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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한 Sep 17. 2021

감사일기

진심이 담긴 글을 쓸 수 있음에 감사

백수일 땐 말을 하고 싶어도 못하거나 대화할 상대가 없다 보니 말을 아꼈다. 그 아낌은 곧 머릿속으로 흘러들어 가 여러 가지 생각들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지금은 열심히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누군가와 원하지 않는 소통을 해야 했고 말을 정말 많이 해야 하기도 했다. 때론 왜 내가 이런 불만을 듣고 있어야 하나 라며 억울해하기도 했다. 그렇게 근무가 끝나면 아무 생각 없이 집에 오는 지하철에서 영상을 보거나 게임방송을 보거나 시끄러운 헤비메탈 음악을 틀고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며 감정노동에 지친 내 마음에 작은 위로라도 해본다.

한 며칠을 그렇게 다녔더니 재입사할 때의 마음가짐이 흐트러졌다. 분명 일이 힘든 건 맞지만 눈앞의 힘듬으로 인해 멀리 내다볼 수 없다면 결국 또 쳇바퀴 신세가 될 뿐이다. 흐름을 끊기 위한 뭔가를 찾아보던 중 수기 공모전이 눈에 들어왔다. 딱 좋게도 육아하는 아빠에 대한 공모전이 마감됐지만 작품수가 부족한 건지 기한을 연장했고 수기를 작성할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다.

출퇴근길에 멍하니 딴생각할 바에 공모전의 내용을 찬찬히 읽어보고 쓸만한가를 확인했다. 단순 육아를 위한 수기는 아녔고 제시하는 핵심역량에 부합하는 주제를 선택하여 글을 써야 했다. 5가지 역량 중 1가지 역량 빼고는 다 나한테 해당되는 것들이라 4가지 주제를 모두 섞어서 쓰려고 키워드를 생각하고 메모장에 적어놓고 집에 와서 아이들을 재운 다음 글을 쓰기 시작했다.

확실히 백수일 땐 정말 깊게 생각할 수 있고 생각할 시간이 많아서 글을 쓰고 퇴고하고 다시 쓰고 또 퇴고하면서 다듬을 수 있었지만 이젠 그렇게 충분한 시간을 투자할 수 없다 보니 뭐라도 써야겠다는 식으로 마구 써 내려갔다. 퇴고를 하는 순간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주제는 하나도 맞지 않았고 내용은 산으로 가는 정도가 아니라 지구를 뚫고 나갔다.

1달 뒤면 브런치 작가가 된 지 1년인데 그 생활을 했다는 게 창피할 정도로 엉망의 글을 썼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전달력도 없고 이것저것 다 합쳐놓은 짬뽕보다 못한 글이 만들어진 것이다.

막상 써놓고 보니 지우기는 또 아까웠다. 그래도 써놨으니 내 서랍장에 저장해놓고 다른 글을 썼고 그렇게 쓴 글이 3편이 됐다. 하지만 모두 다 내용은 전혀 없는 산으로 가버린 것들이었다.

왜 글이 안 써질까? 너무 오래 쉬었나? 뭐가 문제일까를 생각해봤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말 전달할 내용이 너무 많은데 그 모든 걸 함축시키기엔 공모전에서 원하는 분량은 한정됐다. 한정된 분량에 4가지 주제를 모두 함축하려는 욕심이 지나쳤고, 실은 상금에 눈이 먼 나머지 잘 써야겠다는 마음이 앞섰다. 쳇바퀴 흐름을 끊기 위해 썼는데 어느덧 내 목표는 1등 상금이었던 것이다.

분명 솔직하게 글을 쓰기로 해놓고선 다른 욕심들이 뒤섞이다 보니 당연히 표현되는 글들은 다 엉망진창이었다. 그래서 애써 썼던 3편의 글들을 흔적조차 없이 지웠고 머릿속에서도 무시하기로 했다. 주제는 1가지만 정했고 상금이 욕심나긴 했지만 아직 난 그럴만한 글솜씨는 없다는 겸허한 자세로, 지금 내가 이 글을 써야 하는 이유를 생각하며 다시 솔직한 마음으로 자판을 두드렸다.

글을 완성시켰고 퇴고하면서 그럭저럭 내 마음과 생각이 잘 표현됐고 그제야 나만 아는 기쁨과 슬픔의 감정들이 따라왔다.



결과 발표날, 기관의 홈페이지를 수시로 들락거렸다. 기대를 안 한다고 혼자 중얼거렸지만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으로 발표가 됐는지 확인했다. 해당일에 발표를 한다고 했지만 몇 시에 하겠다는 말이 없으니 버릇처럼 들락거러다 이렇게 결과에 연연하는 내 모습이 조금은 안쓰러웠다. 적어도 나 자신에게는 만족한 수기였으니 결과에 연연하지 말자 하며 홈페이지 들어가는 걸 그만두고 다시 내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한창 집중하며 일하고 있는데 문자가 한통 왔고 거기엔 제출한 수기가 명예의 동상을 수상했다며 축하한다는 문자였다. 막상 마음을 내려놨더니 수상했다는 문자가 온 것도 신기했고 내가 쓴 글이 동상을 수상했다는 기쁨과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생각났다. 브런치에 글을 쓸 수 있도록 소개해준 아내, 수기의 주제가 되는 첫째님 그리고 내가 교육 쪽 일을 할 수 있게 해 준 대표님!

현재 자가격리 중인 대표님께 수상의 기쁨을 전달했다. 자가격리 중이라 우울했는데 반가운 소식을 받아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고 하니 진심이 아닐지라도 그런 말을 듣는 나 역시 기분이 좋았다.

슬픔은 확실하게 나누면 반 이상으로 줄어들고 기쁨은 두배 이상으로 기쁜 건 맞는 말 같다. 그리고 글쓰기에 진심이 담긴다면 그것만큼 또 강력한 무기가 없는 것 같다.

금상은 비록 넘볼 수 없었지만 공모전에 참여하면서 다시금 내 인생과 첫째님의 인생, 가족, 교육에 대해 깨닫게 됐고 현재에 충실할 수 있게 되어 어쩌면 상금 이상으로 삶의 활력소를 받은 것 같다.

그저 글 하나 썼을 뿐인데 이리도 감사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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