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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있는 호주 37: 킹스 케니언은 또 뭐야!

그랜드 케니언은 들어봤는데??

by 찰리한

uluru 가는 둘째 날 아침이었다. 아무리 침낭이 두꺼워도 야외에서 자는 건 꽤 추웠다. 특히나 겨울이었기 때문인지 더 추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국에서 핫팩 좀 보내달라고 할걸 하는 안타까움과 함께 일어났다. 아침햇살은 다행히 따뜻했다. 얼른 침낭을 정리하고 파충류처럼 햇살을 받으며 체온을 올렸다. susan은 모닝 토스트를 위해 전날 캠프 파이어의 남은 불씨에 자잘한 나뭇가지를 넣고 불을 지폈다.

그 불 앞에서 몸을 좀 녹인 후 susan표 토스트와 각자가 싸 갖고 온 것들을 먹고는 씻지 않은 채 다음 목적지로 출발했다. outback 체험은 바로 이렇게 하는 거라면서 susan 역시도 씻지 않고 덥수룩한 금발머리를 휘날렸다. 예의상 양치만 하는 걸로 하고는 모두 다 꾀죄죄했다. 하지만 우리들만의 협동심을 갖고는 3일간 정말 양치 빼고는 세수도 안 했다. 그냥 물티슈 같은 걸로 얼굴만 대충대충 닦을 뿐!

이번 목적지는 kings canyon이라는 곳이다. 그랜드 케니언은 미국에 있고 다양한 매체를 통해 종종 등장했지만 킹스케니언 이라는 장소는 생소했고 호주 하면 uluru 밖에 몰랐기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차를 타고 이동하여 10시쯤 도착했다. 여기는 코스가 몇 개 있던 것 같은데 우린 가장 긴 코스였다. 거의 4시간 정도를 걸어야 하는 최장코스였다. susan이 처음 차에 타면서 각오 단단히 하라고 했던 말들이 생각났다.

'이왕 체험할 거 아주 죽어봐라'는 식으로 우리를 이끌었지만 일정이 빡빡하지는 않았다. 그저 자연을 느끼면서 쉬어갈 사람 쉬어가며 빨리 갈 사람은 빨리 가되 목적지에서 기다리는 식으로 여유롭게 시간을 잡았던 것이다.

출발과 함께 susan의 가이드를 받으며 이런저런 설명을 했다. 다 알아들을 수 없던 것이 안타까웠다. 투어를 하던 중 이상한 식물이 있는데 상처 날 때 바르면 좋다는 둥 무슨 선인장에 물 나오는 거 마셔보겠냐는 둥 여러 가지 알려줬다.

길을 걷던 중 돌틈사이로 커다란 뱀이 있었다. 햇살을 받으며 몸의 체온을 올리는 중이라 건들지만 않는다면 절대 공격하지 않으니 눈으로만 바라보라고 했다. 역시 야생에서 뱀을 만난다는 건 상당히 기분이 짜릿했다.

킹스케니언 탄생은 빙하기의 침식으로 인해 생긴 협곡이라는데 자연이 만든 작품들은 참 아름답기도 하지만 생각보다 위험한 코스들도 있었다. 바로 옆은 낭떠러지라 자칫 잘못하다간 위험할 수 있기에 서로서로 잘 의지하면서 지나갔다. 역시 씻지 않고 그냥 더럽게 지내는 우리끼리는 아주 단합이 잘 된 듯!

커다란 절벽 사이를 걸어가다 햇살이 나오는 지점은 포토존 이라며 사진을 찍었다. '사진 하면 또 대한민국 사람들이 그렇게 엽기적인 사진을 좋아하지' 라는 생각으로 난 갖고 있던 카메라 셔터스피드를 올리고 연속 샷을 주문했다. 그리고는 최대한 높이 점프해서 흔히 말하는 점프샷을 찍었다. 그러자 콜롬비아 2명이 쫓아 뛰더니 뒤이어 다들 그렇게 점프를 해댔다.

킹스케니언에는 여러 절벽이 있었는데 그 끝부분(edge라고 했었다)까지 가서는 모두 슈퍼맨 자세를 취하고 susan은 저 멀리서 우리를 찍어줬다. 킹스케니언 언 입구에서 절벽 근처에 가지 말라는 표지판을 본 것 같은데 susan은 경험이 꽤 많았다. 분명 위험할 수 있지만 안전하면서 아찔한 사진이 나올 수 있는 장소만 골라서 찍어줬다.

점심은 따로 없었다. 그냥 초코바와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중간중간 나눠줬고 우리도 각자 싸 갖고 온 것들로 끼니를 때웠다. 예약할 때부터 이런 부분은 공지가 되어있었기에 다들 알아서 잘 준비했고 susan은 항상 뭔가를 갖고 다녔다. 혹시나 하는 상황을 대비해서.

그렇게 우리는 킹스케니언 이곳저곳을 돌고 돌아 오후 3~4시쯤이 되어서 내려왔다. 눈에 모든 걸 다 담기 어렵지만 느낌만은 남아있었다. 나한텐 의외의 장소였는데 킹스케니언 이라는 단어가 너무 잘 어울렸다. 붉은색의 절벽, 바위, 토양, 그와 상반되는 파란 하늘. 단 두 가지 색만으로 사람을 감동시키기엔 충분했다. 협곡 위를 걷는 것도 매력 있고 아찔하지만 그 사이를 걸어가는 기분 또한 좋았다. 도대체 그럼 그랜드 케니언은 얼마나 더 멋질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저녁을 위해 susan은 다시 도로 어디쯤에 차를 세우고 땔감을 구하라고 했다. 이번엔 특별히 좀 많이 구해달라고 했다. 전날에 다들 해봐서인지 척척 잘 준비했고 나 역시 이번엔 유칼리툽스 보단 커다란 나뭇가지만 모으는데 신경을 썼다.

저녁은 대형 그릴을 꺼내어 바비큐 파티를 했다. 모든 걸 아꼈다는 듯 susan은 마지막 밤인 만큼 창고 대방출처럼 영혼까지 다 풀었다. 소시지, 스테이크, 각종 채소와 맥주는 마시다 지칠 정도로 많이 준비해놨다.

영국의 나와 비슷한 또래의 남녀가 말을 걸어왔다. 북한에서 왔다고 할 때 좀 놀랐았다고. 그리고 휴전 중인 우리나라의 상황을 알고 있으며 북한의 상황에 대해 물어봤다. 아는 것만 대답했고 그 이상은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나 역시 뭔가를 말하고 싶어 호주에서 정말 30번도 넘게 봤던' love actually'에 대한 애기를 필두로 휴 그런트 배우부터 비틀스까지 다양하게 얘기를 나눴다.

이탈리아 친구들은 역시나 흥에 도취되어 어제 그 이상한 떼춤을 시작했고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모두 그 떼춤을 추고 있어서 우리만 안 갈 수 없는 상황이라 다시 합류했다.

정말 유쾌한 친구들이었다. 이번만큼은 susan도 같이 참여해서 우린 다음날 uluru에 가야 할 체력을 여기서 다 불태워버렸다.

광란의 파티를 끝내고 다음날의 여정을 위해 다시 잠을 자야 했다. 침낭을 펼치고 또 누워서 밤하늘의 별을 봤다. 든든하게 먹어서 그런지 크게 춥다는 느낌은 안 들었다.

그때 다른 여행사에서 온 사람들도 있었고 우연히도 한국인 2명이 걸어가다가 우리들이 자는 걸 보고는 말했다.

"야! 얘네 뭐야! 정말 미쳤나 봐. 이 추운데 바닥에서 자는 거야? 입 돌아갈 텐데!"

"생각보다 잘만해요!"

그 두 명은 깜짝 놀랐는지 욕을 해댔다. 그래서 얼른 안심시켰다. 저도 한국인이고 아웃백 체험 중이라고.

설마 여기서 한국인을 만나게 될 줄이야 서로 몰랐을 것이다. 그렇게 대답을 하고는 다시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호주 여행의 마지막을 장식할, 초등학교 6학년 시절 달력에서 보던 uluru를 눈으로 본다는 설렘과 목표 성취에 대한 기대감으로 잠을 잤다. 하지막 역시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대단한 것도 아닌데 그냥 나만 혼자 뿌듯하고 만족하고 대견한 감정들이 머릿속에 가득했고 뭔가 이뤘다는 생각에 약간 울컥하기도 했다.

아직 일정이 하루 더 남아있고 uluru를 본 것도 아닌데, 가다가 사고 나면 못 볼 수도 있는데, 다 이루지도 못했는데 그냥 밤이라서 그런지 감정에 휩싸여버렸다. 침낭 지퍼를 조금 내려 다시 별을 쳐다봤다.

이틀 뒤면 이런 밤하늘의 별은 다신 볼 수 없으니까!


이젠 하루하루가 아쉬웠다. 이젠 머릿속에는 계속 이 생각만 맴돌았다. 한국 가지 말까? 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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