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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한 Mar 26. 2021

아내와 잡담 2

여자들의 마음은 그러한 듯!

동네에 신상 카페가 생겼다. 로스팅 머신은 누가 봐도 비싸 보였다. 에스프레소 머신 역시 상당한 가격대라 사장님이 커피에 얼마나 애정을 쏟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커피맛은 역시나 내 취향에 딱 맞았고 가격대도 아주 괜찮았다. 이 정도의 커피를 이 가격에 동네에서 맛보게 될 것이라 생각도 못했는데 하면서 단골이 되려고 열심히 방문 중이다. 여느 학교 근처 카페와 마찬가지로 여기도 아침시간이면 자녀를 등교시킨 엄마들이 방문한다. 커피를 주문하고 글을 쓰려고 잠시 멍 하고 있는데 바로 뒤에 4명의 엄마들이 수다를 시작하셨다. 안 듣고 싶은데 들릴 수밖에 없어서 잠시 들어봤다.


포문은 본인들의 젊은 시절 사랑 얘기였다. 그 남자와 헤어지길 잘했다부터 사내연애로 지금의 남편이 돼버렸고 결혼생활 5년 지나서는 로맨스가 없어서 사랑받길 포기했으며 이혼을 하네 마네, 아이가 있으니 안된다며 이대로 이렇게 살아가는 게 맞는 건지 확신이 없다며 마지막은 자식들이 요즘 어떻게 지내며 어떤 교육을 해야 하는지 정보를 공유하며 유쾌하게 자리를 떠났다. 본인들의 리즈시절 자랑을 하는 줄 알았는데 계속 듣다 보니 저분들도 엄마, 아내의 계급장을 떼내면 평범한 여성이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 존재였다. 그리고 그들의 남편은 나와 같이 무뚝뚝하고 연애할 땐 분명 하늘의 별을 따다 줄 것처럼 하더니만 이젠 별똥별 떨어지기만 기다릴 뿐이었다.



아내와 난 여러 분야에 대해 얘기를 한다. 재밌는 티브이 프로그램, 정치, 경제, 범죄, 종교 등등. 그렇다고 뭔가 엄청 깊고 전문적이지는 않고 이런이런 일들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서로의 생각과 의견을 듣는다. 하지만 대화의 주제가 사랑으로 가면 내가 너무 무뚝뚝해지거나 평소에 사랑한다는 표현을 안 해서 서운하다고 했다. 처음엔 그러지 않았는데 지금은 변했다고 하면 난 변한 게 하나도 없는데 뭐가 그리 변했는지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아니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데 연애 초기에는 도파민 호르몬이 미친 듯이 분비됐기에 모든 걸 다 해낼 것처럼 행동했지만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걸 나만 눈치채지 못한 것이었다. 부부싸움은 거의 안 하지만 하게 된다면 바로 이 부분 때문에 하게 된다.


아내에게는 '사랑을 받고 있구나'라고 생각되는 건 매우 중요했다. 이건 아내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 모든 여자들에게 해당될 것이다. 언제나 사랑받고 싶은 존재이며 못되게 굴어도 다 용서해 줄 수 있는 태평양 보다 좀 작은 마음을 가진 남자를 만나 본인의 밑바닥 인생을 보여줘도 언제나 괜찮다며 다독여줄 수 있는 평생 반려자를 만나기를 바랐는데 그게 하필이면 안타깝게도 '나'였다.

아내에게는 태평양 보다 조금 작은 마음으로 보일지 몰라도 내가 본 내 마음은 태평양은 고사하고 세숫대야 넓이도 안 되는 속 좁은 마음들이 보였다. 내색하지 않고 변함없어 보이는 듯이 행동하지만 마음속에는 아주 속이 좁아터질 정도의 나를 마주하고 있노라면 왜 난 모든 걸 허용해주지 못할까 라는 반성을 한다.

둘째 아이에게 모든 걸 허용하는 호구 아빠의 모습이 부러운지 자기한테도 그런 호구같이 모든 걸 허용해달라고 하면 딱 잘라 말했다.

"여보는 생각이 있는 어른이잖아! 쟤는 생각이 없는 미물이니까! 지금 사랑 안 받으면 언제 사랑받냐?"

말을 하고 나니 그렇게 따지면 아내한테는 지금 사랑한다고 말 안 하면 언제 사랑한다고 말할까? 한 10년 후에는 과연 내가 잘 말할 수 있을까? 지금도 안 하는데 나중에 잘한다는 게 과연 말이 될까?

그러다 보니 아내가 재밌는 묘책을 하나 내놨다.

"찰리 한!"

"사랑한다! 데이지!"

내 이름을 부르면 자동적으로 아내한테 사랑한다는 표현을 한다. 다른 일을 하거나 정신이 팔려있으면 "응"이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래도 최대한 신경 쓰고 대답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이렇게라도 안 하면 난 아마 평생 사랑한다는 말을 정말 안 하고 살 것 같았다. 그런 점에서 아내의 저 묘책은 매우 효과적이다. 사랑한다는 말이 어색한 내가 의무적으로 말을 하다 보니 대답하는 내 모습이 아주 어색하진 않았다.



자녀들을 학교에 보낸 엄마들은 어느덧 자녀를 양육하는 엄마이자 남편을 챙기는 아내의 역할만 하다 보니 본인도 사랑받아야 할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놓쳤을지도 모른다. 뒤를 돌아보니 나는 사랑을 받지 못하고 누군가를 뒷바라지해야 하는 존재가 돼버렸다는 걸 깨닫게 됐지만 세월이 흐르다 보니 나를 사랑해줄 사람이 나 이외에는 없던 것이다. 그런 엄마들이 자녀를 학교에 보낸 후 카페에서 그나마 서로를 위로하며 격하게 공감해주고 있었다. 이런 상태로 계속 삶이 지속된다면 우리 부모님처럼 대화가 없는 부부가 될 것 같았다.


우리 부모님은 서로 대화를 안 했다. 내 앞에서만 안 한 걸 수 있지만 지금 보니 서로 소통하기를 포기한 듯하다. '부부니까 알아주겠지'라는 생각을 갖거나 아니면 대화를 하려고 몇 번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해서 그런지 크게 피해 주지 않고 생활하면서 40년 결혼경력에 의해 서로가 필요하는 것들을 채워주고 도와주며 지내고 있다. 물론 그게 서로가 사랑하니까 하는 최소한의 표현일 수 있다.

하지만 행동만으로 알아달라는 것보다 말 한마디 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건 하나님이 주둥이를 우리에게 준 이유일 것이다. 저 엄마들도 남편에게 '나 좀 사랑해줘'라는 표현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남편들에겐 아내를 사랑하는 것보다 사회생활이 더 중요해서, 아이를 양육할 비용을 버는 것이 더 중요해서 하는 행동들이 아내를 사랑해서 하는 것이다 라고 나름의 표현을 하는 것일 수 있다.


카페의 엄마들이나 아내나 우리 어머니나 모두 여자라는 동물임은 틀림없다. 나이 들어서도 "예뻐요" 라던지 "너무 고와요"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여자!

이들에게 저런 말은 설레게도 하겠지만 더 필요로 하는 건 바로 같이 살아가야 할 평생의 반려자인 남편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 줄 표현, 내 생각과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닌 그들이 원하는 표현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엄마들이 사랑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으면 카페에서 남편 자랑을 하지 않았을까? 아내는 굳이 날 훈련시키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40년이 넘어도 깨가 쏟아지는 부모님의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아내한테 '나와 결혼한 게 행복해?'라고 물어봤다. 지금은 나와 결혼해서 행복하다고 한다. 난 여전히 백수남편인데 뭐가 그리 행복할까 궁금했다. 그냥 나와 있으면 편해진다고 하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 내가 아내의 입장이라면 당장 어디라도 나가서 돈을 벌어오라고 했을 텐데 아내는 그것보다 나와 함께 있는 편안함이 좋은 것 같다. 그 말을 들으니 한편으론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미안한 마음도 든다. 가족에게 최선을 다하는 내 모습이 아직은 쓸모 있어 다행이었고 남들처럼 치열하게 삶을 살지 못한 나 자신의 모습이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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