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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한 Dec 07. 2020

이 JPG lover야!

육아는 힘들어서 그렇다 넘어갑시다!

2020년은 코로나 때문에, 그리고 내가 업종 전환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자녀를 돌볼 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첫째님과 산에 갈 시간이 많아졌다. 키즈카페를 가거나 동물원에 놀러 가고 싶었지만 역시나 코로나에 걸리면 첫째님에게는 치명적 이기 때문이다.

첫째님은 장애 특성상 호흡기가 많이 약하다. 2개월 동안 2번의 폐렴으로 입원해서 생사를 오고 가는 중환자실에 입원할 정도로 힘들었던 추억이 있었기에 언제나 늘 조심하고 있다.

지금은 둘째 놈보다 더 튼튼하지만 그때의 그 추억 때문에 약간의 의심과 조심은 달고 산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지 않는 곳, 하지만 공기는 좋은 곳 그렇다면 역시나 뒷산 산책이 적합했다.

봄부터 지금의 12월까지 병설유치원 가는 날이 아니고선 거의 매일 산에 간 것 같았다.

첫째님도 그런 산이 때로는 좋은지 가을에는 하늘을 쳐다보며 단풍잎들을 구경하다가 혼자 웃는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담요 같은 단풍잎들을 마구 발로 차고 다닌다. 그런 소리와 느낌이 좋은지 연신 발로 차다가 가끔 돌부리도 같이 차서 아파한다.

그 모습이 귀엽지만 우리 부부가 제일 극혐 하는 행동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길바닥에 힘들면 주저 앉다 못해 드러눕는 행동이다.

아내도 이런 첫째님의 행동에 매우 힘들어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나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힘이 그나마 있으니 일으켜 세우면 또 흐느적거리며 주저앉는다.

이게 길바닥이면 그래도 좀 뭐 눈에 보이는 더러운 것들이 없어서 괜찮은데 가을산의 그 뒤덮인 단풍잎이 주는 푹신함을 이불인 마냥 몸을 던져 누워버리는 첫째님의 행동을 봤을 땐 내 목소리는 한 십이층 더 커진다.

산에서 분명 "야호"하면 동물들이 놀라니까 하지 말라고 기사에서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첫째님이 그렇게 누워버리면 내 입에서는 십이층 커진 목소리가 튀어나온다.

"야~~~~~~~~~~안~~~~~~~~~~~~~~돼~~~~~~~~~~~~~~~~마~~~~~~~~~~~~~~~"

그 담요 같은, 이불 같은 곳에 개똥이 있을지, 새똥이 있을지, 아니면 다람쥐나 청설모의 배설물이 있을지 어떻게 알까?

얼른 첫째님을 일으켜 세우면 아빠가 놀아주는 줄 알고 올라탄다. 옷에 뭐가 묻어있는지도 모른 체 나에게 마구 부비부비를 하면 순간적으로 나의 정신력은 한줄기 놔버린다.

첫째님을 얼른 떼내어 몸을 털어준다. 엉덩이를 털어준다. 근데 소리가 내가 생각해도 좀 크게 난다.

"어머, 저 아빠 애 학대한다. 신고해야 하는 거 아냐?"

마치 지나가던 등산객이 나에게 이런 눈빛을 보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얼른 온몸을 다 털어주면서

"저기 누우면 똥이 묻은 건지 뭐가 묻은 건지 모르잖아. 첫째님아! 저기에 몸을 던지면 위험해"

(한 번은 정말 똥 묻혀 와서 집안을 대환장 파티로 만들었었다.)

그러고 나면 등산객들은 다시 제 갈길을 간다.

하지만 우리 첫째님은 아직 이런 말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시간이 정말 느리게 가는 아이였다.


토요일에는 동네 공원이 다시 문을 열었다. 1년 전에 잔디밭 공원을 만들었지만 잔디의 생태를 알지 못한 건지, 관리 소홀인지 잔디가 죄다 죽어나가서 공원 문을 닫고 아예 새롭게 단장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올해 기록적 장마로 인해 공사 기간이 연장되고 10월 전에 열어야 할 공원이 11월 중순이 돼서야 열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아주 작정을 했는지 상당히 잘 정돈되어 있었다. 아쉽게도 겨울이라 앙상한 꽃길과 아름다운 장미가 있는 가시밭길만 보일뿐. 봄이면 여긴 정말 꽃길만 될 것 같아 상당히 기대가 된다.

여기에도 역시나 잔디가 있지만 단디 각오를 했나 보다. 6개월간 잔디의 뿌리가 내릴 때까지는 접근금지 팻말을 붙여놓고 그 주위를 고무줄로 묶어놨다.

우리 첫째님이 제일 좋아하는 저 늘어나는 고무줄을 일단 잡고 얼마나 늘어나는지 테스트를 하는 첫째님을 다시 붙잡고 길로 걷도록 유도했다.

나무들을 심은 약간의 언덕, 그리고 그 주위의 잔디밭. 역시나 우리 첫째님은 이젠 배를 깔고 눕는다.

그래서 아내한테 카톡을 보냈다.

아내와의 카톡 첫 번째

"아이고 이뻐라"

답장을 한 아내. 하지만 난 아내의 마음이 너무 잘 느껴졌다. 왜냐면 뭔가 정말 예쁘거나 하면 느낌표던 웃는 표정이던 이모티콘이던 넣었을 텐데 말이다.


'아이고! 의미 없다' 수준의 아주 무미건조한 저 대답. 아내는 전날 장애 부모연대에서 주 전공도 아닌 디자인 작업에 열중한 나머지 모든 에너지를 소진했고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는데 내가 카톡을 보내니 뭐라도 답장해야 해서 보낸 것이다.


그래서 다음 카톡을 날렸다.

아내와의 카톡 두 번째

아내와 내가 질색팔색 하는 건 바로 위에서 언급하듯 드러눕기이다. 물론 위의 사진 정도를 본다면 그다지 크게 문제 될 행동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첫째님이 드러눕는걸 하도 당했기 때문에 바닥에 물체가 확인되지 않는 곳에 눕는걸 매우 싫어한다.


아내의 대답은 아까보다는 느낌표를 넣어 "응!"이라고 했다

그렇다. 사진상의 자녀는 언제나 예쁘고 보기 좋다. JPG가 주는 마법과도 같다.

사진으로 보는 우리 자녀의 모습은 세상 천사 같다. 자는 모습 또한 그렇다. 세상에 이런 천사 같은 아이들은 어디에도 없다.


왜 그럴까? 이유는 뻔하다. 사진상으로는 자녀와 어떠한 감정노동을 할 필요가, 어떠한 육체적 노동을 할 필요가, 아니 그냥 교감을 하지 않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고 아이와의 추억을 생각하며 기뻤던 나날들에 대한 추억으로 흐뭇하고 미안했던 나날들에 대한 반성을 하며 그저 이 아이의 행복한 모습에 우리마저 행복해진다. 그게 아무리 저리 드러눕고 있어도 아내의 눈에는 예뻐 보인다.


단... 당사자인 나는 절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나한테 얘기했다.


이... JPG Lover 야!!!!!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아이들 모습을 사랑하는 우리 부부가 되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산에 데리고 간다. 그러나 아.. 야! 쫌 드러눕지 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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