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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한 Apr 06. 2021

특수학교에 간 첫째님

아빠! 난 잘 크고있어!

첫째님이 특수학교에 입학한 지 한 달이 됐다. 등교 첫날부터 아침 전쟁이 시작됐다. 코로나와 겨울방학, 졸업으로 인해 유치원에 안 간 지 거의 3달이 넘었기 때문에 아침 일찍 일어날 필요가 없었다. 평소엔 루틴을 위해서도 그랬고 아침에 너무 늦게까지 자면 저녁 늦게 잠을 자기 때문에 암묵적인 기상시간은 8시였다. 하지만 이젠 등교를 위해선 8시 이전에 집에서 나와야 했다. 7시 정각에 세상에서 제일 듣기 싫은 알람 소리를 들으면서 기상을 해야 했고 7시 10분에는 아침밥 첫술을 떠야 했다. 7시 30분에는 씻어야 했고 45분에는 옷을 입어야 했다. 55분이면 집을 떠나 8시 13분까지 학교버스가 정차한 곳으로 가지 않는다면 버스를 떠나보내야 한다. 3달 넘게 8시에 겨우 일어나던 첫째님의 눈은 떠질 리가 없었다. 그런 첫째님을 들쳐 매고 부엌으로 데려와 들어갈 리 없는 밥을 입에 쑤셔 넣었다. 밥을 먹으면서 잠이 깬 첫째님은 아빠의 분주한 움직임이 이해되지 않는지 멍하고 앉아 있기만 할 뿐이었다. 급한 건 나였지 첫째님은 아니었다.


둘째 놈은 아빠의 분주함에 그냥 이끌려 일어나 밥 먹겠다며 자리에 앉아 언니보다 더 허겁지겁 먹고는 항상 먹던 아몬드 3알, 요구르트와 우유를 섞어 마시겠다며 요청을 했다. 하지만 그럴만한 여유는 내 아바타가 생기지 않는 한 없었다. 빨리 첫째님을 학교버스 타는 곳까지 데려가지 않는다면 학교로 직접 등교를 시켜야 했다. 오히려 학교로 등교시키는 게 더 편했다. 차로 15분이면 도착할 정도로 가까우니 30분은 더 늦게 자도 되며 분주하게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앞으로 11년이나 다녀야 할 학교이기에 버스 타는 것부터 적응시켜야 한다고 아내와 결정을 했기에 우리 역시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었지만 해야 했다.

아내는 등교 전날까지 첫째님의 준비물과 가방 등 온갖 필요한 물품들을 다 챙겨놓고도 불안해서 잠을 설쳤다. 유치원 졸업 후부터 첫째님의 등교를 위해 이런저런 준비물들이 숙제처럼 밀려들었고 모든 걸 온라인으로 완벽하게 주문했건만 챙기다 보면 꼭 몇 개씩 물품이 빠져있어 대형마트에서 급하게 공수해오거나 로켓 배송으로 받아야 했다. 이렇듯 우리는 아직 준비되지 않는 학부모가 됐다.


8시가 되고 첫째님의 손을 잡고 학교버스가 정차하는 곳까지 걸어갔다. 아침부터 밖에 나가는 것이 신난 첫째님은 내 손을 뿌리치고 골목길을 뛰어갔다. 가방이 무거울 텐데 아랑곳하지 않고 그냥 뛰어가는 첫째님을 잡느라 군대에서나 했던 아침 구보를 했다. 신이 난 첫째님과 늦을까 봐 노심초사한 나. 우리 둘은 서로 다른 기분을 갖은 채 학교버스가 정차한 곳까지 달려갔고 저 멀리 노란색의 학교버스가 보였다.

버스 앞에서 기사님과 실무사님 에게 인사를 하는데 첫째님이 버스에 타기를 거부했다. 평소 승용차만 타고 다녔기에 커다랗고 계단이 있는 버스를 타는 게 낯선 건지, 아니면 계단이 있는 높고 좁은 곳을 올라가는 게 싫은 건지 주저앉아버렸고 어쩔 수 없이 첫째님과 함께 좌석으로 이동했다. 안전벨트를 매고 있는 중에 뒷자리에 앉은 남학생이 사탕을 건넸지만 뿌리치고는 시크하게 창밖을 쳐다보는 첫째님! 버스 탑승부터 뭔가 삐그덕거렸다. 그제야 난 첫째님이 학교 생활을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


전날 잠을 설친 아내와 반대로 난 큰 걱정이 없었기에 첫째님이 잘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버스 타는 걸 저리도 무서워하는 걸 보니 조금씩 신경이 쓰였지만 이제 8살이 됐고 학교에 보내기로 한 만큼 그 사회에서는 첫째님이 잘 해내야 했다. 그걸 믿어야 했고 선생님들의 경력 또한 믿어야 했다.



한 달이 지난 지금의 첫째님은 조금 의젓해졌다. 누군가에게는 보이지 않는 성장이지만 나에게, 아내에게 있어서 만큼은 성장하는 모습이 보이고 있다. 착석 시간이 10분도 안되던 아이가 15분을 넘기고 30분 정도까지 앉아있을 때, 눈 맞춤이 좋아지고 웃음이 많아지며 표정이 다양해질 때, 완벽하지 않지만 옷을 벗고 입으려는 시도를 할 때, 정확하진 않아도 뭔가 단어를 말하려고 할 때, 둘째 놈과 내가 노는 모습을 보며 재밌어서 웃을 때를 보면 학교 보내길 잘했다며 아내와 함께 기뻐했다.

아이는 스스로 잘 크고 있었다. 우리가 아이를 믿지 못하는 것이 문제였을 뿐!

물론  성장은 드라마틱하지는 않다. 기저귀를 갑자기 뗀다던가, 혼자 옷을 벗고 입는다던가, 밥숟갈을 들고 흘리지 않고 밥을 먹는다 던가 하는 비장애 둘째 놈처럼 한방에 완벽하게 변하진 않았다. 다만 우리 부부와 재활치료사들이 아는 눈에 보이는 성장,  성장을 바라보며 하나씩 기대 라는 걸 하는 우리들의 믿음에 보답하듯 첫째님은 열심히 성장 중이었다.

가끔 첫째님이 우릴 쳐다보며 웃는다. 그 웃음의 의미는 뭘까?

 "아빠! 난 어쨌든 잘 크고 있으니 아빠나 좀 걱정해!"


내 생각보다 빠르게 자라는 것 같으면서도 느리게 자라는 이 첫째님의 성장이 기쁨과 행복이자 불안과 걱정이다. 우리 같이 노력해서 앞날을 잘 준비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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