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찰리한 Dec 09. 2020

From 육탄 방어전 to 정의가 승리한다

From A to B :A부터 B까지!

육아를 시작한 지도 이제 7년이 넘었다. 물론 전담으로 한 나날도 있지만 대부분은 주가 아닌 부 양육자의 역할로써 충실히 해냈다. 그 역할은 역시 '호구 아빠'이다. 하지만 호구 아빠임에도 불구하고 잘 안 되는 것들이 참 많았다.

솔톤은 안됩니다

엄마들의 과도한 목소리 액션은 솔톤이다. 예전 사업부에 있을 때 옆 부서에 있던 주임 한 명이 신입사원에게 전화받을 때 도레미파솔라시도에서 솔톤으로 전화를 받으라고 교육시키길래,

"한옥타브 내려서 완전 낮은음부터 도레미파솔 솔솔... 이렇게 해도 되는 거네?"라고 장난치던 때가 잠시 기억났었다. 육아는 실전이라 이런 장난을 아내한테 했다간 바로 등짝 스매싱이 날아올 것이다.

목소리를 한번 올려본다. 하지만 솔톤보다는 약간 파# 정도 톤만 올라가면서 "옳지, 잘한다" 정도였다.

아니 노래방에서는 거의 2옥타브 까지는 올라가면서 애한테는 겨우 한다는 톤이 파#이라니.

그런 목소리에는 영혼이 한 개도 없다. 솔톤이면 그나마 없는 영혼도 불러올 수 있지만 파#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첫째님이 뭔가를 해내면 물개 박수와 함께 솔톤으로 칭찬해야 한다. 하지만 난 물개 박수 보단 북한 노동당 박수만 할 뿐이다.


하지만 호구 아빠도 잘하는 건 있었다

선배 부모들이 이거 보여주냐 저거 보여주냐 며 물어보면 우린 “아니요. 그런 것도 있어요?” 라며 시청각을 최대한 줄이고 있었지만 둘째 놈은 이미 어린이집에서 모든 걸 배워왔다.


"번개~~~ 파워!"

"그건 뭐야?"

파워가 들어간다면 분명 내 시대의 액션스타 파워 레인저나 더 멀리 플래시맨 정도밖에 모르는데 둘째 놈의 저 알 수 없는 행동과 외침에 의아해했다. 그래서 아내가 선배 부모들에게 물어봤다. 기막힌 답변이 돌아왔다.

“애가 번개 파워 외쳤다고? 그거 맞고 가만히 있었어?? 쓰러져야지!!”


이건 또 무슨 말인가 해서 물어보니까 교육방송 EBS에서 토, 일요일 아침 8시 30분에 모여라 딩동댕이라는 코너에 번개맨이라는 어린이 뮤지컬을 해준단다. 인기는 뭐 거의 아이들의 BTS급이었다.

특히 엄청난 대사가 있다.

"꿈꾸는 모여라 딩동댕 친구들! 우리 모두 씩씩하게 일어나 번개 체조해요!" 하면 자던 아이도 벌떡 일어난다.

아침시간이니까 한번 보여주기로 하고 나도 같이 봤다. 등장인물은 번개맨, 번개 걸, 펌핑 조이, 슈퍼마리오 동명이인 마리오, 베이비 복스의 간미연과 결혼한 올라, 피오나 그리고 나쁜 역할의 나잘난, 더잘난


번개 걸은 샤인 샤인 브러시 하면서 리본을 휘날리고 번개맨은 나잘난 더잘난을 쫓아낼 때 번개 파워를 외쳤다.

슈퍼마리오 동명이인 마리오는 무릎 꿇고 자동차로 나오다 벌떡 일어나면서 변신하여 사람의 모습으로 대사를 했다.

아하~! 이제야 상황이 이해됐다. 번개 파워 하면 쓰러지면 되는 것이다. 적어도 나잘난 더잘난 처럼 뒷걸음질 치기는 좀 어렵지만.

"번개~~~ 파워!"

"으으으악! 철퍼덕"

난 쓰러졌다. 근데 갑자기 둘째 놈이 달려와서 발로 날 걷어찼다.

"야! 번개맨은 안 걷어차는데 넌 왜 차?"

대답이 없었다. 그냥 호구 아빠가 고통받는 게 즐거운가보다. 뒤이어 또 번개 파워를 외친다. 난 걷어 차이기 싫어서 이번엔 고개만 뒤로 젖히고 “으어아악”

그러자 둘째 놈이 아빠!! 니가 쓰러져야지!”

“싫어. 그럼 또 걷어찰 거잖아!”라고 대답했더니

“아니야 쓰러져! 쓰러져야지! 하면서 울먹인다”

'어휴 저걸 그냥!!' 하고는 또 으어억 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여지없이 달려와 또 걷어찬다. 그렇게 무한 반복을 하다 보니 참 힘들었다. 넘어지는 것도 힘든데 걷어차이는 옆구리가 너무 아팠다.

그래서 한 가지 방법을 생각했다. 역시 액션 중의 액션은 오버액션 보단 할리우드 액션이지.

맞아도 세게 맞은 것처럼. 그리고 둘째 놈과 일정한 거리를 둘 수 있으면서도 절대 욕먹지 않는 방법은 그저 목만 뒤로 젖히는 액션도 아닌 쓰러지는 오버액션보다는 멀리 날아가는 할리우드 액션이 필요한 시기가 왔다.

다음날 주일 아침. 또다시 번개맨을 보면서 둘째 놈의 눈빛이 변한다.

“번개~~ 파워!”

역시나 둘째 놈이 외쳤다.

으어어억 하고 뒤로 한 1m는 뛰면서 나가떨어졌다. 그리고는 둘째 놈이 달려오지 않을까 눈치를 보고 있었는데 둘째 놈이 자리에서 뛰면서 외쳤다.

“우아 내가 이겼다!!!”

'뭐야?? 그럼 걷어찬 게 그냥 넘어지면 이긴 것 같지 않아서였냐?' 생각이 잠시 복잡해진 틈을 타 또다시

"번개~~ 파워!"

그럼 또 뒤로 뛰어 대굴대굴 굴러 나가떨어지면 이겼다고 좋아한다.

“둘째야 아빠 못 일어나겠어”

“아빠! 내가 도와줄게”

하고 달려와서 도와주려는 둘째 모습을 보고 내 손을 뻗어 둘째의 손을 잡으려는데 발차기가 날아왔다.

"야! 아빠 도와달라는데 발로 차면 어떻게 해?"

"어! 미안해"

빠른 사과, 영혼 한 개도 없는 정말 빠른 사과를 하고는 또 번개 파워를 외치고 난 또 나가떨어지고.

그래. 나는 솔톤도, 물개 박수도 못하지만 잘하는 건 하나 있었다. 그냥 육탄 방어전은 그럭저럭 쓸만하구나!


할리우드 액션? 더 이상 필요 없다?

최근 모여라 딩동댕을 다시 틀었다. 둘째 놈에게 그냥 번개맨 보여주고 난 그 짧은 30분 동안 브런치에 열심히 글을 퇴고하고 있었다.

"번개~~ 파워!"

익숙한 소리가 들려서 글 쓰다 나도 모르게 그만 "으어억~!"하고 쓰러지는 시늉을 했다.

"아빠! 넌 아차차 파워 해야지"

이건 또 뭔 소리야? 하고 번개맨을 봤다. 근데 번개맨 배우가 바뀌었다. 심지어 번개 걸도 없다. 내가 좋아라 하는 슈퍼마리오의 동명이인 마리오도, 펌핑 조이, 올라, 피오나 그리고 충격적인 건 나잘난 더잘난 마저도 싹 다 없어졌다. 새로운 캐릭터들이 생겼고 나쁜 역할에는 아차차 라는 캐릭터가 대체되었다.

"말도 안 돼! 여보! 큰일이 가 났어. 번개 걸이 없어졌어!"

아내도 나와서 보더니 캐릭터가 바뀌었음을 인지했다. 그리고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정말 싹 다 바뀐 것이다.

약간 안타까워하는 아내

하지만, 하지만, 하~~~ 아지만~~~~ 난 너무 기뻤다.

"아빠!  아차차 파워 해야지"라는 말이 귀에 맴돌았다.

'이제부턴 할리우드 액션 따윈 필요 없구나. 번개 파워! 를 외치면 난 아차차 파워! 만 외치면 되니까 말이다. 더 이상의 육탄 방어전은 필요 없어졌다.


둘째 놈과 그렇게 번개 파워!라고 외치면 난 아차차 파워!로 되받아쳤다. 한 3번 정도 반복하니까 둘째 놈이 또 울먹이며 번개 파워가 더 센데 왜 안 쓰러져 라고 물어본다.

"왜? 아차차 파워도 번개 파워만큼 센데?"

"아니야! 번개 파워가 더 쎄?"

"왜?"

"번개 파워가 더 세다고!"

"왜?"

또 울먹이며 "번개 파워가 더 세다고!"

한번 더 왜 라고 말했다간 울 것 같았다. 그래서 번개 파워가 더 세다고 말하니까 울먹이던 둘째가 물어본다.

"왜?"

엇? 뭐? 왜? 왜일까? 나도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 그래 정의는 언제나 승리한다! 둘째야! 아빠 쓰러질게. 으아아악!!!!"


그래도 세상이 아무리 불공평해도 정의는 옳다. 당장은 아닐 수 있어도 정의는 언제나 옳다!
작가의 이전글 이 JPG lover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