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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한 Jun 25. 2021

퇴사자의 재입사 적응기

CS로 간 찰리!

재입사 한지 1달이 딱 하루 지났다. 회사 분위기는 생각보다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예전과 같은 건물, 같은 분위기, 같이 일했던 동료들 때문에도 그랬다. 그리고 새로 알게 된 동료들과 함께 지내며 나 역시 신입사원 버프를 받고 있기 때문에 최대한 웃으며 지내다 보니 더 쉽게 적응한 듯했다. 한창 업무 중이었는데 옛 동료이자 상사가 나한테 CS로 부서를 변경해달라며 한층 위로 자리를 이동하게 됐다. 이유는 대충 알고 있었다. 업무 중 전화가 꽤 많이 오는데 주 대상은 관리하고 있는 강사들에 대한 전화였다. 시스템이 잘 작동되지 않는다부터 이게 안된다, 저건 이렇다, 어떻게 작동하는지 모르겠다 등 이미 매뉴얼을 만들어 공지했지만 매뉴얼보단 전화가 더 편한 분들이 훨씬 많았다. 그리고 그들의 전화는 불만이 가득하기도 했다.

업무 중 전화 한 통 화만 받아도 진행 중이던 업무 속도는 매우 더뎌지며 불만 가득한 감정을 받아내다 보면 정작 본인들의 일은 업무가 끝난 6시부터 시작하니 가뜩이나 일이 많은데 맨날 야근에 야근을 하게 된다. 막 들어오거나 이제 좀 일할만 한 직원들이 퇴사하는 경우도 생기다 보니 남아있는 직원들의 업무가 가중되었다. 안타까운 악순환을 끊어내야 하기에 CS에 경력 있는 직원 한 명이 배치됐지만 혼자 감당하기엔 쉽지 않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 역시 예전 사업부에서 일했을 땐 현장 가서 먹을 수 있는 욕은 다 먹고 현장에서 모든 걸 어떡해서든 해결해야 했었기에 CS에서 불만 가득한 상대방의 전화를 그나마 응대하는 게 좀 더 수월하고 덜 상처 받을 것이라 판단해서 CS로 옮겨달라 요청을 했고 이 사업에 가장 빠르게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해서 흔쾌히 한다고 했다.


대표번호의 회선 하나를 내 전화기로 등록했고 담당자에게 가는 직통번호 빼고는 대부분이 CS를 통해서 전달된다. 업무파악을 빠르게 했다고 생각했는데 세세한 부분이 다 파악되지 않아 전화하는 상대방을 붙들고 서로 물어보면서, 서로가 답답해하면서 이것저것 해보면서 배웠다. 상대에겐 미안했지만 빨리 배우고 해결할 방법을 찾는 건 물어보고 같이 해결하는 것 밖에 없었고 다행히도 본인에게 10분이 넘게 시간을 할애하며 도와준 것이 고마운지 좋은 인상을 받았다며 끊었다.

그렇게 즐겁게 CS를 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터질 일들이 터졌다.

화가 단단히 난 상대방이 전화를 해서 사업부에서 이런저런 것들을 책임진다고 했으면 해야지 왜 여태껏 손 놓고 있냐며 시작부터 불호령을 쳤다.

우선 진정시켜야 하기에 어떤 내용인지 자세히 듣고는 그런 부분에 불편을 끼쳐 죄송하다는 사과를 했더니 상대방의 감정은 진정되긴커녕 이때다 싶은 심정으로 더 역정을 냈다. 대책을 갖고 와라,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대책도 안 세우는 사업 왜 하냐면서 모든 감정을 쏟아나셨다.


상대방이 왜 그런 마음을 갖고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알겠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는 나 자신 역시도 답답했기에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사과도 하고 대책은 이런저런 방법들도 있다고 설명을 해도 본인이 움직일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런 전화를 한통 받고는 연이어 다른 전화를 받았는데 역시나 불만 가득하셨다. 통화를 하다 보니 본인 위주로 뭔가를 해결해 달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조금 감정적으로 대응했고 확인하고 알려주겠다며 쌀쌀맞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잘잘못을 떠나 서로 믿으면서 일을 하면 쉽게 해결될 수 있는데 상대방은 그런 마음이 없었다. 우리가 하는 사업을 일일이 말하며 한 명만을 위해 맞출 수는 없고 그런 일 때문에 직원들이 맨날 야근하면서 죽어나가는데 상대방은 그걸 알리가 없으니 무조건 본인을 위한 대책을 갖고 오란 말이 정말 너무 듣기 싫었다.

담당자에게 가서 일정을 확인하고 문자를 보낸 뒤 전화를 했다. 하나하나 문자의 내용을 설명하면서 조금씩 진정됐고 다른 해결방안을 담당자에게 확인하여 고객에게 전달했더니 금세 기분이 풀리셨다. 감정적으로 대응해서 죄송하다는 사과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사과한 이유는 평가점수가 낮아지거나 항의가 두려워서 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충분히 내가 감정을 억누르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굳이 이런 사단까지 안 날 수 있었는데 선을 살짝 넘었기에 서로 불편했던 것이고 그에 대한 사과를 하지 않으면 하루 종일 생각날 것 같아서였다.


400명 정도의 고객을 상대로 CS 하는 일도 생각보다 감정노동이 있는데 대기업의 CS직원들을 생각해보니 그분들은 얼마나 더 큰 감정적 노동을 할지 상상이 안 갔다. 기사에 가끔 공황장애나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봤는데 그럴 만도 하겠다.

웃으면서 전화를 받아야 하는 우리와 불만을 어떡해서든 해결하려는 고객, 그 둘의 줄다리기 사이에서 일방적으로 우린 갑이 아닌 을의 입장에서 해결시켜야 하니 참 어렵다. 하지만 다행히도 난 브런치에 항상 감사하다. 내가 재입사를 하며 썼던 글을 보며 다시금 용기를 얻고 있다. 눈앞의 업무에 신경을 써야 하지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을 항상 상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에 재입사한 이유, 교육을 해야 하는 이유를 항상 머릿속에 염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통을 즐기는, 고통 속에서 웃는 자가 일류라고 하던데 웃는 건 좀 어렵지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을 고통 속에서도 놓치지 않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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