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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한 Oct 05. 2021

서로 더 많이 노력하기!

아이는 늘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

제1회 서초구 아버지센터 '핵심가치 5P' 에세이 공모전 동상 수상 작품



두 아이의 아빠가 된 지 8년이 지났다. 누군가는 준비된 아빠였을지 모르지만 난 어쩌다 아빠가 됐다. 분명 나 역시 준비된 아빠는 맞았다. 교육회사에 다니다 보니 유초등 부모 대상으로 하는 부모교육의 프로그램 책임자로 운영을 하며 많은 강의를 들었다. 그 과정에서 앞선 선배 부모들의 현실 육아에 대한 어려움을 잘 알았고 그에 대한 해결책 역시 다양하게 듣고 알게 됐다. 청소년기 학생들의 진로계획을 위한 프로그램 역시도 진행했기에 난 정말로 준비가 아주 잘 된 아빠라고 스스로에게 얘기했다. 하지만 첫째 아이를 임신하고 그 아이가 장애가 있음을 안 순간부턴 준비된 아빠가 아닌 어쩌다 아빠로 변했다. 비장애 아이를 어떤 아이로 키우겠다는 방법은 머릿속에 로드맵처럼 그려졌다. 하지만 장애아이에 대해선 생각해 본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처음엔 아이의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했고 분노하며 슬퍼하다가 결국은 장애를 인정하고 앞으로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알아보게 됐다. 장애에 대한 정보, 아니 장애아이를 키우기 위한 정보는 너무 적었고 케이스가 다양하다 보니 정말 어려웠다. 모든 걸 하나부터 열까지 정말 세세하게 알려주고 반복 훈련을 해야 했다. 반복하고 또 반복해도 습득하는데 1년이 넘는 것들도 허다했다.

배우자 육아휴직을 신청하여 1년을 아이와 온전히 시간을 보냈지만 그 과정에서 기쁨보단 답답함이 앞섰게 됐고 모든 것이 내 뜻대로 안 됨을 알게 됐다. 아이가 안 되는 건 당연한데 다른 비장애 아이와 비교하며 안 되는 게 왜 이렇게 많냐며 불평하기 일쑤였다. 가뜩이나 언어, 인지, 신체 모든 면에서 느린 아이에게 맞춰도 모자를 판국에 더 강요하는 정말 바보 같은 아빠가 됐다.

점점 더 표현을 안 하고 입을 다문 아이, 그런 아이가 답답한 나. 그렇게 2~3년은 흘러갔다. 어느 날 초등학교 5학년을 대상으로 진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중 내 아이와 같은 장애를 가진 학생을 봤다. 그 옆에는 또래 친구들이 서로 돌아가며 장애학생에 대한 모든 걸 책임지고 도와주면서 웃는 모습을 보게 됐다. 나와 상반되게 장애학생의 돌발행동에 대해 웃으면서 대처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다가 어느새 내 눈엔 눈물이 흘렀다. 저 친구들 역시 힘들 텐데 웃으면서 도와주다 보니 장애학생 마저도 환하게 웃는 걸 보며 내가 아이에게 했던 행동과 표정은 어땠나를 생각하다 보니 웃음보단 짜증과 화남이 더 많았다. 준비된 아빠였을 땐 아이들을 위한 대화법을 참 많이 듣고 연습도 했건만 아이가 장애가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난 철저하게 아이와 대화하는 법을 외면한 채 타인과, 그것도 비장애 아이들과 비 교하기 바빴던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됐다. 그리고 그런 내 모습으로 인해 상 처 받은 아이에 대해 미안함을 깨닫게 되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올해 8살이 되어 아주 씩씩하게 특수학교에 입학한 우리 첫째, 비록 난 아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도, 볼에 뽀뽀를 한 번도 못해줬지만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많이 안아주고 몸으로 하는 놀이를 시작했다.

말로 표현하는 게 서툴지만 몸으로 놀아주고 표현하는 건 어느 정도 괜찮았다. 지적능력이 이제 만 1세 수준이라 몸으로 하는 모든 놀이가 아이에게는 딱 맞아떨어졌다. 그렇게 몸으로 놀아주다 보니 어느 순간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확한 발음은 할 수 없지만 “아빠! 안아줘"라는 짧은 문장을 말하고 있다는 걸 알고선 또다시 폭풍처럼 눈물이 쏟아졌다. 아이는 늘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정확한 발음도 아니며 긴 문장도 아녔지만 짧고 부정확한 단어로 표현을 하고 있었다.

난 장애라는 편견 때문에 그걸 무시하고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꿨다. 이것저것 하나도 못하는 아이에서 부족하지만 이것저것 조금이라도 할 수 있는 아이로! 시선을 바꿔보니 생각보다 아이는 할 수 있는 게 많았다. 아이 역시 표현 하 려고, 말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무엇을 도와줘야 할지를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그걸 도와주는 게 바로 부모의 역할이라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됐다. 비장애, 장애가 중요한 건 아니었다. 단지 내 마음속 문제였고 그간 내가 아이를 바라봤던 마음과 행동을 반복하지 않고, 편견을 갖지 않고 희망 찬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기로 했다. 지금은 여러 가지 재활치료로 인해 치료 비의 어느 수준은 세금으로 지원받으며 생활하지만 훗날에는 그 세금을 모 두 낼 수 있는 아이로 자랄 수 있도록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아껴주고 더 많이 표현하는 아빠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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