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한 조각과 그것으로 인해 만들어진 추억!
첫째님은 다운증후군의 장애로 인해 체구가 비장애 또래에 비해 작다. '아빠가 작아서 아이가 작다' 라며 아내가 농담을 던진다. "기준이 땅이 아닌 하늘부터 라면 내가 여보보다 더 커!" 라며 반격을 한다. 의미 없는 반격이지만 아이들에게 있어 좋은 점이 있었다. 또래 친구의 부모님들이 입지 못하는 옷이나 장난감을 선물해준다. 나는 그런 걸 받는 게 너무 좋다. 아이들은 빠르게 성장해서 옷을 비싼 돈 주고 샀건만 1년이 지나면 벌써 작아진다. 겨우 몇 번 못 입은 옷들이라 새것 같은데 버리기는 아깝고 남 주자니 마땅히 줄만한 사람들이 없었다. 그래서 딱 첫째님의 또래 친구들이 한창 자라날 시기에 못 입는 옷들과 장난감이 있다고 하면 언제든지 받는다. 그래서 첫째님과 둘째 놈의 옷에 대한 지출은 생각보단 적다.
첫째님의 유치원 친구 어머니가 장난감들과 옷을 줬다. 그럼 난 그 집에 쳐들어가서 공수해온다. 그에 대한 감사의 보답으로 장인어른이 보내준 조미오징어 세트를 줬다. 옷은 정말 깨끗하게 사용해서 새것 같은 것들이 참 많았다. 거기엔 어김없이 퍼즐이 무진장 많이 들어있다. 귀엽지 않은 동물 모양의 퍼즐이 있어서 동물을 좋아하는 둘째 놈에게 퍼즐을 보여줬다.
"이거 동물 모양인데 한번 맞춰볼래?"
라고 물어보니 아빠랑 같이 하자고 한다. 옆에 앉아서 둘째 놈이 맞추는 걸 보면 아주 환장하겠다.
5조각짜리 호랑이 모양 맞추는데 진도가 안 나간다. 마음속에선 이미 '아 왜 이것도 못 맞추냐? 이 쉬운걸! 거기 아니잖아. 아 좀 생각이란 걸 하고 맞춰라'라는 말만 계속 맴돌았다. 내 손이 먼저 가려고 한다. '이 조각은 여기에 들어가잖아'라고 가려던 손을 멈췄다. 내가 해주는 게 제일 쉽다. 그러나 퍼즐의 진정한 의미는 둘째 놈에게 지적만족과 두뇌를 풀가동하는 것이다. 스스로 해나갈 수 있게 도와줘야 하는 게 부모의 역할이니까 잠시 멈추고 나 역시 어떻게 하면 퍼즐을 좀 더 재밌게 맞추게 할 수 있을까 생각이란 걸 해봤다.
"자! 이거 봐봐. 퍼즐판 테두리를 보면 테두리 모양과 지금 네가 들고 있는 퍼즐과 같은 색과 모양이 어딨을까?"
"몰라!"
아니 어떻게 생각이라곤 1도 안 하고 곧바로 대답하는 둘째 놈에게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고 다시 물어본다.
"여기 보면 이 퍼즐의 모양은 검은색과 노란색인데 여기 테두리랑 똑같네? 퍼즐과 테두리의 색이랑 똑같지?"
"응. 아빠! 너 되게 잘한다!"
'어이구! 이 답답아!'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다시 다른 조각을 들고선 똑같이 물어봤다.
1도 생각 안 하고 대답한다. "몰라"
계속 같은 내용으로 설명을 해줬다. 다른 동물이 나오면 색이 같거나 비슷한 모양이 있는 조각부터 찾아서 맞춰보라고 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후에 둘째 놈이 나한테 말했다.
"아빠! 저기 동물퍼즐 꺼내 줘!"
"어? 저거? 너 저거 다 맞출 수 있어?"
"응"
난 믿지 않았다. '거짓말하고 있네' 하면서 퍼즐을 꺼내서 줬다. 둘째 놈은 퍼즐을 다 쏟아서 하나씩 맞춰나갔다. 그리고 6가지 동물의 퍼즐을 정말 다 맞췄다. 며칠 사이에 이걸 어떻게 다 맞췄을까 하며 대단하다고 쌍엄지를 치켜세웠다. 둘째 놈은 그러니까 매일 반복해서 맞추다 보니 위치를 외웠던 것이다.
첫째님의 친구 어머니가 또 물량공세를 시작했다. 갖가지 새로운 장난감이 왔고 이번엔 겨울왕국 퍼즐이 포함되었다. 둘째 놈은 이미 넋이 나갈 데로 나가 있었다. 여느 집 딸처럼 아침에 일어나면 아침밥 먹고 엘사 드레스로 갈아입는 '겨울왕국 빠순이'였다. 겨울왕국 퍼즐은 12조각부터 35조각까지 4종류로 되어있었다. 퍼즐을 받자마자 쏟아버리고 조각을 맞추다 바로 짜증을 냈다.
'당연하지! 제일 쉬운 것도 12조각인데 35조각짜리는 엄두도 안나거니와 차원이 다른데 이걸 그냥 쏟아서...'
퍼즐은 아이의 사고력 증진에 좋다는 말은 완벽한 거짓이다. 아주 완벽한 거짓말이다. 퍼즐 조각 하나하나에 내 머릿속에는 온갖 잔소리가 다 들어간다. 12조각이면 12가지의 잔소리가 생긴다. 35조각이면 35가지의 잔소리를 넘어서 결국 '도대체 누구 닮은 거야? 엄마 머리가 나쁜 거야 아빠 머리가 나쁜 거야'로 끝날 리 없는 결론으로 마무리된다. 분명 아내의 IQ가 나보다 높아 둘째 놈이 그걸 닮았다고 할 때는 언제고 못하면 바로 응징하는 나도 역시 악하디 악한 자였다.
우선 테두리를 먼저 보며 비슷한 조각을 맞춰보고 했다. 그렇게 하나씩 퍼즐 조각을 찾아서 같이 맞췄다. 조각수가 늘어날수록 둘째 놈이 결국 짜증을 내버려서 그날은 못했다. 나 역시 반복학습의 힘을 믿고 퍼즐을 할 때마다 똑같이 설명했다.
"테두리에 글씨 있네? 어? 글씨가 있는 조각은 어딨어? 이거랑 같은 색의 글씨가 어디 있지?"
퍼즐 한 조각이 완성되면서 또 다른 조각이 내 눈에 들어왔다.
"어? 여기 엘사 얼굴이 있네. 우리가 맞춘 조각에 엘사는 어디에 있을까? 엘사는 이쪽에 있는 것 같아. 그 옆에 안나 공주님이 있어. 안나 공주님 옷과 비슷한 색의 퍼즐은 어디에 있지?"
나도 겨울왕국 빠돌이 중 한 명이라 중간중간 겨울왕국 이야기들이 나왔다. 왜 크리스토퍼와 안나가 사랑하는데 퍼즐에는 크리스토퍼와 안나 사이에 엘사가 있어서 둘째 놈을 헷갈리게 했는지 설명을 해줘야 했다.
완성된 그림을 보면서 둘째 놈에게 색깔과 모양을 설명해줬다. 조금 더 생각할 수 있도록 약간의 역동적인 이야기를 해줬다.
"여기 스벤이 달리니까 가장 가벼운 올라프는 날아갈 거야. 어디로 날아갈까? 그렇지. 하늘로 날아가. 그럼 올라프는 위쪽에 있지 않을까?"
하지만 둘째 놈은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맞춰나갔다. 대망의 35조각도 완성했다.
"아빠! 짠! 나 잘하지?"
퍼즐 하면서 이야기를 쥐어짜 내고 이해가지 않는 그림을 설명하느라 고생한 내 마음은 모르고 지가 잘났다며 자랑질을 해댄다.
"이야! 우리 둘째 언제 이렇게 퍼즐을 잘 맞춘데?"
아내가 영혼 좀 넣어서 대답하라고 했다.
"우아! 대단해요!"
없는 영혼을 끌어올 수는 없었다.
둘째 놈은 겨울왕국 퍼즐을 매일 하더니 역시 반복학습의 힘으로 결국 그림과 조각의 위치를 다 외웠다.
첫째님은 상동 행동에 의해 퍼즐을 쏟아버리고 조각을 입에 넣는 걸 심하게 좋아한다. 둘째 놈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 겨울왕국 퍼즐을 다 쏟아버리더니 조각 하나를 입에 물고 있으면 내 잔소리와 함께 등짝을 맞으며 조각을 뱉는다. 그럼 그 조각 처리는 온전히 나의 몫이 되어버린다. 몇몇 조각의 끝 부분은 첫째님이 씹어 드셔서 약간 손상을 입었다.
그런 퍼즐 조각 청소는 정말 하기 싫다. 퍼즐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아이들의 사고력 증진 이전에 부모의 인내심, 잔소리, 뒷 청소를 각오해야 하는 엄청난 놈이었다.
둘째 놈한테 같이 맞추자고 하면 딱 한마디 한다.
"아빠! 그건 니가 해야지"
'어휴! 저걸 그냥!' 그러고는 한 조각씩 맞추다 보면 어느새 둘째 놈이 와서
"아빠 이거 여기 아니야! 여기다 맞춰야지!"
하면서 도와준다. 그리고 나보다 더 정확하게 위치를 기억한다. 퍼즐 조각 들고 "이건 여기지" 하며 알려준다.
"이야! 아니 누구 닮아 이렇게 머리가 좋아?"
라며 아내와 또 싸운다. 종이퍼즐 시작할 땐 서로 자기 안 닮았다고 하더니 이젠 서로 자기를 닮았다고 한다. 난 역시 너무 이기적인 남편이자 아빠였다.
퍼즐을 맞추다가 마지막 한 조각이 안 보인다. 그럼 퍼즐 조각이 없다며 울상이 된 둘째 놈을 위해 거실 여기저기를 다 뒤지고 다닌다.
"어? 아빠! 여깄다" 라며 조각을 짚어 든다. 둘째 놈이 조각을 깔고 앉아있었다. 깊숙한 분노가 또 튀어나오지만
그래도 찾았으니 마지막 조각을 맞추고선 하이파이브를 했다.
이제 퍼즐을 꽤 좋아하게 되어 새로운 핑크퐁 퍼즐을 사줬다. 역시 처음에는 짜증을 내면서도 어찌어찌 맞춰나간다. 아침에 눈을 뜨면 겨울왕국과 핑크퐁 퍼즐을 먼저 맞추지 않으면 아침밥을 안 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퍼즐 한 조각만 본다면 이게 어떤 그림의 어디인지 맞추는 건 참 어렵다. 하나씩 하나씩 맞춰나가다 보니 마지막 한 조각을 제자리에 놓고 나서야 그 조각의 위치를 알게 되고 완성된 그림이 보인다. 마지막 한 조각이 없어도 그림 전체를 이해하는데 무리는 없다. 하지만 뭔가 마음속 불편함과 함께 한 조각을 끝까지 찾아 맞추어야만 마음의 안정과 함께 그림을 제대로 즐기게 된다.
그 대리님이 생각났다. 많이 다퉈서 좋은 기억이 있을 리 없는 그분과의 마지막 퍼즐 조각은 바로 태블릿이었다. 그리 다퉜던 그간의 생각들과 기억들 모두 다 태블릿 한 조각을 마지막으로 이젠 즐거운 추억으로 바뀌어 버렸다. 퍼즐이 한 조각 한 조각 다 중요하지만 마지막 한 조각은 생각보다 중요했다.
그러다 보니 엉뚱한 상상을 해봤다.
만약 퍼즐 조각 하나가 생각 한 조각이라면 어떨까?
그 생각 조각을 하나씩 맞춰나가면 기억이 되겠지? 그럼 기억이란 조각을 또 하나씩 맞춰나가다 보면 추억이 되겠지. 그럼 추억이란 조각을 또 맞춰나가다 보면 무엇이 될까?
추억이 주는 기쁨과 슬픔, 행복과 좌절에서 오는 내 인생의 그림이 또 하나의 퍼즐 조각이 되어 맞춰지고 있겠지!
지금 아이들과 퍼즐을 맞추는 이 모습들을 생각하다 보면 기억하게 되고 추억이 되고 나에게 행복을 주겠구나!
내 인생의 또 한 조각 퍼즐을 맞추고 있구나!
잊혀간 대리님의 태블릿으로 시작된 퍼즐 앱부터 종이퍼즐을 겪으면서 나도 퍼즐에 대한 쓸데없는 의미를 가졌다.
퍼즐.... 그거 참 재밌는 놈이로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