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친해질 수 없는 것들 '머리 묶기'와 '머리핀'
배우자육아휴직 으로 인해 첫째님과 함께 지내다 보니 점점 아이의 낮잠과 활동시간, 즉 루틴을 이해하게 되었다. 자야 할 시간에 재우지 않아 꼬장 대마왕이 되기 전에 잘 재우면 편안해진다. 기저귀에 쉬를 해도, 응가를 해도 다운 천사 특유의 감각이 무딘 탓에 손으로 기저귀 만저보고 대충 감으로 맞춰서 갈아준다. 가끔 '똥 쓰나미' 때문에 카시트며, 이불이며, 내 옷이며 아주 대환장의 파티를 한 나날들을 기억하고 몸으로 습득하다 보니 내 손과 후각에 대한 감각이 점점 탁월해진다. 그렇게 난 '육아'로의 초대로 인해 한 발짝 '엄마'에 접근하고 있다.
하지만 범접하지 못할 것들이 있다. 바로 예쁨, 영어로는 'beautiful' 'pretty'이다.
첫째님의 여자다움에 대한 것들은 나에게는 너무나도 큰 과제였다.
그 흔한 핀 조차 꼽지 못했다. 아이는 머리숱이 적고, 머리카락이 짧아서 할 수 없기도 했지만 난 해본 적 조차 없었다. 누나가 머리를 할 때엔 관심도 없었고, 어머니는 그냥 철모 아줌마 파마만 하던 탓에 여자가 꾸미는 것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 첫째님 에게 그 영향이 고스란히 간다. 아침 재활치료 가기 전에 옷 입히고 이것저것 기저귀 가방에 챙긴 후 거울 앞에서 사진 한번 찰칵한 후 아내한테 보낸다. 그럼 재 빠르게 답장이 온다.
"여보, 뭐라도 좀 꼽아봐!"
'꼽긴 뭘 꼽는다는 건가. 꼬으면 네가 꼽던가'
그렇게 약간의 투덜과 함께 재활치료를 갔다. 그러나 오후 다운복지관에서의 수업 때는 얘기가 좀 달라진다.
수업에 참여하는 아이는 총 5명이다. 그중 정말 신기하게도 아빠가 나 포함 3명이다. 하지만 다른 아빠가 보는 딸의 머리는 아주 예쁘게 따여져있었다. 온갖 형용색색의 고무줄로 묶여 있었다. 그에 반해 내 딸은 아주
자연스러움, 어떠한 꾸밈도 없는 굉장히 'natural' 한 상태였다.
같은 수업에 참여한 엄마가 얘기했다.
"00 아빠. 얘 좀 꾸미고 다녀요. 남자도 아닌데.."
아내와 엄청 친하고 또 아내가 매우 존경하는 엄마라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해도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어떻게.. 전 잘 못하겠어요"
그렇게 그냥 지나갔는데 다음 수업 때 핀을 하나 선물해주셨다.
"이거라도 좀 꼽고 다니세요"
"아, 네 알겠습니다"
어쩔 수 없이 핀을 받았다. 주는데 안 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내한테 바로 핀을 줬다는 통보가 가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아내가 육아휴직 때 머리에 괴상한 꽃 밴드를 아이 머리에 둘렀다. 그리고선 예쁘다고 사진을 보냈을 때 난 괴성을 질렀다. 정말 1도 안 예뻤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는 거 아니다"
하지만 여자라고 더 티를 내야 한다는 여자들의 진리 같은 소리는 남중 남고를 거쳐 남자들이 바글거리는 공대와 군대를 거친 나한테는 여전히 와 닿지 않았다. 주변 엄마들이 더 답답해하다 못해 여자 여자 한 옷과 핀들을 선물하거나 알려줘서 조금씩 학습하게 되었다.
미션 No.5 : 엄마들이 말하면 제발 좀 해라!
큰 맘먹고 한번 머리를 고무줄로 묶어봤다. 핑크색의 아주 작고 단단한, 탄성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그 고무줄을 묶다 아이가 울었다.
'아뿔싸, 고무줄이 잘 안 늘어나 힘을 줬는데 그만 아이의 머리를 한 뭉치 뽑아버렸었다'
우는 첫째님을 붙잡고 '아빠가 미안해'를 100번 외쳤다. 그리고 아내한테 전화해서 '난 안돼, 틀렸어' 등 온갖 하소연을 했다.
핀은 좀 더 쉽다고 했으니 그래 이번엔 핀으로 해봐야겠다 하고 머리에 꼽았다. 하필 똑딱이 핀이었다.
'가만있어보자, 이렇게 머리카락에 끼우고 양쪽을 누르면 똑딱하고 머리에 착 붙는다고 했지?'
행동요령대로 머리카락에 끼웠다. 그리고 '똑딱' 소리가 나는데 아이가 또 굉음을 내며 울었다.
'아뿔싸, 똑딱하려고 양쪽을 누르는데 양 손의 엄지손가락으로 온 힘을 다해 눌렀는지 똑딱이가 얘 머리를 강타했다'
내 머리에 한번 해봤다가 바로 머리를 붙잡고 한 바퀴 굴렀다.
'what the...'
"여보!!!! 야!... 나 못해. 네가 해~! 네가 하라고~~~~~오고! 안 해~~!!"
7년이 지난 지금은 아이의 머리를 하나로 묶을 줄 아는, 둘째는 양갈래로 묶을 수 있는 그런 아빠가 되었다. 하면 된다. 군대에서 행군도 했는데 뭘 이까짓꺼? 이까짓 거라고?? 이까짓꺼에 3년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