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찰리한 Jun 12. 2021

퇴사자의 재입사 적응기

놓쳐선 안되는 것들!

2018년 12월 31일, 그 해 일 년을 꽉꽉 채우고 퇴사했다. 마지막 날 기분은 참 이상하고 오묘했다. 내 입으로 그만두겠다고 했고 지긋지긋한 야근에 정신적 대미지를 모두 떨쳐버린다는 기쁨이 생겼건만 발길이 잘 안 떨어졌다. 심지어는 퇴사 날 조차도 야근을 했다. 강요에 의해, 누군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뒷 마무리를 확실하게 했는지, 인수인계서를 잘 작성해서 신입직원이 봤을 때 한 번에 이해할 수 있는지 재차 확인했다. 무슨 미련이 남아서 인지 정시퇴근을 못했다. 야근하는 타 팀원들과 함께 마지막 저녁을 먹는데 막 1년 된 직원이 물어봤다.

“어때요? 기분이?”

그 대답은 매우 간단했다. 속 시원하다던가, 이놈의 회사 뒤도 안 돌아보겠다라던가 할 수 있는데 그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냥.. 아쉽네요. 쉽게 발이 안 떨어져요”

라고 대답했더니 그 직원의 표정은 아주 의아해했다. 지 입으로 떠나겠다고 하는 사람의 대답이 영 신통치 않아서일 듯하다. 그래서 그간의 일들이 머릿속에 스쳐가며 좋았던 적도 많고 아쉬운 것도 많은데 좋은 기억들이 더 많아서 아쉬운 것 같다고 부연설명을 했다.



2년 5개월이 지나 약간 아쉬웠지만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났던, 다신 안 오겠다고 다짐했던, 꿈 찾아 떠나겠다고 업종까지 변경했었는데 돌고 돌아 그 회사에 다시 왔다. 기분은 퇴사 날처럼 오묘했다. 오묘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설렘이 가득했다. 오랜만에 붐비는 지하철을 타고 역에서 내려 계단을 올라가 보니 거리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몇몇 상점들이 교체된 것 이외엔 공간과 공기가 예전 기억을 되살려주기엔 충분했다.

도로에는 여전히도 매연을 내뿜는 차들이, 인도에선 무선 이어폰을 귀에 꼽고 본인만의 흥을 즐기는 사람들이 바삐 움직였다. 혹시 지나가다 옛 동료 들을 만나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기대감도 있었다.

10시 출근이지만 설렘 때문에 모든 준비를 일찍 하다 보니 9시 20분에 도착했고 약간의 여유 부릴 시간이 있어 선물 받은 쿠폰을 들고 카페에 들렸다. 분명 이 시간이면 아이들 두 명을 각자의 위치에 데려다주고 아내를 출근시킨 다음 집에 와서 적막이 흐르지만 새소리를 들으며 진하디 진하고 쫀듯한 에스프레소에 우유를 섞어 나만의 맛난 라테 한잔을 마시며 글을 쓰고 이력서를 제출했었다.

카페 안은 아주 적막하지 않게 몇몇 손님들이 수다를 즐겼다. 새소리처럼 아름답진 않아도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대화들 이였다. 습관이 무서운 건지 그 짧은 시간에도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었다. 물리적 시간이 여의치 않아 퇴고하며 올리기엔 부족했지만 머릿속을 상기시키며 재밌는 상상을 하고 글로 쏟아내기엔 충분했다.


10시가 가까워졌고 회사 문 앞에서 인터폰을 통해 출근했음을 알렸다. 문이 열리고 2층으로 올라가니 반가운 사람들이 그대로 남아 팀장 자리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다. 어렵고 힘든 시간으로 지쳤을 텐데도 버티고 버틴 그들을 보며 참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내 회사도 아닌데 버텨준 그들이 고맙고 감사했다. '내 회사가 아닌데 왜 난 이런 느낌을 갖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되묻기도 전에 예전 동료들이 우르르 몰려왔고 웃으면서 잘 돌아왔다고 하는 그 말에 마음속은 찡 하는 무언가가 흘러나왔다.

다시 돌아온 게 약간은 부끄럽고 창피했지만 저렇게 웃으면서 반겨주는 동료들 때문에 그런 마음은 쉽게 사라졌다.


2년 전과 업무나 분위기는 좀 달랐다. 매출에 쫓기며 영업을 위한 리스트를 뽑아 전화하고 제안서 발송하고 미팅을 하면서 제안서의 커리큘럼 수정 및 비용 협의를 하던 일들은 전혀 하지 않는다.  규모가 큰 사업들 위주로 관리하는 역할이 더 큰 부분을 차지했다. 옆자리엔 띠동갑도 넘는 차이가 나는 직원들과 함께 일한다. 아직까지 이면지에 적으면서 숫자를 셀 땐 바를 정 을 써가면서 공유자료에 있는 내용을 확인하는 나와 달리 그 친구는 어떠한 메모지도, 펜도 없이 컴퓨터만으로 해결해냈다. 업무적으로도 벌써 세대차이가 나버렸지만 디지털 세대에 대해 더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변화에 반응해야 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버틸 수 없기에 쉴 때마다 귀찮게 물어보면서 배웠다. 



이제 막 입사한 지 3주 차가 되며 어느 정도 사업에 대한 분위기나 내 업무에 대해서는 얼추 파악됐다. 그러다 보니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회사의 비전을 직원들과 공유하며 각자의 목적, 비전, 사명감 등을 계획할만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바삐 돌아가는 사업이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직원들이 한자리에 모일 시간이 온라인으로 하더라도 어렵다. 

내가 처음 입사 때부터 원치 않게 대표님을 수행하면서 강의를 듣다 보니 정말 마음에 와닿았고 영업 미팅 때 만나는 대상이 교사인데 초임교사도 아닌 부장급 이상이며 가끔 교장선생님과도 미팅을 해야 하기에 교육 콘텐츠에 대한 내용을 정말 깊이 알아야 했다. 그래서 더 교육에 대해, 현 교육의 흐름과 미래의 교육에 대한 방향을 알아야 했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보니 교육 콘텐츠를 몰라도 관리와 엑셀을 잘 다루며 LMS를 통해 결과를 도출할 수 있으면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만약 신입직원으로 들어온다면 여기가 교육회사인지 아니면 그냥 교육생을 관리하는 회사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그래서 교육에 대한 공부를 더 놓치지 않기로 결심했다.

난 왜 이 회사에 재입사했는가와 교육 콘텐츠, 현 교육시장이 돌아가는 상황과 우리만의 콘텐츠로 어떻게 돌파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다른 이에겐 아닐 수 있지만 만약 이걸 놓치고 그저 주어진 업무만 하다 보면 분명 2년 전 그때로 돌아가 업무에 치여 지내며 목적도 없이 일하게 되고 그리 길게 일할 수 없다는 두려움도 있기 때문이다.

아직은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는 것이 마냥 행복하다. 신입사원 버프를 받았고 예전의 내 추억과 열정을 쏟아부었던 좋은 기억이 남아있기에! 이 좋은 기분을 놓치지 않고 지속시켰으면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back to work!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