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는 목표를 드디어 성취했다.
전날 불태운 광란의 파티, 잠이 오지 않아 밤하늘만 바라보다 일어난 아침이었다. 여전히 추웠고 햇살을 받으면서 발을 동동 굴리면서 몸의 체온을 올렸다.
susan은 다시 모닝 토스트를 준비했고 우리들 모두 전날 파티의 피곤함과 함께 토스트를 먹었다. 오후에는 태양 빛이 꽤 뜨거울 정도여서 얇은 옷 위에 두터운 외투를 입었다. 오늘의 코스는 uluru를 몸으로 체험하는 하이킹이 대부분 이였기 때문이다.
토스트를 먹고 또 물티슈로 대충 얼굴만 씻고 양치를 하고 각자 옷을 준비한 후 울루루로 출발했다.
전날의 설렘은 좀 줄어들었지만 기대감은 가득 찼다.
차에 타고 창밖을 봤다. 정말 하나라도 아쉬워서 더 보려고 햇살이 눈부셔도 계속 밖을 쳐다봤다. 그리고 달리던 중에 여기서 CVA 하는 사람들을 봤다. 예전 그 동생이 말했던 죽어라 곡괭이질만 한다는 걸 눈으로 보고는 '와! 안 하길 잘했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이유 있는 호주 28편 참조)
저 멀리 거대한 바위가 보인다. susan은 마이크를 들고는 저 멀리 울루루를 보라면서 오늘의 일정은 울루루 주변을 하이킹한다고 했다. 둘레가 약 9km 정도 되며 높이는 900m 좀 안 되는 저 커다란 바위. 일출부터 일몰까지 바위의 색이 7가지로 변한다는 신비하고도 웅장한 울루루를 멀리서부터 보며 가는 내내 다시 설렘이 가득했다.
도착하자마자 얼른 내렸다. 그리고는 사진을 찍기 전에 눈으로 먼저 그 관경을 담았다. 그렇게 5분 정도를 계속 쳐다봤다. 움직이지 않고선!
그때 호주애들이 나한테 오더니 "Take a picture?"라고 말했다. 당연히 찍어야지 하면서 울루루를 배경으로 나를 찍어줬다. 그리고 고맙다고 말하니까 호주애들이 느껴졌다고 했다. 내가 얼마나 울루루를 보고 싶었는지가 한눈에 보여서 사진 찍어주겠다고 말했던 것이다. 사람의 감정은 숨기기 어렵지만 그 감정을 읽는 것에 국가의 장벽 따윈 없었다.
오후 3시까지 이 장소에서 모이기로 하고는 다들 흩어졌다. 나도 좀 더 감상한 후 울루루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톰 아저씨가 무슨 말을 했는지 단번에 이해가 됐다. 사람들이 바위 위에 설치된 줄을 잡고 등반을 하려는 곳 옆에 팻말로 올라가지 말라는 문구가 가득했다. 그래서 나 역시 올라가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다. 경험은 좋지만 그들을 존중하지 않은 경험은 결코 좋은 것은 아니었다.
울루루 주변의 하이킹 코스를 따라 걸었다. 두터운 외투를 벗고 걸어가면서 커다란 바위를 봤다. 가파른 경사의 붉은색 바위와 파란 하늘의 뚜렷한 경계선을 쳐다보며 천천히 걸어갔다. 분명 한 바퀴를 다 돌기에 시간은 부족할 수 있어서 타이머를 맞추어놨다. 5시간 중에서 2시간 30분을 맞춰놓아 타이머가 울리면 왔던 길을 되돌아 가서 모이기로 한 장소에 가기 위해서였다. 시간 약속은 되도록이면 지키려는 편이라 그렇다.
걸어도 걸어도 똑같은 관경이다. 바위가 좀 울룩불룩하고 붉은색이 약간 덜 붉은색으로 변하는 것 빼고는 똑같다. 하지만 난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가다가 그냥 자리에 앉아서 바위를 보고 이동하다 또 바위를 보고를 반복했다.
그토록 보고 싶은 바위가 앞에 있으니 생각이 없어졌다.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들 또한 다 사라진 것 같았다. 단지 순간을 좀 즐기고 싶었을 뿐이었고 사진보다 더 멋진 이 느낌과 관경을 머릿속에 오래도록 담고 싶은 마음이었다.
타이머는 여지없이 울렸고 다시 되돌아갔다. 되돌아 가는 길 조차 아쉬웠다. 난 좀 더 보고 싶은데 아쉽게도 되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붉던 바위가 조금 노르스름해지더니만 다시 붉어진다. 7가지 색이라기보단 그냥 색이 그러데이션 효과처럼 차즘 차즘 노란색에 잠식되다가 다시 붉은색으로 잠식되어 간다. 확연한 경계는 하늘과 바위였을 뿐 바위 자체의 색은 조용하게 변하기만 했다.
모이기로 한 장소에는 다들 모여있었다. 기대감을 갖고 왔다 조금 실망한 모습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하긴 생각해보면 커다란 돌덩이 하나 보려고 2박 3일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왔는데 막상 보니 크게 감흥이 없을 수 있다. susan은 인원을 확인하고는 다시 alice springs로 이동했다.
오는 길에 마이크를 잡더니 도착은 7시쯤 하며 8시 30분에 어디 펍에서 흔히 말하는 쫑파티가 있을 예정이니 꼭 참여하라고 했다. 오는 길은 시간이 아주 짧게 걸렸다. 4시간이라는 시간이 빠르게 지나갈 정도로.
도착하여 각자 숙소로 짐을 갖고 돌아갔다. susan은 쫑파티에 대한 안내를 한번 더 했고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는 파티에 가지 않았다. 솔직히 가고 싶었다. 가서 신나게 놀고 싶었지만 이제 마지막인 호주에 대한 생각과 마음 정리를 조용하게 혼자 하고 싶었다. 그래서 susan에게 말했고 그녀 역시 내 마음을 존중하며 마무리를 잘하라는 말과 함께 떠났다.
백패커에 돌아와서 짐을 정리했다. 저녁도 간단하게 챙겨 먹었다. 2박 3일간 꾀죄죄한 모습도 샤워를 하며 말끔하게 씻어냈다. 다음날 아침. 이제 한국에 돌아가기 위한 마지막 장거리 버스를 타고 다시 애들레이드로 떠났다.
그 지옥 같은 18시간의 그레이하운드 장거리 버스를 타면서 오는 내내 그간의 사진들을 봤다. 케언즈 공항에 도착해서 southport의 RSL클럽 할아버지 할머니, 포커치 던 내 모습과 인종차별, 돈 받지 못해서 힘들었던 추억들, 시드니에서의 거지 같은 생활 속에서도 목표를 놓치지 않고 버텨냈더 삶. 고기공장에 취업해서 다양한 민족과 같이 일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했고 가장 아쉬운 작별을 했던 wwoof 생활의 로젤리&톰. 그리고 그렇게 보고 싶었던 uluru와 짧은 outback 체험.
하지만 18시간은 이 모든 걸 생각하기에도 너무 길었다. 한 6시간 정도는 재밌게 회상했지만 12시간 남은 지겨운 시간들. 한번 더 한탄했다. 다시는 이런 장거리 버스 절대 안 타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