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사랑해. 왜 힘든지 더 알게 되었어!
작업치료: 일상생활의 활동들을 치료적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손상이나 질병, 질환, 장해로 인한 장애, 사회 활동의 제한, 사회 참여의 위축 때문에 일상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어려운 환자를 훈련한다. 다양한 상황 속에서 육체적, 인지적, 심리사회적 문제를 다루며, 가정과 학교, 직장, 지역 사회 등의 환경과 역할에 참여하도록 돕는다.
첫째님의 재활치료는 끊임없이 지속된다. 물리치료를 통해 다리 근육은 조금씩 좋아져서 네발기기도 가능하고 걷기 위한 준비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제는 복지관 수업의 연장으로 작업치료를 추가했다.
첫째님은 소근육의 사용법과 물체를 인지하고 활용하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보통의 아이들은 공이 굴러가면 그 공을 쫓아가거나, 잡아보거나 하지만 우리의 첫째님은 공이 굴러가면 잠깐 쳐다보다 다른곳을 본다. 물체의 연속성에 대한 인지가 부족하다. 공을 잡으러 갈 의욕도 보이지 않고, 공이라는 것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는 편이 더 많다.
그래서 작은 공을 바구니에 넣고 빼고 하는, 학습을 시작했다. 우리한테는 너무도 쉽지만 첫째님한테는 매우 어려운 훈련이다.
물리치료가 끝나면 곧바로 작업치료방으로 이동하여 치료를 시작한다. 하지만 웃기게도 이 아이 역시 사람을 간 보는 역할 정도는 충실히 해낸다.
물리치료 선생님은 딱 잘라서 시킨다. 선생님이 어느정도 경력이 있어서 울어도 시키고 떼써도 시킨다. 아마도 '악마'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작업치료 선생님은 한없는 '천사'였다. 이제 막 부임하기도 했고, 성향이 부드럽고 섬세하기 때문에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알려준다. 지옥에 갔던 첫째가 천국으로 오니 행동은 안 봐도 뻔하다.
'나는 아무것도 못합니다. 네가 하세요'
이 자세로 작업치료에 임한다. 진도는 언제나'매우 더디게' 진행되고 있었다.
첫째님의 스케줄은 매일 오전에 물리치료는 1회씩 진행한다. 화, 목은 물리치료에 이은 작업치료 1회, 그리고 오후에는 다운복지관에 가서 영유아교실 프로그램에 참여를 한다. 아이로써는 쉽지 않은 스케줄이다. 그리고 부모한테도 생각보다 고되다.
이런 고된 여정을 아내는 항상 대중교통과 택시를 이용했지만 이젠 내가 치료를 가게 되다 보니 우리의 발 달구지를 타고 다닌다. 육체적으로는 조금 더 편하긴 했다. 그리고 치료가 하나밖에 없는 금요일에는 나도 대중교통으로 이동한다. 아무래도 체력적으로 여유가 있고, 가끔은 남이 운전하는 차에도 타고 싶었고, 육아에 정신 팔리다 보니 계절과 세월을 잊고 살 수 있어서 틈틈이 아이와 살을 부대끼며 나갔다.
아기띠를 장착하고 첫째를 매고 가장 힘들다는 대중교통의 매카 버스를 탔다. 운전기사님은 그 아침에 아빠가 아기띠를 매는 관경이 조금은 낯설었는지 내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 출발하지 않고 기다려줬다. 아니면 그 운전기사분은 엄청 친절하신 분이 아녔을까?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타자마자 '살벌한 전쟁터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는듯 여기저기 할머니들의 눈빛이 나를, 내 아이를 스켄한다.
미션 No.4 : 잔소리는 잔소리일 뿐! 담아두지 말자!
손잡이를 잡고 의자 손잡이를 잡고 내 몸을 단단하게 고정시켰다.
버스가 출발하고 나서 포탄이 하나 날아왔다.
"에휴 아빠가 애 보니 애가 추운지도 모르지. 양말은 왜 안신기는 거야"
이윽고 또 다른 포탄 하나가 날아왔다.
"모자 써야 안 춥지. 애들은 머리 추워"
아내가 말했던 그 시어머니들이었다. 하지만 난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예 듣기를 거부했다.
그러자 이내 폭탄 덩어리들이 막 떨어졌다.
"옷이 너무 얇아"
"애기 바지가 왜 저렇게 두꺼워"
"저렇게 애를 매면 애 몸에 땀띠 나"
"잠바는 어딨어? 아니 뭐라도 좀 두르지"
"아빠만 편하게 입었네"
애가 춥다, 덥다, 저러면 안 된다, 이러면 안 된다...
듣기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래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냥 어떤 분들인가 하고 쳐다봤다.
이내 할머니들은 시선을 회피한다.
'아니 왜 애가 이쁘다, 나와서 좋냐, 어디 가냐 등 좋은 말 있잖아. 그리고 애 매고 다니는 부모는 하나도 걱정 안 되나?'
투덜거리며 잔소리 포탄들을 피해 버스 정거장에서 내렸다. 날은 너무나 따사로웠다. 아이는 땀을 흘릴 정도로 더워했다. 아기띠를 조금 풀어서 바람이 통하게 한 후 걸어가면서 하늘을, 나뭇잎을, 따사로운 햇살들을 봤다.
'아니... 뭐가 춥다는 거야. 이렇게 날 좋은데' 하면서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돌아오는 길에는 텅 비어있는 버스에 앉아 창밖을 보며 또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저녁에 아내가 오자마자 나는 준비했다는 듯이 말했다.
"여보, 진짜 고생 많았다"
"응?? 뭐가??"
한번 아내를 안아줄 걸 그랬다. 그 모진 포탄들 사이로 왔다 갔다 한 아내를...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경험들을 한 할머니들의 잔소리들이 마냥 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만큼 아이에 대한 걱정과 열정만큼은 '존경' 합니다. 이젠 손녀 같은 '아기' 말고 자녀 같은 '부모'를 걱정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