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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한 Apr 15. 2021

아내와 잡담 3

아내의 취미는 옳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쯤으로 기억된다. 동물을 너무 좋아하는 나와 누나는 시장길을 지나가다 어느 상점 앞에서 나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가 상자에 강아지 3마리를 담아놓고서 한 마리당 25,000원에 판매를 하고 있었다. 얼른 어머니에게 달려가 시장에 강아지를 파는데 한 마리 사달라고 조르고 졸랐다. 가족 모두가 동물을 좋아하고 특히 강아지를 너무 좋아하기에 어머니도 우리가 조금은 컸으니 사도 되겠다 생각이 들었는지 강아지 한 마리를 샀다.

상자 안에 3마리 강아지는 누렁이, 검댕이 그리고 남은 한 마리는 흰색에 갈색이 뒤섞여 있었고 우린 단번에 흰색과 갈색이 섞인 강아지를 집었다. 견종은 치와와와 발바리가 섞여있어 치와와처럼 눈망울이 매우 크며 주인 이외에는 이빨을 드러내는 특성을 갖았으며 발바리처럼 털이 났기에 너무 예뻐서 이름을 예삐라고 지었다. 처음 온 예삐는 다리 한쪽을 절었다. 교통사고를 당한 건지 아니면 그냥 불편한 건지 해서 다른 강아지로 바꾸려 했지만 너무 예뻐서 바꾸고 싶지 않았다. 가족의 보살핌에 다리는 다 나았고 내가 제일 잘해주고 좋아해 줬지만 예삐는 집안 서열이 파악되자마자 날 정말 개무시하듯 대했다. 아무리 잘해줘도 무시하고 아버지가 술 마시고 올 때만 내 침대로 올라와 피신하곤 했다. 그렇게 우리의 사랑을 듬북 받았던 그 25,000원짜리 강아지는 무려 18년이라는 긴 세월 우리와 함께 있다 세상을 떠났다.

이별의 아픔 때문에 한동안 강아지를 못 키웠고 안 키웠지만 어머니의 지인이 먼 여행을 떠난다며 요크셔테리어 한 마리를 우리 집에 떠넘기듯 맡기고 갔다. 이름은 아이비였는데 어쩔 수 없이 받았으니 그냥 키워야 했는데 아이비는 예삐만큼 또리 또리 하지도 않았고 모든 면에서 비교됐다.

흔히 '똥개' 라 불렸지만 아주 똑똑했던 예삐와 다르게 영국의 메이커 견종 '요크셔테리어'인데 영 엉망이었다. 가족이 들어오면 가끔 몰라보고 짖는 경우도 있고 냄새를 잘 못 맡아서 사료를 이불속에 숨겨놓으면 못 찾았다. 상황 파악도 빠르지 않아 아버지가 술 마시고 들어와도 분위기 파악 못하고 가서 안기다 술냄새를 뒤늦게 맡곤 빠져나오려 안간힘을 썼다. 성질도 급해서 장난을 치면 계속 재채기를 해댔다. 너무 비교됐지만 그래도 아이비는 나를 잘 따랐고 모두에게 순둥순둥 했기에 가족 모두의 사랑을 잘 받았다.

주인과 교감하는 동물들이 좋다 보니 식물을 키운다는 건 전혀 생각한 적이 없었다. 딱 한번 20대 초에 썸을 탔던 이성친구에게 로즈메리 화분을 받았을 땐 '난 식물도 잘 키우는 섬세한 남자야!'라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열심히 키웠다. 하지만 입영통보를 받고 군대 간 사이에 아무도 관리해주지 않아 100일 휴가 나와보니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조금 아쉽긴 했지만 어차피 썸 타던 이성친구도 입대하며 만나지 않았으니 말라비틀어진 식물에 미련 따윈 없었다.



아내는 싱글일 때 고양이를 키웠다. 하얀색의 터키시 앙고라였고 이름은 '랑이'였다. 이름도 참 단순하며 약간 개과인 고양이였다. 겁은 많아도 시크하지 않아 사람을 그럭저럭 잘 따랐다. 강아지와 또 다른 매력 때문인지 고양이의 매력에 빠지면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 고양이는 매우 섬새 하며 산책 나가지 못하는 아쉬움 빼면 집에서 키우기엔 나에게 너무 재밌는 존재였다. 하지만 첫째를 임신하며 부족한 정보로 인해 아쉽게도 고양이를 부모님 댁으로 보내야 했고 부모님 역시 고양이의 마법에 푹 빠져버려 랑이가 죽고 다른 고양이를 입양해서 키울 정도로 묘한 매력을 가진 동물이었다.

그렇게 교감을 통해 오는 즐거움을 줬던 동물을 좋아하는 나였는데 요즘 아내한테 이런 말을 했다.


"데이지! 나 식물 하나만 사줘!"


뜬금없이 아내한테 식물을 사달라고 조르는 날 황당해하며 쳐다봤다. 우리 집은 동향이라 식물 키우기엔 그리 적합하지 않았다. 상추를 키운다며 상추 키트를 샀지만 상추보다 버섯이 더 잘 자랐으며 햇빛은 11시가 지나면 발코니에 전혀 들어오지 않다 보니 음지식물들만 잘 자라는 환경이었다. 아내는 여러 가지 식물을 도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럴 때마다 내 잔소리를 들으면서 화분과 식물을 죄다 버려야 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식물을 꾸준히 구매했다. 최근 겨울을 버티지 못하고 커다란 해피트리가 동사해버렸다. 첫째님이 이파리를 잡아 뜯어도 버티던 강인한 녀석이었는데 추위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도대체 왜 죽일걸 자꾸 사냐며 내 핀잔을 들어도 아내는 식물이 주는 즐거움이 있다며 뭔가에 홀린 듯 식물들에게 대화를 하고 물을 주고 햇빛이 잘 들면 발코니 앞에 거치대를 설치하며 돌봤다.

교감이 되는 반려견이나 반려묘 키우는 건 이해가 되지만 저 대답도 없고 자라는 것 같지도 않은, 햇빛과 물만 필요로 하는 아무 감흥 없는 것들을 키우는 아내가 백번 양보해도 이해되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아내한테 식물을 사달라고 하니 아내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하지만 내가 식물을 키우고 싶은 이유는 아마도 아내와 같은 이유였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아내를 이해하게 됐기 때문이다.


요즘 아이들이 커가면서 내 뜻대로 크진 않는다. 말하는 것에 반대로 행동하는 건 아주 기본이며 첫째님은 자아가 생기다 보니 놀고 싶은 데 가자고 끌고 가면 손톱으로 긁거나 대성통곡한다. 둘째 놈은 말해 무얼 하랴! 여느 6살처럼 슈퍼 초 똘아이가 되어 집에 안 간다는 말은 기본이고 언제나 'why'를 입에 달고 산다. 아이들과 그렇게 억지로 신나게 놀아주고 집에 오면 녹초가 되어 저녁을 준비하고 밥 먹이고 씻기고 재운다. 뭐든지 적당히 하면 좋은데 아이들과의 교감은 적당히는 없었다. 지나치면 지나쳤지 모자라진 않다 보니 그냥 조용히 나에게 어떠한 말도 걸지 않고 바라보면 편안해지고 내 관리 없어도 누군가의 힘에 의해 잘 자라는 것들이 자연스럽게 필요해졌다. 그것에 최적화된 건 그렇게 아내한테 이해가 안 된다고 했던 '식물' 이였다.

반려동물을 넘어서 반려식물이라는 단어의 탄생도  그런지 알겠다.   해도 햇빛과 물만 주면 어느 정도  자라고  힘겨워 보인다 싶으면 영양제 꽂아주고 예쁜 꽃에 물을 주고 햇빛에 놓으면 반짝이는 보석 같았다.  꽃향기에 초대받은 벌과 초대하지 않았는데도 꼬이는 파리들이 뒤섞여 날아다니는  보면 마음 한쪽에 힐링이라고 하는 편안함이 온다.  편안함이 주는 것이 반려식물이라 불리는 이유 아닐까?

편안함은 10대 시절에 제일 따분한 기분이었지만 지금은 최고의 기분이었다.



아내는 편안함을 바랐을지도 모른다. 여러 사람들과 감정 노동하랴, 첫째님의 앞날에 대한 기대와 불안감에 걱정하랴, 집안일하랴 이거 하랴 저거 하랴 분주함이 가득한 여느 워킹맘처럼 지내다 보니 편안함이 필요했었나 보다. 그래서 꼭 뭔가를 요청하지 않아도 묵묵히 그 자리에서 잘 자라는 식물이 필요했나 보다. 그제야 아내의 마음이 이해됐다. 대인관계에 지치다 보면 나에게 뭔가를 요구하지 않아도, 내 감정을 쏟아내거나 안정감을 주는 것들이 필요하다. 그게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라면 더 좋지만 꼭 그런 친구나 배우자를 요구할 수도 없다. 남편인 내가 들어주는 것도 한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취미가 필요한데 식물을 키우는 취미를 가지면서 그게 주는 편안함이 좋았나 보다. 그런 취미를 내가 따라가는 걸 보니 나 역시도 지금 상황이 즐거우면서도 편안함이 필요한가 보다.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브런치에 글 쓰는 것 역시 아내의 취미였다. 난 그 취미를 또 그대로 따라 하고 있었다.


아내의 취미는 옳았다. 고양이를 키울 때에도 묘한 매력을 소개해주더니 이제 글 쓰는 것에 감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묘한 매력을 줬고 식물이 주는 편안함을 알게 해주는 또 묘한 매력을 소개해줬다. 그렇게 아내의, 여자의 취미는 언제나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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