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잠시 스칠지라도
옷장을 열었다. 트렌치코트 두 벌을 잠시 바라보았다. 긴 여름이 끝났지만, 입을 일이 없을 줄 알았다. 오늘의 온도계는 가을을 말하지만, 도로에는 낙엽이 거의 없는 기묘한 시간이다.
더우니까 집에서 에어컨을 틀고, 편하니까 비닐과 플라스틱을 쓰던 나의 과거가 결국 기후위기에 일조했을 테다. 그런 나를, 인간을 비웃기라도 하듯 올여름은 진정 형벌이었다. 더 무서운 건 올해의 여름이 가장 시원한 여름이라는 예고다. 진정 가을이 오지 않을 줄 알았다. 코 끝이 시린 온도차로 맞이한 가을이 반가워서 맨발로 뛰쳐나갈 뻔했다. 조만간 트렌치코트는커녕 바로 겨울옷을 입어야 할 상황이지만, 울긋불긋 단풍도 들이지 못하고 초록잎으로 겨울을 맞이할 나무들을 생각하면 그런 푸념조차 사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록 찰나의 가을이라도 가을은 가을이기에, 생강가루 섞은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가을 온도와 알맞은 그 알싸함에 반가운 인사를 건넨다.
덧) 인별에 같이 올린 그림이라서 필명이 한스푼이 아닌 lac_moon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