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찰리한 Dec 30. 2020

아빠가 미안해! 크리스마스는 너 생일이야!

맞다. 생일 축하해! 둘째 놈아!

크리스마스가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 아니 그냥 후다닥 지났다. 결혼 전 20대 때에는 외로움 때문인 듯 지나가는 이브날이 그렇게 아쉬워서 밤새 놀다 비몽사몽으로 교회 가서 예배드리고는 또다시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사람들과 밤늦게까지 놀았다. 하지만 결혼 후의 크리스마스는 조금 달라졌다. 더 이상 외로움에 몸부림 칠 필요도 없다 보니 일상이 언제나 나에겐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나날들이다. 굳이 이 북적북적한 날에 밖으로 기어나갈 이유가 사라졌다.


아이가 있는 지금의 크리스마스가 조금 특별하다. 둘째 놈의 생일이 기가 막히게 크리스마스 날이라서!

둘째 놈은 첫째님 때의 임신을 생각하며 4월쯤 계획을 하고 연초 생으로 태어나게끔 나름의 철저한 날짜 계산과 분석을 했다. 한방에 임신될 확률은 그다지 높지 않다는 여러 데이터들을 믿었지만 데이터는 역시 데이터였다. 설마 홍삼 한 모금에 이리될 줄이야!

우린 한방에 임신되는 축복받은 부부였고 생각보다 빠른 임신에 둘째 놈의 예정일은 12월 31일이었다.

완전 슈퍼 초 연말 생이 될 예정이다. 태어나자마자 하루가 지나면 2살이 되는 기적의 억울한 아이가 돼버릴 기세였다. 나오겠다는 아이를 막을 수는 없으니 차라리 장난처럼 아내한테 말했다. 어차피 이럴 거 그냥 크리스마스에 태어나면 좋겠다. 그럼 생일선물과 크리스마스 선물을 하나도 안 줄 수 있는 나만의' 만족 공식'이 있었다. 산타라는 존재를 저세상으로 보내버림과 동시에 생일선물 조차 안 줄 수 있는 나한테만 합리적인 '만족 공식'


생일날은 무슨 날? = 그날 태어난 사람

생일선물은 누구한테 줘? = 태어난 사람에게

12월 25일은 누구 생일 = 예수님 생일

그럼 선물은 누구한테 줘야 하지? = 예수님

예수님은 지금 계셔? = 마음에 계셔

그럼 선물 어떻게 하지? = 예수님께 기도하며 마음으로 드려야지!


이젠 그냥 장난처럼 '크리스마스날 태어나라'라고 태교 같은 압박을 했고 하나님께서는 나의 얄팍한 수를 알면서도 아주 잘 들어주셨다. 12월 25일 날 아침에 아내의 사인을 받고 바로 병원으로 튀어가서 둘째 놈을 출산했다. 할렐루야를 외쳐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할 시간도 없이 둘째 놈은 초산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8시간이 넘게 진통을 했다. 첫째님은 역아로 출산했지만 4시간 정도로 꽤 빠르게 출산했기에 아내와 나 모두 자신 있게 둘째 놈의 출산은 역아도 아닌데 라며 아주 쉽게 생각했다. 하지만 출산은 역시 케이스 바이 케이스가 맞았다.


그런 둘째 놈이 점점 자라나면서 3살 때까진 '만족 공식'에 아주 잘 걸려들었다.

"12월 25일은 누구 생일?"

"예수님 생일!"

역시 조기교육의 힘이었다. (도대체 난 왜 교육회사를 다녀서 이런 쓸데없는 교육이나 하고 있는지...)

그래도 생일인 만큼 뭔가의 선물은 해줬다. 단지 산타가 줬다고 말하지 않았을 뿐!


'만족 공식' 파괴자는 역시 산타할아버지

하지만 예수님보다 더 강력한 것은 역시나 산타였다. 둘째 놈이 어린이집에 가면서 크리스마스날에 선물 주는 존재를, 그 존재는 바로 흰 수염의 배 나온 뚱땡이 할아버지 산타라는 존재를 알아버렸다. 모든 어린이집에서 가장 큰 공을 들이는 날이 산타가 와서 선물을 주는 날이었으며 1달 전부터 그렇게 아이들에게 산타에 대한 주입식 교육을 했었다. 둘째 놈은 크리스마스날이 다가올수록 선물에 대한 욕구가 강해졌고 급기야 산타에게 기도를 하게 되었다.

"둘째야! 예수님한테 기도해야지!"

라고 말하면 둘째 놈이 다시 기도를 한다.

"예수님! 콩순이 병원놀이 세트 사주세요!"

분명 조기교육의 힘을 통해 난 산타의 존재를 왜곡된 역사 속 인물로 사라져 버리게 했건만 왜곡된 역사가 바로잡혀가고 있던 것이다.

더 가관인 건 어린이집에서 매년 산타분장을 아빠들한테 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내는 어린이집 운영위원으로 활동 중이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그 해의 산타를 나로 당첨시켰다. 나에게 선택을 가장한 통보를 했고 앞선 '만족 공식'이 산타에 의해 짓밟히게 생겼다.


여러 아이들의 꿈과 희망인 산타 분장을 해야 하나 vs '만족 공식'을 사수할까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는 아내의 남편이자 아빠였다. 한수 접고 들어가는 게 모두를 위한 평화였다.

산타분장을 하고 어린이집에 선물 봇따리를 매고 쳐들어갔다. 이왕 할 거면 정말 잘해야지 라는 나름의 철칙과 함께 할아버지 목소리를 내면서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는데 우리 둘째 놈 차례였다.

옳타구나! 잘 걸렸다. 이놈

둘째 놈은 내 품에 안겼다. 하지만 웃지 않았다. 잔뜩 겁에 질려있었다. 아주 나이스 타이밍이었다.

"둘째 놈. 이놈 부모님 말씀 잘 들어야 선물 받지"


둘째 놈은 울먹일 기세였다. 그리고는 선물을 받고 사진을 냅다 찍고는 자리로 돌아가버렸다. 둘째 놈에게는 산타는 선물은 주지만 무서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박여버렸다.

역시 '얼라' 일 때의 둘째 놈은 다루기 참 쉬웠는데 글쎄 이 둘째 놈이 '얼라'를 벗어나 뇌구조의 재 개편을 통해 자아가 형성되면서 또 다른 상황에 직면했다.


'만족 공식' 따위 뭣이 그리 중헌데!

어김없이 크리스마스는 다가왔다.

비록 어린이집에서 산타의 존재를 계속 알렸지만 처음 산타와의 만남이 그리 유쾌하지 않았는지 둘째 놈은 산타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 역시 반 강제적 예수님의 존재를 그렇게 알렸다. 실은 예수님의 존재보단 선물을 '퉁'치겠다는 나만의 반 강제적 고집이었다.

예수님의 탄생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함인데 나는 단지 둘째 놈에게 선물을 주지 않기 위한 얄팍한 수로 예수님을 그렇게 이용해댔다.


하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고 둘째 놈은 나는 놈 보다 더 무서운 자아가 형성된 놈이었다. 자신의 정체성을 알게 되었는지


"아빠! 크리스마스 날은 내 생일인데?"

"어? 아냐. 예수님 생일이야"

"아냐! 내 생일이야"

"아.. 산타할아버지가 선물 주는 날이야"

"아니라니까! 내 생일이라니까"


나도 모르게 그만 만족 공식도 생각하지 않고 산타가 선물 주는 날이라고 내 입으로 시인했다.

둘째 놈은 자기중심적 사고 형성의 시기라 산타고 나발이고 안 통했다. 그저 자기 생일이며 산타를 강조한 적이 없기 때문에 1년에 한 번만 선물 주는 그냥 무서운 흰 수염 할아버지 정도로만 인식한다. 그리고 산타가 선물은 주지만 어차피 아빠한테 '저거 사줘! 이거 사줘!' 하면 말 잘 듣고 사주는 호구 같은 존재가 있어서 그런지 산타라는 개념 자체가 주는 영향력은 아주 미비했다.


2020년 올해에도 어김없이 크리스마스가 왔다. 물론 코로나 쉣킷 때문인지 거리도 그렇게 떠들썩하지 않았다.

첫째님의 장애 활동지원사로 한때 잠시 일해주셨던 선생님이 둘째 놈의 생일을 기억하고는 매년 24일 날 집에 방문해서 케이크를 사주셨다. 그리고 조카바보 까지는 아니더라도 든든한 물질적 후원자인 고모가 놀러 왔다.

그리고는 난데없이 시크릿 쥬쥬의 기타를 사들고 와버렸다.

(내가 시크릿 쥬쥬를 싫어하는 이유는 여기를 클릭하세요)


"누나! 이것만 사면 어떻게 해? 나머지 것들은? 아니 나머지 것들은 우리가 어떻게 사냐고!!"

둘째 놈을 위해 아주 통 큰 선물을 투척한 누나한테 농담처럼 말했다. 둘째 놈은 이미 시크릿 쥬쥬 기타에 그동안 없었던 격하 고도 격한 찬사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기타를 매고는 건방진 기타 라커의 자세를 취하며 건전지가 없어서 멜로디는 나오지 않는 기타를 그렇게 쳐대고 있었다.


선물 받고는 그렇게 기뻐하는 둘째 놈을 보니 살짝 미안해졌다. 선물 '퉁'치려고 마음먹었던 내 마음을 내려놓고 둘째 놈에게 말했다.

"생일 축하해! 둘째 놈아"


그렇지. 맞아. 둘째야! 오늘은 너의 생일이야. 예수님의 존재는 나중에 너도 알게 될 거야. 산타가 실존인지 아닌지는 지금의 너한테는 안중에 없긴 해도.


잠시나마 약간의 반성을 했다. 지금은 태어난 너의 존재도 소중한데 아빠가 자꾸 그렇게 교육해서 미안하다!




작가의 이전글 From 육탄 방어전 to 정의가 승리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