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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한 Nov 25. 2020

수면바지 입고 등원시킬 수밖에 없는 이유

아이 등원 옷차림에 대한 진실과 오해

나는 커피 쪽 일을 하면서 근무시간이 오전, 오후로 달마다 스케줄이 변경된다. 오후 근무인 달에는 첫째님과 둘째 등원을 내가 도맡아 한다.

아내는 요즘 장애인권 회복을 위한 연대에 소속되어 임원으로 정말 바쁘게 생활을 한다.

물론 급여는 없다는 것이 함정이지만.


"여보 안 힘들어?"

라고 물어보면 아내는 대답했다.


"회사 생활하는 것 같아서 좋아"

아내는 외국계 회사에서 차장의 지위까지 갔었다. 사무직으로 서류를 열심히 파먹으며 월급을 받았고, 그런 일들을 좋아했기에 연대에서의 일 하는 게 크게 부담가지 않은 모양이다.


어느 날 아침, 아내는 사무실로 출근을 해야 해서 첫째님과 둘째, 그리고 아내와 함께 차를 타고 등원을 하러 가는 길이였다.


코로나 시대이지만 여느 아침처럼 노오란 색의 봉고와 버스가 동네 골목길을 누비고 다녔고, 나도 그들에게 최대한 양보하면서 우리의 길길을 가고 있었다.

저 멀리 노오란 봉고에 어느 부모님이 수면바지에 두꺼운 패딩을 입고 아이를 선생님에게 건네고 있었다.


교육회사 시절 강사님들과 같이 차를 타고 갈 때 친구분이 얘기했던 것이 떠올랐다.


“아침에 아이들 등원할 때 부모들이 복장에 조금 신경 썼으면 좋겠다고. 유치원이나 학교 보낼 때는 부모님들이 그렇게 차려입으면서 어린이집, 유독 가정어린이집인 경우에는 그렇지 않아서 그건 어찌 보면 가정어린이집을 차별하거나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생각이 든다고 하더라고"


그때는 ‘내가 결혼이나 할 수 있을까?’라는 비혼 주의 시절이라 ‘그 부모들 너무하네’하면서 맞장구를 쳐줬다.


근데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역전되었고 만약 내가 아이의 등원을 도맡아서 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그 부모들을 맹비난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난 육아를 하는 아빠의 입장, 아니 그 부모의 입장, 아니 더 나아가 아내의 입장에서 한번 그들의 삶을 들여다봤다.


수면바지를 입은 엄마들, 그 엄마들은 그래도 본인들의 리즈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에도 그랬을까? 그 엄마들도 남 부럽지 않은 몸매와 화장, 깔끔한 옷, 킬 힐, 화려하고 반짝이는 액세서리를 치장했을 것이다.

그런 리즈시절을 보내다 어쩌다 마음에 맞는, 평생 의지하면서 살 수 있는 남의 편인지 남편인지 헷갈리는 사람을 만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다 보니 아이가 생겼다.


임신 과정은 또 쉬운가? 여기저기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살이 붙는다. 임산부를 보호하기 위해 팔뚝, 허리, 허벅지 등에 살이 붙게 되고 튼살크림으로 연명하며 살 터지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면서 하루하루 보내다 자궁이 배를 눌러 원치 않는 실례를 할 수밖에 없고, 출산 굴욕 3종 세트를 참으면서 아이를 낳았으니.

낳고 나니 골반이 뒤틀리고 벌어져서 출산 전 청바지가 몸에 맞지 않는 속상함. 모유수유 때문에 새벽에 아이와 전쟁을 치르고 그저 모유 주기 위해 먹는 한 마리의 짐승이 되어버린 엄마들.

이런 과정들 다 거쳐 이제 좀 아이와 떨어질 수 있는 어린이집, 유치원에 보낼 시기가 되어서 해방감이 생긴 엄마들.


근데 아침에 준비할 껀 또 왜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이 글을 읽는 부모님 중에 이런 아이가 있을까?


정해진 시간에 아이가 눈 뜨고 일어나 "엄마 아빠 안녕히 주무셨어요?"

인사를 마친 후 부모가 차려준 밥을 맛있게 양껏 먹고 "오늘도 맛있는 밥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사를 마친 후 바로 화장실로 들어가 양치하고 세수하고 로션을 얼굴에 고르 고르 잘 바르고 나와서 엄마가 준비한 옷을 척척 입고 가방 메고

"어린이집 다녀오겠습니다. 오늘도 아침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엄마"


이런 꿈의 자녀, 꿈꾸는 우리의 자녀 모습이 있을까?


강력 접착체를 등에 붙인 건가 도대체 바닥에서 도저히 일어날 기미는 안 보이고, 아니 그냥 아이를 바닥에서 떼어낸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아침은 또 반찬은 이게 뭐냐, 맛이 없다며 입을 닫아버리기 일쑤다. 요구르트와 우유 섞어달라고 하며 요구르트는 왜 아빠가 뜯냐. 네가 뜯으라고 하면 잘 안 뜯어진다 도와달라. 왜 아빠가 밥 비비냐며 투정 부리고 안 비벼진다 도와달라고 또 짜증 낸다. 이렇게 기상부터 밥 먹이기까지 무려 30분은 넘게 소요된다.


그럼 다 먹으면 또 바로 씻으러 가냐? 저얼때 never!!!!

좀 놀아야겠다며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닌다. 그것도 한 명이면 그나마 좀 편할 텐데 두 명이 그러고 다닌다. 아침부터 끓어오르는 악마의 속삭임을 참고 화장실로 데려가면 양치를 하는 건지 칫솔을 먹는 건지, 치약은 또 왜 그렇게 맛있는 건지 다 먹어서 거품조차 나지 않는다.

어떤날은 치약이 맵다고 해서 보니 어른 치약을 헷갈려서 짰다가 또 ‘아빠가 미안해’를 100만 번 외쳐야 했다.


옷은 골라주면 골라준 것만 빼고 지가 입는다며 드레스를 꺼내고 이 추운 날에 저 드레스 입으면 십중팔구 감기인데 떼를 쓰면서 입는다고 한다. 협박을 통해 겨우겨우 우리가 골라놀은 옷을 입힌다.

머리는 또 왜 안 묶어주냐면서 머리 빗으면 아프다고 운다. 빗으로 머리를 진짜 세게 한 대 때리고 싶지만 꾹 참고 머리 빗기면 또 하나로 묶지말고 양갈래 콩순이 머리를 해달란다. 이쯤 되면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아침의 90분은 정말 순삭이다.


등원 시간이 계속 늦어진다. 근데 내 복장은 이제 막 일어나 아이들 준비시키다 보니 수면바지에 늘어난 러닝셔츠요, 머리는떡져서 눌려있다. 내가 씻으면 아이들이 늦는다. 그냥 대충 물로 대충 뿌리고 주차장으로 내려가면 또 손 잡아달라 안 내려간다 안아달라!


"야! 이 자식들이! 빨리 안 내려와?"

결국 참았던 분노를 터뜨리면 또 아빠가 화냈다고 운다.


"미안해. 아빠 화낸 거 아냐 화낸 거 아니다 안 냈다 안 냈다”


이렇게 전쟁을 치르니 내 옷, 내 생김새를 꾸밀 수 있는, 가꿀 수 있는, 아니 들여다볼 시간적 여유는 단 1도 없었다.


빨리 일어나면 되지? 맞다. 좀 더 빨리 일어나서 내 몸을 가꾸면 된다. 근데 습관이 참 어렵다. 결국은 또 내문 제로 인식하고 나를 자책한다.


두꺼운 패딩에 수면바지에 모자를 눌러쓴 엄마가 되어서 자녀를 집밖으로 나오기까지의 과정이다. 완전 딱 맞진 않지만 아주 틀리지 않을 것이다. 전쟁을 치르고 나와서 아이를 건네고는 그래도 선생님께는 웃으면서 인사를 건네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예의였다.


우리도 나름의 깊은 사연은 있었다. 요즘은 남일 같지 않아서 그 부모들한테 언제나 힘내세요 라고 마음속으로만 외친다.


선생님들의 입장을 알았지만 부모의 입장도 충분히 알았다. 조금씩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한다면 아이들을 위한 더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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