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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스푼 Jul 18. 2022

적당한 거리

개 물림 사고에 대한 작은 견해




어릴 적 이웃집에 자주 놀러 갔었다.


그 집에는 엄청 큰 도사견이 있었는데, 늘 철창에 갇혀있었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개는 비록 철창에 갇힌 신세였지만, 윤기가 잘잘 흐르는 털에 고동색 눈동자가 그윽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의 나는 개를 정말 사랑했다. 그리고 겁이 없어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가끔 했다. 주인이 보지 않을 때, 철창 안에 몰래 들어가 나보다 두 배나 큰 녀석의 목덜미를 껴안고 함께 놀은 것이다. 도사는 투견으로도 활약한다. 기본 성정이 만만치 않아 주인도 물 수 있다는 녀석은, 왜 한입거리도 되지 않는 나를 물어뜯지 않고 늘 순순히 자신의 목을 내어주었을까? 돌이켜보면 정말 아찔한 순간이다.



그런데 녀석은 아니지만, 다른 개한테 물린 적은 있다. 아주 자그마한 개였는데, 하필 그 집에 방문한 날 그 개는 새끼를 낳았고 신경이 아주 곤두서 있었다. 어지간해서 나를 보고 짖는 개는 없었는데, 처음 만난 순간부터 앙칼지게 짖어대더니 손 쓸 틈 없이 다리를 물고 줄행랑을 쳤다. 다행히 큰 상처가 아니라 흉터도 남지 않았고 지금껏 개에 대한 트라우마도 없다. 다만 자식을 지키고자 하는 어미개의 보호본능은 지금도 선명할 따름이다.





얼마 전 어린 소년이 큰 개에게 공격당한 일을 보았다. 너무 슬프고 힘들었다. 남의 일이 아니다. 그 소년이 나의 아이라면... 그 아이처럼 개를 무서워하는 나의 아이도 언제든 같은 상황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운이 좋았던 나는 개에 대한 트라우마 없이 살고 있지만, 그 소년은 아주 오랜 기간에 걸쳐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어려운 길을 걸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지금은 몸과 마음에 입은 상처부터 잘 낫길 바랄 뿐이다...


개들은 후각이 발달해 냄새를 아주 잘 맡는다. 게다가 그들은 제이콥슨 기관이라는 특수기관을 통해 호르몬을 탐지하는 놀라운 능력이 있는데, 그것 때문에 자신을 두려워하는 사람에게서 공포의 페로몬을 기가 막히게 맡는다. 이것이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에게 유독 짖어대는 이유다.


또한 개들은 철저한 서열 동물이다. “우리 개는 안 물어요"를 이야기하는 견주는 자신이 키우는 개보다 서열이 위다. 그래서 그 개들은 자신보다 서열이 위인 견주는 절대 물지 않는다.


가끔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키우는 개보다 서열이 낮은 견주들이 있다. 개를 훈련시키는 TV 프로그램에서 입질을 당하는 주인들이 그런 경우다.


서열을 낮게 인식하면 그 대상이 자신을 키우는 견주라도 무는 개들이, 자신 때문에 공포의 페로몬을 뿜어대는 낯선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할까? 그 사람은 무조건 개보다 서열이 낮은 대상으로 인식되고, 개는 그 사람을 향해 끊임없이 짖고 위협하며 기회를 엿보다 달려들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래서 미연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모든 견주는 산책하는 개에게 반드시 목줄을 해야 한다.


올해 새로 바뀐 동물보호법에는, 반려견과 외출할 때 늘어나지 않는 목줄이나 가슴 줄의 길이를 주인의 2M 이내로 유지해야 한다. 또 엘리베이터, 계단 등의 공용 공간에서는 반려견을 직접 안거나 (이것이 제1원칙이다) 목줄의 목덜미 부분을 직접 잡아야 한다.(반려견이 너무 커서 안을 수 없는 경우, 견주가 쭈그린 상태로 반려견 목줄의 목덜미 부분을 잡아 움직임을 통제해야 한다.)  

 * 엘리베이터 같은 경우 장소가 협소하기 때문에 반려견의 미 통제시 개 물림 사고가 더 크게 있을 수 있고, 무엇보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 문 밖으로 튀어나간 반려견이 사망하는 사례도 있다.


개를 사랑하지만 솔직히 개보다도 못한 사람들이 개를 키우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개 때문에 두려워하는 아이를 위해 엘리베이터에서 개를 안아달라고 요청했다가 '대단한 애 xx'를 키운다고 욕하는 견주도 봤고, 목줄 없이 달려오는 개를 향해 '저리 가'라고 발을 몇 번 굴렀더니 왜 '우리 애'한테 큰 소리를 지르냐고 핏대를 세우며 따지는 견주도 본 적 있다. 정작 자신의 개 때문에 겁에 질려 내 뒤에서 울상인 아이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말이다.


그럴 때마다 진심으로 개탄한다. 자신의 반려견이 소중하면 다른 사람의 아이는  소중하지 않단 말인가? 결국 얼마 전 개 물림 사고를 보고 아이들에게 말했다. “개가 덤비는 순간 발로 걷어차거나 개에게 물리는 최악의 순간 눈을 찌르라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지만
오래전 새끼를 지키던 어미개의 보호본능이 내게도 전이되는 순간이었다.


요즘엔 반려견들을 자식처럼 사랑하며 견주 스스로  "엄마", "아빠"라고 칭하는 경우가 많다.


세 번의 반려견과 함께 했지만, 지금은 반려견이 없는 나 역시 자식을 키우는 부모다. 나는 나의 아이들이 올바른 인성을 지닐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교육하고 있다. 가끔 공공장소에서 자녀의 창의력 발달에 지장을 준다며, 정작 다른 이들의 평안히 공존할 권리를 무시하고 자녀가 무슨 행동을 해도 그대로 두는 부모들을 보면 참 안타깝다. 사랑만 받고 자라도 부족할 내 아이들이, 알지도 못하는 다른 이들에게 버르장머리 없는 아이로 인식되는 상황이 정말 내 아이를 사랑하는 올바른 방식인지 자문해 볼일이다.


반려견 또한 마찬가지다. 견주에게는 사랑하는 가족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그저 무서운 개일 수 있다. 페로몬과 서열의 관계를 유념하며 목줄을 생활화한다면 그 누구도 반려견과 견주를 욕할 사람은 없다. 사랑하는 반려견과 외출하는데 누군가의 육성으로 또는 마음속으로 '저런, 개 xx'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면, 그것은 진정 나의 반려견을 사랑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까지도 "개는 무섭지만, 그래도 저 강아지는 정말 예쁘고 사랑스럽구나!"라는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한다면 우리 모두 조금 더 편안한 삶을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모두의
적당한 거리와 상식을 지켜야 할 때다.







제가 만나본 분들 중에는 훌륭한 견주분들도 많이 계셨어요. 엘리베이터에서 자신의 반려견을  안아 처음부터 벽을 바라보고 서있는다거나(반려견들도 좁은 장소에서 사람들많이 만나면 스트레스받는다고 하네요), 멀리서부터 두려워하는 아이의 반응을 보고 바로 목줄을 짧게 쥐고 멀리 돌아가등의 경우도 있었습니다.

 글을 보시고 혹여 반박하신다면 요즘 아이들 말로 '반박   말이 맞음'이라고 하고 싶습니다만, 페로몬과 서열에 관한 내용만큼은 반박을 불허합니다 :)


* 사진출처 : 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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