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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한 Nov 12. 2020

빠직 7장: 거짓말! 영유아 검진의 불편함 (1/2)

나만 나쁜 아빠였어?

영유아건강검진: 생후 4개월부터 71개월까지의 영유아를 대상으로 검진시기별로 선정하여 검진함. 나라에서 해주며, 시기별로 건강검진과 구강검진을 실시한다. 친절하게도 우편으로 아이 이름과 시기에 맞는 검진을 안내해준다.

검진항목 및 주의사항

- 문진 및 진찰, 신체계측, 발달평가, 구강검진, 정서발달

- 건강교육 (안전사고예방, 영양, 수면, 구강, 취학 전 준비)

- 검진 가능 기간 : 검진일 기준 각 검진 시작월 0일부터 종료월까지



첫째님에 대한 예방접종은 병원에서 준 수첩에 맞는 시기별로 완료했다. 물론 몇 개 빼먹어서 한 번에 두 번, 양쪽 팔에 접종한 날도 있어서 '아빠가 미안해'를 또 100번 외쳤었다. 하지만 영유아 건강검진 이란 단어는 생소했었고, 국가에서 무료로 해준다고 했다. 하지만 그저 국가에서 날아오는 우편물들은 모조리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육아 만으로도 내 정신세계에는 온전한 것은 없었다.


회사에 있던 아내한테 연락이 왔다.

"여보. 건강검진 안 해??"


"뭔 검진?? 예방접종은 다 했는데"

철두철미하게 모든 걸 계획해서 실행하는 아내와는 달리 난 눈앞에 보이는 것들만 해치우는 성격이다. 그러다 보니 아내와 잦은 마찰은 필수였고, 언제나 변명을 하기 일수였다. 웬 검진을 해? 예방은 다 끝냈구먼 하던 찰나 문득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던 우편물들이 생각났다.

혹시..... 나 하는 마음으로 쓰레기통을 뒤져봤다. 거기에는 아주 친절하게 발달검사의 차수와 각 차수에 맞는 검진 가능 기간이 나와있었다.


헙스! 일주일도 안 남았다. 기간을 놓칠 수는 없었다. 다시 아내한테 전화했다.

"여보... 찾았어. 이거 받아야 하는 거래"


아내의 한숨이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듯했다. 육아 탈출로 모든 것이 용서되었던 아내는 1개월이 지난 후부터는 일이 손에 익지 않아 본인의 무능함을 자책하며 딥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나를 아주 답답해하며 얼른 받으라고 했다.

근데 이거 온라인으로 먼저 신청해야 했었다. 나는 정말 절차에 대해 1도 몰랐었다. 그냥 병원 가서 하면 되는 줄 알았다. 결국 아내가 일사천리로 병원 지정하여 예약을 했다.


다행히 우리가 자주 가던 어린이병원에서 할 수 있었다. 첫째님과 함께 병원에 가서 건강 검진하러 왔다고 하니 간호사님이 웹상에서 빠트린 부분이 있었는지 문진표 재작성을 요청했다.

 

"아니 무슨 질문이 이렇게 많아요?"

무슨 문진표가 이렇게 많을까. 이제 막 2년도 안된 아기들인데... 하면서 질문을 읽어봤다. 이건 다 부모가 아이를 보는 관점에서 표시해야 하는, 어찌 보면 너무나도 주관적인 대답들 이였다.

천천히 문진표를 작성하다 보니 헷갈리는 것도, 처음 들어보는 것도, 자기반성을 하게 만드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 제일 말도 안 되는 질문이 있었다. 영양교육파트의 7번 문제였다. 


군대에서 유격훈련받을 때 7번 '온몸 비틀기'라는 동작이 있었다. 교관한테도 욕 할 정도로 힘들었다. 한데 여기도 7번 문제가 문제가 되었다. 도대체가 이놈의 7 번들은 왜 죄다 이모양이냐.


그 질문은 여하튼 이랬다.

"아이와 함께 식사하는 시간이 즐겁습니까"


"전 안 기쁜데요? 아니 기쁜 사람 있어요? 진짜 이런 사람이 있어요?"

라고 간호사님에게 반문했고, 소아과에 앉아 있던 아이들의 엄마는 일제히 내 말을 듣고 빵 터졌다. 간호사님도 빵 터졌다. 그리고는 몇몇 분들은 있다는 대답을 들었다. 몇몇, 다수가 아닌 아주 소수라서 조금의 위안을 받고 그렇게 검사를 마쳤다. 이후 잊히지 않는 그 질문을 아내한테 해봤다.

"여보, 애 밥 줄 때 행복해?"


나는 문진표에 그런 질문이 있다는 것을 알린 후에 아내는 대답했다.

"화가 치밀어 오르지"


첫째님에게 밥을 줄 때의 상황은 이렇다.

이유식을 숟가락으로 떠서 입에 넣는다. 첫째님이 뱉지 않으면 다행이고, 손으로 주무르고, 얼굴에 다 묻히고, 거의 없다시피 하는 머리카락에 묻히고, 옷이고, 바닥이고 식탁이고 나발이고 할 것 없이 모든 것들이 엉망이 돼버린다. 가제수건 100만 장으로 아이 얼굴을 닦고, 바닥에 떨어진 것들을 물티슈로 닦다가 나도 모르게 그만 그 물티슈로 첫째님의 입을 닦아버렸다. 내 정신도 엉망이 돼버린다. 행복보다는 화가 치밀어 오르고 짜증만 가득하고 안 먹는 아이의 얼굴을 쥐어박고 싶을 정도였다.


18개월이 지난 아이들은 잘 먹는다던데, 숟가락 주면 흘려도 퍼먹는 다던데. 그런데 우리 첫째님은 숟가락이라는 도구 활용에 대한 '인지'조차 없었다. 손에 숟가락을 쥐어 줄 엄두는 꿈도 못 꿨고, 음식의 질감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여 원하는 질감이 아니면 다 뱉어버린다. 문제는 식욕조차 없다. 뭔가 맛있는 걸로 유혹을 하던가, 배가 고프면 울고 떼를 쓰는'싸인'이 와야 하는데 첫째님은 그런 것조차 없기 때문에 굶기면 진짜 굶어 죽을 것 같았다. 먹는 것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건가 하며 속상하기만 했다. 이런 반복적 일상들이 지속되다 보니 그냥 첫째님은 '장애가 있어서 그래'라는 그럴싸한 이유와 내 행동에 대한 합리화를 시켰다.


하지만 질문이 영 불편했다. 마음이 계속 불편했다. 그러다 보니 의심만 커진다.

"정말 있나? 아니면 나만 장애아이를 키워서 그런 건가? 나만 힘든 거였나?"


이상했다. 저 질문이 왜 그리 불편했을까?
그렇게 잊고 지내던 질문에 대해 정답은 아니지만 즐거워야 할 이유를 지금에서야 조금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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