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은 비를 타고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비가 내리면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오래전 아트시네마에서 ‘사랑은 비를 타고’라는 영화를 세 번 보았다. 한 번은 부모님과 함께 보았는데, 그날은 평일 오전이어서 다른 관객이 없었다. 부모님과 나, 우리 가족이 극장을 전세 내다시피 하고 보았는데 비가 내리면 가끔 그날이 생각난다.
‘사랑은 비를 타고’는 진 켈리가 1952년에 감독과 주연을 한 영화로 MGM이 배급한 뮤지컬 로맨틱 코미디 영화다. 1927년과 1928년을 무대로 무성영화에서 유성 영화로 바뀌는 시대적 배경가운데 생기는 에피소드들을 위트 있게 담았다. 여자 주인공은 데비 레이놀즈고 도널드 오코너가 조연이다. 뮤지컬 영화답게 노래를 하며 춤을 추는 씬들이 많은데, 놀라운 것은 이 씬들이 대부분 원테이크 원컷이라는 점이다.
영화의 원제 ‘Singin' in the Rain’을 부르며 내리는 비 사이로 춤을 추는 진 켈리나 도널드 오코너가 ‘Make ’Em Laugh’를 부르며 춤추는 장면도 편집 없이 한 컷으로 찍었는데 가히 압권이다. 근래 가장 유명한 뮤지컬 영화인 라라랜드는 여러 뮤지컬 영화의 씬들을 오마쥬 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사랑은 비를 타고’다. 멋진 춤과 노래, 꿈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라라랜드의 바탕에 이 추억의 영화가 있는 것이다.
‘사랑은 비를 타고’를 보며 기뻐하던 아빠의 모습은 지금도 선명하다. 아빠는 영화를 좋아하셨다. 영화를 볼 때마다 시네마스코프며, 옛날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를 줄줄이 읊으셨다. 시네마스코프 화면은 가로 세로의 비율이 2.35: 1로, 표준 규격인 1.33: 1에 비해 가로의 비가 훨씬 크다. ‘사랑은 비를 타고’는 1953년 시네마스코프 대형화면 시대가 열리기 전에 4:3 화면으로 제작된 영화지만, 그럼에도 멋지게 잘 만든 뮤지컬 영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은 비를 타고’에서 비를 맞으며 춤추고 노래하는 '진 켈리'의 명장면을 떠올리지만, 나의 경우 도널드 오코너가 먼저 떠오른다. 조연인 그의 춤과 노래가 진 켈리보다 더 근사하다는 아빠의 말씀 때문이다. 그가 춤추고 노래하는 장면을 보면 흡사 날렵한 다람쥐 같다. 춤선이 묵직한 진 켈리와 대비되는 부분이다.
기억을 곱씹다가 영화를 다시 보기로 했다. MGM로고의 사자가 입을 쩍 벌리며 포효하자, 빗줄기가 창문을 세차게 두드렸다.
사랑이 비를 타고, 아니, 추억이 비를 타고 내린다.
덧) 20240611 글쓰기 연습 중 재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