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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한 Jan 02. 2021

아빠 육아가 사회성 발달에 그렇게 좋다면서요?

정말 그럴까? 진짜? 내가 육아하는 모습은.. 학대 아닙니다!

아빠 어디 가! 슈퍼맨이 돌아왔다 등의 예능이 나오면서 아빠 육아에 대한 관심이 한참 쏠렸었다. 나도 그 영향을 받아 도이터 브랜드의 키즈컴포트3 라는 아이템을 엄청 탐냈다. 케리어에 아이를 앉히고 등에 맬 수 있는 매우 좋은 것이다. 때마침 우리 동네에 도이터 매장이 가까이 있어 첫째님을 아기띠에 매고 매장에 무작정 들어갔었다. 매장 직원에게 키즈컴포트3 달라고 하곤 케리어에 첫째님을 앉히고 등에 케리어를 매고 돌아다녀보니 완전 신세계였다. 아기띠가 배와 가슴을 압박하는 것과 다르게 그냥 무거운 책가방 매는 느낌 정도. 아니 뭐 군대에서 행군할 때 군장이 25kg인데 기껏 첫째님은 10kg 정도밖에 안되니 날아갈 듯했다.

가격은 30만 원 정도였다. 저렴하지 않기에 아내한테 온갖 수식어구를 갖다 붙이면서 케리어 사달라고 엄청 졸랐었다.

"여보! 키즈컴포트3 사주면 내가 애 데리고 세계일주 라도 할게!"

내 기억엔 분명 유모차를 살 때에도 이렇게 말했던 것 같았다. 다행히 유모차는 중고시장을 통해 아주 저렴하게 좋은 제품을 잘 샀지만 이번 아이템은 좀 내가 봐도 내 만족인 것 같았다.

세계일주는 무슨! 그냥 동네 마실이나 나갔다 올 것이지!

아내의 만류가 없었다면 아마도 키즈컴포트 3로 끝나지 않았을 듯했다. 그만큼 강력하게 아이템들이 나를 유혹했으며 예능에서 조차 아빠와 자녀가 신나게 놀면서 육아의 고됨을 알아가는 모습이 강조되면서 대한민국 아빠들을 깨울 엄청난 예능이다 라고 손뼉 치면서 봤었다.



아빠 육아 예능이 나온 후 3~4년이 지났을 때의 아빠들은 참 많이 변했다. 첫째님의 첫 유치원 운동회가 토요일에 열렸었다. 운동장이 아닌 작은 체육관에서 하는데 참여자의 모든 아빠들이 와서 아이들과 즐겁게 즐기고 있었다. 자녀가 어려서 더 열심히 육아에 동참하는 것 같았다.

보이지 않는 이어달리기에 자존심을 걸고 그렇게 뛰어다니는 걸 보면 영락없는 아빠이자 남자였다. 나 역시 이어달리기 선수로 나가 달라며 부탁하는 아내한테 못 이기는 척 나갔지만 실은 목숨 걸고 뛰었다. 왠지 달리기에 진다는 건 세월에 지는 것이고 아직 젊다는 나만의 쓸데없는 자존심이 있어서였을 것이다.


교육회사 다니던 시절에는 아빠 육아를 하면 사회성 발달에 좋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정작 '왜 사회성이 좋아지는 걸까'라는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알아보지 못했다. 그냥 좋다는 무슨 보고서의 말만 그대로 인용하여 상대방에게 전달만 했을 뿐 웃기게도 그에 대한 정확한 이유를 찾지 않았다. 그런 의문은 아이러니하게도 교육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생겼다.

인터넷을 찾아봤다. 적기교육과 조기교육에 관한 서적을 뒤적였다. 인터넷 정보의 힘은 역시 막강했다. 심지어 내가 교육회사에서 모았던 정보보다 몇천 배는 더 많은 정보들이 있었다. 그리고 새로 알게 된 것들과 공통점들을 뽑아봤는데 공감이 잘 안되는 몇가지를 뽑아 나만의 반론을 제기해봤다.



1. 아기는 엄마 뱃속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처음 만나는 타인이 아빠라고 한다.

내 반론 : 아이 아빠가 의사가 아닌 이상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보는 타인은 내가 아닌 의사님이다. 아니면 구급차에 실려가다 출산하게 되면 소방사 직원이거나! 고로 난 처음에 만나는 타인은 아니다.


2. 아빠 육아 시기는 정해져 있다. 애착 형성하는 6~24개월이 중요하다. 아이들이 아빠를 찾는 시간은 의외로 길지 않다.

내 반론 : 맞다. 그 시기 매우 중요하다. 그렇게 중요한 시기에 아이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지금은 엄마보다 아빠부터 찾는다. 아빠를 찾는 시간은 의외로 길지 않다고? 쉬한다 응가한다고 일일이 아빠를 찾을 필요는 없잖아!

의외로 길지 않다고?? 그 의외는 언제까지일까? 아.. 사춘기가 있구나. 앞으로 10년 남았다. 의외로 길지 않구나!


3. 아빠와 애착형성이 잘 된 아이는 나중에 리더십이 뛰어나다고 한다.

내 반론 : 정말? 그래서 우리 둘째 놈은 아빠한테 항상 답정너를 하는 건가? "아빠 이렇게 해야지. 아빠 넌 이렇게 하면 안 되지. 아빠 좀 조용히 해. 아빠.. 아 아~~ 빠아!!" 하면서 내 입을 손으로 막아버린다. 이것도 리더십인가? 벌써부터 꼰대 리더십을 갖고 있더라!


4. 아빠타임을 정해라!

내 반론 : 맞다. 일 다닐 땐 집에 오면 아이들을 잠시 안아준다. 그리고는 밀린 집안일부터 시작한다. 아빠타임보다 중요한 건 남편 타임이다. 밀린 집안일을 끝내지 않는다면 육아에 지쳐 쓰러진 아내를 부양하기 어렵다. 주 양육자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아빠가 아이에게 잘한다 한들 그 짧은 시간에 아빠와 보내는 시간보단 주 양육자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훨어얼~씬 더 길다. 그럼 아빠 타임은 그럼 언제야? 아... 하 새벽? 다 자고 있는 새벽 4시쯤엔 내 타임인 게구나!


그냥 코로나 블루로 인해 육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런지 쓸데없는 반론들을 제기했지만 어릴수록 아이들과 함께 뛰어놀고 대화하고 가끔은 위험한 행동으로 엄마의 등짝 스메싱을 피할 수 없지만 엄마들이 해줄 수 없는 위험하고도 격한 행동들은 역시 아빠만 할 수 있는 고유의 영역이 있었다.

그리고 난 그 영역들을 최대한 부각했다. 실은 내가 잘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한참을 야근으로 늦은 퇴근을 할 시기에 아내는 첫째님을 위해 '히히 호호'라는 가정방문 선생님을 신청했다. 첫째님의 장애를 알고도 정말 열심히 1년간 오감을 체험시켜준 너무 고마운 선생님 이셨다. 시작할 때 항상 노래를 틀었다.

'오감이 자라나는 히히 호호 즐거운 두뇌 놀이터 예~!'

여기엔 뒷수습이 쉽지 않은 물감놀이를 해준다. 선생님은 베테랑답게 뒷수습을 아주 쉽게 할 수 있도록 비닐을 깔았고 생각보다 간단해 보여서 '나도 할 수 있다'라고 큰소리치며 해줬다. 해본 후 '난 절대 가정방문 선생님이 되면 안 되겠다'라고 다짐했다.

히히호호 선생님 작품(왼쪽) 과 내 작품(오른쪽)

같은 물감을 사용했는데 왜 난 붉은색만 이렇게 나올까? 역시 미술체험은 아주 신비롭다. 이렇게 놀고 엄마한테 등짝 스메싱을 맞긴 했지만 나름 오감이 자라나지 않을까?



코로나 쉣킷때문에 유치원을 못 가다 보니 두 녀석 다 집에서 12시간 이상을 보내게 된다. 처음에는 그래도 버틸만했는데 1달이 넘게 아이들과 있다 보니 저녁 6시를 넘어가면서, 아이들과 10시간 이상을 붙어있으면서 인내심의 한계가 다다른다.

첫째님의 온라인 수업과 그에 맞는 과제들이 날아왔다. 만들고 색칠하는 건 엄마한테 맡겼지만 거기에 가장 눈에 띄는 단어가 보였다. '베개 놀이'

베개를 쌓고 위에 올라가 균형을 잡거나 하는 매우 따분한 놀이였다. 말도 안 돼! 베개는 역시 싸움이 최고지!

배게 두개를 집어 들었다.

"둘째 놈아 베개 받아!"

첫째님은 그냥 돌아다니기 바빠서 둘째 놈과 베개 싸움을 시작했다. 대지의 기운과 하늘의 기운을 빌린 강력한 스메싱을 날려서 둘째 놈을 쓰러뜨렸더니 첫째님이 그걸 보고 웃었다.

"웃어? 감히? 나의 코로나 블루 앤드 육아 스트레스를 너에게 날려주마! 받아라 첫째야 아촤~!!"


웃고 있는 내 모습을 보았다! 정말... 아빠 육아는 정말 사회성 발달에 좋은 게 맞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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