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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한 Nov 06. 2020

빠직 6장: 하지 말았어야 할 육아랩 배틀

굳이 할 이유도 없었는데 말이지

첫째의 육아는 언제나 신세계로의 초대였다. 똥을 분석하고, 루틴은 거의 파악 다 되었고 뭔가 육아에 대한 자신감도 생기면서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나름의 노력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 좀 아이 키우는 엄마 같은 사람에 한걸음 다가갔다는 것이 무언가 훈장 하나 달았다는 느낌이 들 만큼 좋았다.


"아이에게 말을 걸어주는 게 참 중요해"

나름 주위에서 주워들은 정보는 많았다. 아이와 상호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알아듣던지, 못 알아듣던지 항상 말을 걸어줘라, 라디오가 고장 난 것처럼 쉼 없이 주절주절 거려라.


첫째님은 근육이 약해서 언제나 입이 벌어졌고, 발음을 위한 근육들도 모두 그랬다. 그래서 발음이 뭉개진다. 더욱 열심히 말을 걸어야 했고, 반응이 오지 않더라도 계속 발음을 유도해야 했다.

그중에 첫째님에게 제일 반응이 오는 쉬운 단어는 바로 "물개"였다.

아이들이 가장 하기 어려운 초 고난도 'ㅂ, ㅆ'도 안 들어갔고 슈퍼 초 쉬운 'ㅇ'도 없지만 '물개'라는 단어는 생각보다 첫째님 에게는 흥미로운 듯했다. 물론 '물개'는 '문데'로 변환해서 발음하는 것은 함정이지만.


이제부터 보는 모든 물체는 죄다 '물개'가 되었다. 대형마트에 가서 보이는 모든 것들에게 내가 창조주인 마냥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건 물개야"

"어? 저거? 저것도 물개야"


그렇게 돌아다니다 시식코너를 발견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건 남이 해주는 것이다'라는 마음속 진리를 믿으며 시식코너는 꼭 빼지 않고 들린다. 그리고 역시나 시식코너 앞에 서서 또 말한다.

"아빠 물개 먹을게, 물개 너무 맛있다"


그럼 우리 첫째님이 반응을 한다.

"문데문데문데..."


'문데'라고 말을 하는 첫째님의 반응이 너무 좋아서 탄력을 받고 더 '물개'를 외치고 다녔다.

지나가는 버스도'물개', 그 안에 탄 사람들도 '물개' 그렇게 물개 물개 물개....


이젠 치료를 받으러 갈 시간이 되었다. 여느 때처럼 아이는 40분 치료를 받고 나는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여유를 부렸었다. 재활치료가 끝나고 10분간 부모상담 시간에는 알아들을 수 없는 선생님의 얘기를 흘려들으면서 아이를 아기띠에 매고 그렇게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역시나 자리는 없었다. 하지만 난 괜찮았다. 첫째님도 내가 앉아있는 것보다는 서있는 게 더 편했고 차장 밖 풍경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서 자리를 양보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정중하게 사양했다.


그때 문이 열리고 옆으로 누군가 왔다. 나도 모르게 엄마와 아이를 보면서 추리를 하기 시작했다.


'엄마의 머리가 클어졌다. 눈밑에 다크서클이 있다.  많이  자는구나. 대충 아이의 낮잠 사이클이 파악  됐나 보다. 하지만 눈이 말똥말똥하다는  분명 아이에게 뭔가를 해줘야 한다는 책임감이 강하다는 것이다. 아기띠가 세탁한  치고 너무 깨끗하다는   거다.  묻은 흔적이 없다는  아기띠를   얼마  되었다. 아이가 앞보기 한다는  목을 가눌  있다. 아기의 눈이 말똥말똥하고 사람과  맞춤을 하고 웃을  있다. 그럼  아이는 적어도 7개월 이상의 아이다...'


우리 첫째님은 당시 15개월이 넘어가고 있었지만 신체적, 지적, 여러 가지 수준은 저 아이와 비슷했다.

이윽고 버스가 출발했다. 근데 묘한 눈길이 오고 간다.


"뭐지? 내 아이는 양말이 없는데 저 아이는 양말을 신었네"

갑자기 시어머니들의 잔소리들이 스쳐가면서 경쟁심이 솟아났다. 이대로면 뭔가 의문의 1패 인 것 같은 느낌을 지워야 했다.


미션 No.6 : 지지 마라!


"자, 첫째야. 우리가 타는 버스는 1234 버스야. 이 버스는 저상버스야. 저상버스가 뭔지 알아?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위한.... 나불나불 나불... 이야"


분명 방금 전까지도 '물개'라고 알려줬던 내 마음속 깊은 곳에 '경쟁심', '패배자'라는 단어 때문에 문장이 길어지고 첫째님이 절대 알아들을 수 없는 용어들이 랩처럼 마구 튀어나왔다.


허나, 그 엄마의 아이도 첫째이고 처음 육아를 하는 게 분명했다. 나를 힐끔 보고는 갑자기 그 아이한테 설명한다. 지나가는 버스를 보고는

"저건 00 버스, 저건 000 버스, 저 멀리 파란색은 000 버스야. 저건 지선버스, 저건 간선버스...."


초보였다. 그 엄마도 나와 같은 초보였던 것이다. 분명 그 아이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미 우린 절대 지지 않겠다 라는 승부욕에 휩싸였다.


'얼시구? 나와 감히 대결을??? 나 교육회사 다니는 남자야'

쓸데없는 자존심이 튀어나왔다. 아주 오만한 마음으로 말이다.


우리 첫째님 눈이 감긴다. 서서히 기절하려고 한다. 난 패배를 당할 수 없다. 자려는 첫째님을 마구 깨웠다.

"자 봐봐. 저기 창밖에 보면 저 간판은 무슨 색이고 뭐라고 쓰여있고, 저기.. 우아 저 색 너무 예쁘다...."


갑자기 역사를 읊기 시작했다. '아빠가 여기서 30년을 살았네, 여긴 원래 뭐였네, 버스정류장의 이름이 왜 그렇게 됐는지 그 유래는 말이야~' 하면서 쉬지 않고 폭풍 랩을 시전 했다.


그 엄마도 절대 지지 않았다. 그 아이도 졸려 죽으려는데 그걸 깨우고선 말을 걸었다. 역시 폭풍 랩으로 모든 것들을 쏟아내는 중이었다.


"으아앙~!"

결국 졸음을 이기지 못한 우리 첫째님이 먼저 울었다.


"젠장.... 졌다"


나는 패배했다. 그러자 그 엄마는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아이를 재웠다.

나는 얼른 첫째님한테 사과했다.

"아빠가.... 미안해"


초보 엄마와 초보 아빠 때문에 죽어나는 건 아이들 뿐이었다.

세상 정말 쓸데없는 육아랩 배틀을 하고 난 후 반성했다.

'다시는 하지 않으리!'


아빠도 육아가 처음이다 보니 욕심만 많아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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