에서 살고 있을까?

아이들은 내 결정 위에서 그들의 삶이 결정되고 있다. 의도하지 않게 두 개의 이름을 갖게 되고, 두 가지 언어로 삶을 시작하게 되고, 그리운 한국의 가족들을 화상 너머로 만나야 한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자랐다면 다름이 이렇게 삶의 큰 의미가 아니엇을지도.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말이다. 하지만 내가 결정한 이 길 위에 선 아이들은 다름 안에서 본인이 선택지를 만들고 결정을 해나가야 한다. 두려운 일이며 기대되는 일이다. 앞으로의 나의 선택지와 아이들의 선택지는 어떻게 쓰여져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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