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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한 Nov 28. 2020

내 만족을 위한 협상 같은 협박

육아는 힘들다. 끊임없는 감정노동. 퇴근 따위 없음!

어느 순간부터인지, 둘째가 말을 안 듣기 시작했다. 흔히 말하는 미운 4살을 지나 5살이 되어서부터였다.

미운 4살이란 말은 이제 고쳐야 한다. 미운 5살, 어쩌면 crazy 한 5살이 아주 정확하고 타인에 대한 우리 둘째를 한 번에 이해시킬 수 있는 전문용어이다. 그리고 이런 둘째에게 항상 따라붙는 단어들이 늘어난다.

'안돼, 하지 마, 혼난다'라는 단어들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이제 둘째한테는 이미 지겹다.

필살기를 꺼내야 했다.

"이거 안 하면 이거 안 해줄 거야"


맞다. 바로 '협상'같은 '협박'이다. 이게 얼마나 좋지 않은 양육방식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교육회사에 다녔을 때 그렇게 하지 말라고 교육했는데 정작 나도 부모가 처음이다 보니 알면서도 무심코 튀어나왔다.


친구의 자녀가 저런 행동을 할 때 내가 해줬던 말들이 생각난다.

'그게 정상이야. 애들이 말 잘 들으면 그게 애냐? 로보트지. 자아가 없는 거지'


근데 그게 막상 내 자녀가 그러니까 상황은 급 반전된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거냐고?'


남의 아이한테는 한없는 서비스가 제공하지만 내 아이한테는 한없는 비즈니스가 제공된다.

왜 그런가 했더니 둘째의 뇌구조가 변하고 있다. 첫째님은 모든 발달 사기가 늦는다. 여전히 12개월, 아니면 17개월 사이의 인지 수준이었다. 그에 비해 둘째는 비장애 형제, 즉 우리가 이제 막 첫 아이의 발달 시기를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말로만 들었던 자기주장이 점점 강해지는 것이다. 이제는 부모님이 하는 말에 더 이상 따르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말하는 시기가 된 것이다.


"둘째야! 치카치카하자"

"싫~~~ 어"

처음에는 장난처럼 말하는 저 대답이 너무 웃겼다.

하지만 요즘은 감정을 실어서 말한다.

"싫어" "안 해" "언니 먼저 해"


실랑이가 벌어진다. 적당한 타협점을 찾기 위한 그놈의 협상 같은 협박을 시작한다. 그럼 둘째의 눈에는 눈물이 나오지 않는 떼쟁이로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울먹인다.

그 모습이 보기 싫어서 화내고 싶지만 겨우 겨우 참고 억지로 억지로 내가 원하는 행동을 강요시켰다. 밥을 먹을 때에도 실랑이는 지속된다.

"버섯은 먹어야 해. 언제나 사탕만 먹을 수 없어"

"싫어. 버섯 안 먹어"


하지만 둘째를 설득하기 위한 문장이 길어지면 이해하지 못한다. 간식만 좋아하는, 당연히 아이들이라면 달고 맛있는 간식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것만 먹고 밥을 안 먹겠다는 둘째 놈을 억지로 끌고 와서 밥을 먹이면서 싫어하는 버섯, 몸에 좋은 브로콜리, 칼슘이 멸치 다음 많다는 시금치를 먹일 때마다 협상 같은 협박을 했다.


'그래... 너도 싫지?? 아빠도 이렇게 협박하는 나 자신이 너무 싫어'

하지만 어떤 부모가 안 그럴까. 내 아이한테는 몸에 좋은 음식을 먹이고 싶은걸.


그렇게 협박을 통해 기쁘지 않은 1승을 한 아빠는 둘째가 갖고 온 책을 읽어준다. 읽어주면서 책에 나오지 않은 글씨인 '아빠가 미안해'를 억지로 넣어서 말한다. 적어도 둘째에게는 전달되지 않지만 내 마음에라도 전달되는 아빠가 미안해라는 말을.


한편으로는 표현을 거의 못하는 첫째님의 답답함에 뭔가를 잘못해주고 있나 라는 미안함 보단 '좋다 싫다 해달라 하지 말아 달라'라고 표현하는 둘째의 응답을 해주지 못할 때가 더 미안할 때도 있다. 그런 미안한 마음들과 함께 잠들 때 천사처럼 보이는 둘째를 보며 나 자신을 반성하고 눈물이 나려다가 둘째의 한마디에 그 슬픈 감정들이 현실로 돌변한다.

"아빠, 잠이 안 와"


"자.. 그냥 자. 눈감으면 잠 와. 아~~ 쫌 ~~~ 자라고!"


젠장. 오늘도 칼퇴는 글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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