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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스푼 Nov 09. 2022

미스트

안개 너머로 힘차게





* 이 글은 영화 '미스트'의 스포가 있습니다.




오늘 아침, 안개 때문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하얀 안개바다를 뚫고 무언가 툭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창문을 여니 지상에서 차 지나가는 소리만 들린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다시 누우려다가 그래도 밥은 먹어야지 싶어서 아침을 먹고 어제 사 온 믹스커피를 한 잔 마셨다. 달달함이 핏줄을 타고 온몸을 깨운다. 비록 중성지방 수치는 올렸지만 덕분에 감각 또한 예민해진다.


간단한 일상툰을 그리면서 "La playa"를 함께 들었다. 갑자기 오래전 보았던 영화 미스트가 떠올랐다.


스포가 싫어서 영화 제목과 '스티븐 킹' 원작이라는 사실만 알고 무작정 극장에 갔다. 속내를 알 수 없는 안개가 화면을 서늘하게 장악하고 이내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니, 이게 뭐야? 이 스멀스멀하고 꿈틀거리는 거대 생명체들의 괴기스러움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런데 녀석들의 모습이 어딘가 낯익다...


평소에 작다고 무시하던 생명체들이 거대화되어 나타난 시각적 충격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불가항력의 파국을 향한 주인공의 선택이 아주 조금은 그럴싸해지는 순간 반전이 생겼다. 나는 무릎을 탁 쳤다. 아, 역시 스티븐 킹이구나. 그가 말하고자 한 것이 이것이었구나. 이 영화는 괴수영화를 빙자한 철학 영화였구나!


사전 정보 없이 괴수영화나 보러 온 것에 대한 후회가 밀려오던 차에 나는 정말 커다란 깨달음을 얻었다. 그것은 그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나의 신념과 사랑의 끈을 놓지 말라는 것이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끝난 게 아니니, 자신과 사랑하는 존재들을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다.


주인공이 고통의 시간 속에 가장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해결 방법에는 너무나 치명적인 오류가 있었다. 그는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사랑하는 존재를 포기하지 말았어야 했다. 극의 초반, 제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며 사랑하는 존재들을 지키려던 단역 배우가 결국 그 대상들을 지켜낸 것을 보며 나는 울컥했다.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안개 너머에 우리를 기다리는 것이 절망 혹은 희망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려도 결국 안개는 걷힐 것이고, 그날이 오면 나의 신념과 사랑하는 존재들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 시간들은 반드시 빛 날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우리네 인생과 닮은 과정일지도 모른다. 수직으로 펼쳐진 나의 시간 속에서 나는 아직 현재에 머무르고 있기에 미래의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현재의 내가 착실히 쌓아가고 있는 이 순간들이 모이고 모여 미래의 내가 있다는 것.


그러니 지금 이 순간, 나 자신을 알고 내가 사랑하는 것을 지키고 무엇보다도 한번 정한 내 사랑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말자. 나를 끝까지 믿고 안개 너머로 힘차게 나아가자...



사진 출처 : 핀터레스트(kevinsday), 네이버 영화 포스터



덧) 예전에 쓴 글이지만, 영화 “미스트”에 관련된 이야기가 있어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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