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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한 Feb 11. 2021

아빠는 니 나이 때 더 했지!

결과보다는 원인, 원인을 알면 공감부터!

둘째가 거짓말을 하기 시작한 건 4살 때부터 인 듯하다. 갑자기 집안이 조용해지며 방 안에서 뭔가를 만지작하다가 "뭐하니?" 하면 얼른 감추고선 아무것도 안 했다고 한다. 기껏 종이를 찢는다던가 열지 말라고 했던 서랍을 열어서 옷을 다 꺼내 아수라장을 만들고 자기가 좋아하는 옷을 본다던가 하는 귀여울 정도였다. 현장의 널브러진 옷들이 범인은 둘째라고 가리키는데 정작 둘째 놈은 아무것도 안 했다는 듯 손에 쥐어진 옷만 뒤로 감추곤 했다.


6살이 된 요즘은 거짓말의 선을 넘어갔다. 손가락에 튼살을 자꾸 잡아당긴다. 아프기도 하지만 자기 생각에 걸리적거리는 그 살들이 신기한 건지 계속 손톱으로 뜯는다. 처음에는 뜯지 말라고 하면 "안 뜯었어!" 하며 되려 화를 낸다. 현장을 적발하고선 "거봐! 손 뜯잖아"라고 하면 현행범이 되어 증거인멸이 어려워지자 "아빠! 미안해! 다시는 안 그럴게" 라며 뽀로로에 나오는 대사를 말하기가 아니라 그냥 읽는다. 화내다가 진실 없는 용서를 구하더니 이젠 한 단계 더 나아가서 "둘째야! 너 손 뜯지 말라고 했지?" 말하자마자 "아빠!" 하고 날 부르면서 동시에 무언가를 생각한다. "아빠! 아빠! 아빠!" 하고 생각을 마쳤는지 "네가 저 물건 갖다 줘야지" 라면서 최대한 생각할 수 있는 화제 전환용 거짓말을 했다. 누가 봐도 티 나는 저 거짓말을 듣노라니 필사적으로 쥐어짜 낸 둘째 놈 모습을 보고 웃음이 나왔다.

"아빠! 왜 웃어?"라고 물어보는 둘째 놈이 참 귀여웠다.

"둘째 네가 너무 웃겨서"라고 말하면 이상한 외계어를 하고 기뻐하며 거실에서 괴상한 춤을 춘다. 지 딴에는 화제 전환용 거짓말이 성공했다는 성취감을 주체하지 못한 듯하다. 여전히도 손을 뜯어서 이젠 상처가 꽤 심해졌기에 손가락에 연고를 발라줬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손가락이 아프다며 어린이집을 못 가네, 집안 정리를 못하네 하는 핑계 같은 거짓말을 한다. 고등학교 윤리 시간에 성악설이냐 성선설이냐를 두고 논쟁을 했던 때가 기억났다. 인간은 무조건 성악설이다.

 

여느 날처럼 아침에 아이들을 깨우고 계란 간장 들기름 밥을 먹이고 아주 쫀득하게 에스프레소를 내리고 우유를 양껏 섞어 한잔한 후 안방에 있는 아내한테 라테를 상납하기 위해 들어갔다. 캄캄한 방에 아내의 얼굴이 휴대폰 화면에 빛나고 있길래 눈앞까지 가니 아내는 갑자기 "여보!"라고 말했다.

뭔가 익숙했다. 이 분위기는 분명 아내는 내가 그리 좋아하지 않는 것들을 봤을 것이다. 그러니 화제 전환을 시도하기 위한 "여보!"라는 의미 없는 말이 튀어나왔을 것이고. 그 딸의 그 엄마가 확실하다.

"둘째 놈도 잘못하면 아빠!라고 부르더니! 여보도 나한테 뭐 잘못했나 봐!" 라며 아내의 휴대폰을 강제 압수하려고 아침부터 레슬링을 시작했다.



내가 둘째 놈의 나이인 6살이 되었을 때는 '절도'를 했다. 5살 때에는 뭐가 그리 먹고 싶었는지 어머니가  냉장고 위에 올려둔 동전을 훔친 후 슈퍼마켓에 가서 뭔가를 사다가 슈퍼 아주머니의 추궁에 의해 결국 어머니한테 끌려간 기억은 있지만 가족이 아닌 남의 물건을 훔친 게 기억나는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당시 아랫집 형이 동네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호박을 발견했는데 하나는 초록색의 조롱박이었고 또 하나는 주황색의 단호박이었다. 그 형은 나에게 말해줬다.

"초록색 호박은 사이다 맛이 나고 주황색 호박은 환타 맛이 난다. 찰리 한! 우리 저거 훔쳐가자!"

전혀 논리적이지 않았지만 호기심을 자극하기에는 시각적으로는 완벽했다. 초록색은 사이다, 주황색은 오렌지맛 환타였으니. 그 말을 맹신하고는 호박 서리를 위한 계획을 세웠다. 마대포대를 어디서 구해왔고 돌멩이를 찾아 다른 돌을 쳐서 돌 끝을 날카롭게 만드는 구석기시대에나 사용했던 원초적인 행동을 했다. 인간의 생각은 구석기나 34년 전의 그날이나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도 신기하다.


누군가가 다 익으면 따려고 잘 만들어 놓은 덩굴 지지대에 달려있는 저 두 개의 호박 줄기를 돌로 자르기 시작했다. 그 형은 망을 보고 난 곧 맛볼 달콤함에 빠져 덩굴을 잘랐고 단호박은 그럭저럭 어려움 없이 잘랐지만 조롱박은 죽어도 안잘리는 것이었다.

"찰리 한! 누가 온다. 도망가자!" 라며 그 형이 외쳤지만 초록색의 사이다 맛 호박을 포기할 수 없어 자르던 돌로 줄기를 마구 내려치자 호박이 바닥으로 떨어져 깨졌다. 얼른 주워 마대포대에 집어넣고는 지하실로 도망갔다. 신이 난 우리는 깨어진 초록색 호박의 즙을 손으로 찍어 먹었다. 사이다의 달콤함과 짜릿한 탄산의 맛을 기대했건만 손으로 찍어먹은 그 맛은 거짓말같이 비리며 정말 맛이 없었다. 약간의 충격을 받고는 옆에 있는 주황색 단호박을 돌로 내려쳤다. 얼른 또 손가락으로 즙을 찍어먹고는 바로 뱉었다. 환타 맛은 무슨! 주황색이 주는 달콤함 따위는 없었다. 그 형도 맛을 보고는 바로 뱉어버렸다. 거짓말은 그 형이 했는데 애꿎은 호박한테 화풀이를 하며 내동댕이 쳤다.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놀이터로 놀러 나갔다.

하지만 머지않아 탄로 났다. 그 호박을 키우고 있던 할아버지는 우리를 보더니 갑자기 손을 붙잡고 "너네가 훔쳤지?"라고 외쳤다. 그 형은 "우리 아닌데요"라고 태연하게 거짓말을 했지만 나는 겁먹은 나머지 "네... 네"라고 대답해버렸다.

할아버지는 당장 우리 집으로 가서 아버지를 호출했고 아버지는 연신 죄송하다며 그 호박을 어쨌는지 물어봤다. 이미 깨진 호박은 지하실 바닥에 나뒹굴어서 더러워졌고 이후 변상했는지 어쨌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구두주걱로 엄청 맞은 기억만 났다. 아랫집 형의 어머니는 고등학교 음악 선생님답게 죽지 않을 만큼 때렸다고 한다. 그 할아버지가 어떻게 호박 딴 걸 알았을까 궁금했는데 나보다 좀 더 어린 남자애가 그 할아버지의 손자였고 우리가 호박 따는 걸 목격하고는 할아버지한테 일러 받쳤다. 할아버지는 그 말을 듣고 얼른 나왔지만 우린 이미 호박을 들고 도망간 후였고 우릴 추적하러 손자와 함께 동네를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발견한 것이었다.



아이들이 자라나면서 거짓말을 안 한다면 그게 더 큰 문제일 것이다. 거짓말하는 저 아이를 보노라면 한편으로는 '아! 우리 둘째 놈도 보통의 아이들처럼 크고 있구나'라는 안도감이 든다. 적어도 내가 했던 것보다는 아주 양호하니깐!

물론 그렇다고 거짓말이 좋은 건 아니기에 알려야 했다. 둘째 놈은 거짓말이 나쁘다는 걸 안다. 정확하게는 거짓말이라는 단어가 나쁜 말이란 걸 알고 거짓말이 무엇인지는 잘 모른다. 그저 자기 행동이 아빠가 싫어한다는 것만 알고는 어떡해서든 둘러대는 기술을 스스로 터득한 것이고 혼날까 봐 무섭기에 피하고 싶은 본능이 더 클 뿐이었다. 마치 내가 무언가를 먹고 싶은 호기심과 본능 때문에 어머니의 동전을 훔쳤던 것과 호박을 훔쳤던 것처럼!

아이들의 잘못한 행동을 잘 파헤쳐보면 원인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 이였다. 튼살을 뜯는 둘째 놈에게 차근차근 이야기해준다. "살을 뜯으면 손가락이 아프고 그러면 아빠 마음도 아파!"라고 했더니 전혀 이해를 못한다.

하기사 내가 언제 둘째 놈에게 마음의 공감을 해준 적이 없으니 도대체 이 아빠가 왜 안 하던 말을 할까 하며 의아해하지 않을까.

그래서 손을 뜯을 때마다 소리치기보다는 대화를 하려고 한다. 적당히 나긋나긋한 말투로 상황을 설명하려고 한다. 반복하여 말한다면 언젠가 둘째 놈 역시 아빠의 마음을 알지 않을까?


아내를 사무실에 데려다 주려 차에 타고 가는 길에 둘째 놈의 변명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여보도 궁하면 그러던데 모전녀전이 맞아 라며 장난치고 있는데 아내가 갑자기 결혼 전 자기한테 준 연애계약서의 조항을 읊더니 "뭐야! 계약서 코팅해서 문 앞에 걸어놔야겠네!"라고 말했다.

"여보!"


불리한 이야기 나오니 자동반사적으로 아내의 이름 먼저 부르는 내 모습을 보면서... 아... 그냥 우리 가족은 다 똑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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