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추석을 기억하기 위해 쓰다
1. 추석 당일 : 20220910
추석 연휴에 큰 아이와 데이트를 했다. 코로나 덕에 명절 제사가 사라져 한결 가뿐한 추석이었다. 시댁에서 아침을 먹고, "나랑 걸어서 시내 구경할 사람~" 하고 말했는데 큰 아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시댁은 구시가지에서 가깝다. 우리는 시내로 걸어가 주스랑 커피를 마시며 구경을 하다가, 시내버스를 타고 우리 집으로 가기로 했다. 올해 중 1이 된 큰 아이는 나와 보폭이 비슷하고 걷는 속도가 빨라 최적의 길동무다.
그래도 혹시 둘째가 서운할 까 함께 할지 물었더니, 자신은 편하게 집으로 돌아가고 다음에 엄마랑 따로 데이트를 하겠다고 했다. 아이들이 초등 중학년을 넘을 때부터, 한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하기 위해 1 : 1 데이트를 가끔 해 온 덕이다. 둘째를 애들 아빠에게 맡기고 시부모님께 인사를 드린 후 큰 아이의 손을 잡고 길을 걸었다. 한 주 내내 비다 태풍이다 날씨가 안 좋았지만, 추석 당일의 하늘은 너무도 푸르고 맑았다.
키가 훌쩍 자라 나와 비슷해진 아이의 손과 발은 이미 나보다 크다. 변성기를 거친 걸걸한 목소리로 주위를 둘러보며 문이 닫힌 인쇄 거리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한다. 아무래도 추석 당일이라 문을 닫은 곳이 많아 낭패다 싶었는데, 조금 더 걸어가니 다행히 번화가 상점은 모두 문을 열었다. 망고 주스를 사랑하는 아이를 위해 테이크아웃을 하고, 우리는 망고 주스와 아이스커피를 빨대로 마시며 걸었다. 빛나는 햇살이 내리쬐었다.
잠시 후 우리 지역의 유명한 빵집 앞에 10 미터 가까이 줄을 선 사람들이 보였다. 타지에서도 알아주는 빵집이지만 정작 우리는 들어갈 엄두가 안 난다. 골목길엔 그 빵집의 전통떡집과 요리점과 디저트점이 따로 있는데, 이번에 보니 굿즈를 판매하는 문화관까지 생겼다. 굿즈나 인테리어 디자인에 관심이 많은 아이는 바로 문화관에 들어갔다. 빵을 모티브로 한 여러 가지 굿즈가 많았다.
아이는 찬찬히 구경을 하고 작은 마. 테를 기념품으로 구입했다. 그리고 그날의 하이라이트, 맞은 편의 독립서점으로 향했다. 예전에 가끔 들렸던 곳인데, 추석 연휴 낮에도 운영을 한다는 공지를 본터다. 그 서점은 들어가는 문이 잘 보이지 않아 처음 방문하는 사람은 주위를 두리번거리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우아하게 숨어있는 문을 넘어 1 층의 커피를 내리는 공간을 지나 2 층으로 향하는 꿈의 계단을 밟았다.
책들이 정갈하게 진열되어 있는 아담한 서점 내부엔 이미 몇 명의 손님이 있었다. 내가 찾던 소설이 없어서, 아이가 원하는 책으로 두 권 구입했다. 여러 나라를 둘러본 여행기와 마음의 여행을 다룬 소설이었다. 아마도 아이는 여행을 가고 싶은 가 보다. 또래보다 성숙하고 예의 바른 아이의 마음자리가 사뭇 궁금했는데, 조금은 미루어 짐작이 가능했다. 우리는 마음의 양식으로 부푼 가방을 들고 다시 밖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이가 좋아하는 마카롱을 사기 위해 예의 그 디저트점에 들렸다. 여러 가지를 골라 포장을 한 후 지하상가로 내려갔다. 연휴 당일이라 지하상가는 모두 휴점 상태였다. 벤치에 앉아 각자 좋아하는 맛을 골라 먹었다. 달콤함이 입안에 맴돌자 눈이 탁 트였다. 오랜만에 시내를 걷고 시원한 주스와 마카롱을 먹으며 굿즈와 책까지 득템한 아들의 눈도 활처럼 휘며 반짝이고 있었다...
2. 추석 대체휴일 : 20220912
추석날 큰 아이와 데이트를 하고 돌아오며 또 한 번의 데이트를 약속했다. 새로 개점했지만,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아웃렛이 목적지다. 대체휴일에 창밖을 보니 조금 흐리지만, 비예보가 사라졌다. '좋아' 우리는 다시 의기투합했다. 둘째는 이번에도 아빠와 함께 집에서 게임을 하며 푹 쉬겠다고 했다. 대신 다음에는 더 근사한 1 : 1 데이트를 원했다. 준비를 잘해야 할 듯하다.
연휴 끝이라 주차가 너무 힘들 것 같았다. 추석날 시내에서 이동하며 탔던 버스도 좋았다며, 아이와 상의 후 다시 버스를 타기로 했다. 중간에 환승까지 해야 하는 장거리지만, 결과적으로 우리의 선택은 옳았다. 사람들이 별로 없어 계속 앉아서 이동이 가능했다.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을 보며 시원한 바람을 맞았다. 아웃렛에 다다를 무렵 정겨움으로 가득 찬 시골을 지나는데, 싱그러운 초록빛이 너무 좋았다.
지도 어플에서 '띵똥' 소리가 들렸다. 하차를 알리는 소리다. 버스 카드를 태그하고 목적지에 내렸다. 횡단보도를 건너고 혼돈의 주차장 사이로 길을 걸어 아웃렛에 들어가자마자 퍼레이드를 볼 수 있었다. 운이 좋았다. 잠시 후 아웃렛의 풍경을 돌아보니,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쇼핑을 즐겨하지 않는 나로서는 모르는 브랜드 천지다. 그나마 친숙한 브랜드가 있어서 아이가 고른 집업 후드 한 벌을 구매했다.
큰 아이의 행복 item 에는 망고가 있기 때문에 외출 시 늘 망고 주스는 필수다. 이 날 찾은 카페는 건강을 모티브로 한 생과일주스점이었다. 나는 자몽과 생강과 사과가 들은 건강 주스를 마셨다. 생강 때문인지 알싸함이 목에 느껴진다. 약간의 염증이 있었나? 훗, 덕분에 목도 좋아지고 건강해진 기분이었다. 아이는 역시 건물의 구조와 인테리어에도 관심을 드러내며 둘러보았다.
아웃렛을 대략 훑은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근처의 백화점으로 가기로 했다. 그 백화점은 작년에 개점한 곳인데, 나름 지역의 핫 플레이스다. 서울 경기권이 아니라 우리 지역은 이런 곳이 귀하다. 지난여름에 딱 한 번 방문해서 아쿠아리움과 백화점, 타워 꼭대기의 스벅에서 전망을 본 적 있다. 그날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보지 못한 하늘공원에 미련이 남았는지 아이는 다시 가보고 싶어 했다.
이왕 가는 김에 끼니도 챙기기로 했다. 우리는 코 마스크를 하고 연어초밥을 맛있게 먹었다. 출출하던 차에 먹으니 더욱 꿀맛이라고 아이가 말했다. 연어초밥을 먹고 하늘공원으로 향했다. 그곳은 건물 옥상에 자리한 미니 정원이었다. 대나무 숲과 각종 나무들이 있었는데, 지력을 받지 못해 조금 시든 모습이었다. 그래도 탁 트인 전경과 아기자기한 디자인에 아이는 대만족이었다.
백화점 내부를 몇 군데 둘러보고 집에 있는 신랑과 둘째를 위해 다시 초밥을 샀다. 돌아오는 길엔 에너지가 거의 고갈되어 택시를 탔다. 나이가 지긋한 기사님이었는데, 스피드가 장난이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브레이크를 밟는 시늉을 했다. 아이는 곁에서 런닝맨을 보느라 여념이 없다. 아직은 코로나 때문에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이번 추석은 큰 아이와의 1 : 1 데이트가 성공적이어서 너무 즐거웠다는.
p.s. 이 글을 쓰는데 이틀이 걸렸다. 사실을 기록하는 건데도, 왜 이리 필력이 부족한지... 습작을 게을리한 여파겠지. ㅠ.ㅜ 그래도 이 재미없는 글을 끝끝내 쓰는 것은, 아이와의 1 : 1 데이트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자신만의 세상을 구축해 훨훨 날아갈 아이와 함께 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지 알 수 없기에. 훗날 이 글을 보고 추억을 곱씹을 날이 있을까 하여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