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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한 Dec 24. 2023

난 천천히, 넌 빠르게?

나이에 대한 둘째 놈과 나의 시각!

2023년 3월, 두 아이들의 길고 긴 겨울 방학이 끝났고 각자의 역할에 맞게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방학 내내 두 아이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아내에겐 초등학교 입학하는 둘째 놈 때문에 걱정에 걱정의 꼬리를 물었지만 막상 입학 후 초등학교가 재밌다는 둘째 놈의 말을 듣고는 두 아이를 학교에 보낸 후 자유시간을 즐길 수 있게 됐다.

유치원을 당당하게 졸업하고 1학년이 된 둘째 놈은 멋진 초등학생이 됐다고, 학교가 재밌다고 매우 신났다.

하지만 우리의 걱정 1순위 첫째님은 어느덧 특수학교 3학년이 된다는 기쁨과 동시에 20살이 되면 학교를 떠나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데 이 아이가 그때까지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을까 라는 걱정이 1년씩 당겨졌다.



방학이 끝난다는 건 아이들에겐 말해 무엇하랴! 내 맘대로 늦잠 자고 하고 싶은 걸 부모에게 떼쓰면서 본인의 감정을 여과 없이 표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학교에 가면 내 마음대로 되는 것 없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며 감정을 숨기고 사회생활을 해야 하니 끔찍한 나날들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와 반대로 부모에겐 방학이 끝난다는 것만큼 기쁜 일은 없다. 매일 아이들의 밥을 차려주고 비위 맞춰야 하며 끊임없이 재생산된 에너지를 발산해야 하는 아이들의 체력이 감당 안 돼서 결국 큰 소리를 내고 녹초가 된 몸으로 저녁까지 준비하면 또 다른 지원군이 퇴근하고 와서 집안일을 도와줘야 겨우 아무 방해 없이 쉴 수 있다. 근데 웬걸? 잘 때가 되니 슬슬 아이들에게 큰소리쳤던 게 못내 미안해서 반성하게 된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활기차게 아이들을 깨울 땐 기분이 좋다가 오후가 지나면 체력이 떨어지며 똑같이 반복된 삶을 보내며 점점 지쳐가는 부모들에겐 아이들의 개학은 자유라는 단어 그 이상의 해방감일 것이다.


육아가 얼마나 힘든지 나 역시 육아휴직을 통해 뼈저리게 경험을 해봤기 때문에 하교 후 아이들과 보낼 아내에게 조금의 쉼을 주기 위해 빠른 퇴근을 하며 아침잠이 별로 없으니 아침 준비는 내가 맡아서 했다. 8년째 변함없는 간장 계란밥을 준비하고 사정없이 아이들을 깨우고 멍 한 상태로 아침밥을 먹는 아이들. 밥을 다 먹으면 곧장 화장실로 가서 분노의 양치질을 시키면 아내 역시 피곤한 몸을 일으켜 책가방과 입을 옷들을 준비해 준다. 나름 아침 분업화가 잘 돼서 지각하지 않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렇게 멍 한 상태로 밥을 먹던 둘째 놈이 나한테 물어봤다.

"아빠! 나 키커?"

키가 크고 싶다는 말이겠거니, 안방 옷장에 숨겨 둔 알라딘 재스민 공주의 드레스를 입고 싶다는 의미인지, 어른되면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다는 게 부러우니까 물어보겠거니 해서 짧고 간결하게 되물었다.

"왜?"

둘째 놈의 대답은 내 예상범위에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아니 그냥 다 맞아떨어졌다. 왜냐면 저 질문에 대한 대답들은 키가 커야 할 수 있다고, 키가 커야 된다고 했던, 내가 둘째 놈의 편식 때문에 모든 걸 다 꾸며서 구슬렸던 말들이기 때문이다.

첫째님의 친구가 머리를 알록달록 염색했던 모습이 강렬하게 기억에 남은 둘째 놈은 자기도 염색을 하겠다고 울상을 지었길래 머리가 아주 많이 길어져야 할 수 있다고 했다. 얼마나 길어야 하냐고 정확한 수치를 요청하는 둘째 놈에게 아무 생각 없이 그냥 2학년 돼야 할 수 있고 당장은 안된다는 변명을 했다. 아직 아이들에겐 염색이 좋아 보이지 않는 꼰대 마인드도 한몫했지만!

검정콩을 먹기 싫어하는 둘째 놈에게 검정콩이 검은색인 이유는 머리를 빨리 자라게 한다고 나름 근거 있는 정보와 편식을 없애려는 내 거짓말 때문에 검정콩을 맛있게 잘 먹었고 내친김에 키가 자라는 건 세월이 가는 것보단 골고루 다 잘 먹어야 자랄 수 있다고 했다.

둘째 놈은 초등학교에 입학했으니 본인이 점점 자라고 있음을 알면서 빨리 휴대폰을 가질 시기가, 염색 등을 할 수 있는 시기가 가까워졌으니 엄마의 걱정과 다르게 초등학교 입학을 매우 기다려했고 키가 매일매일 얼마나 자랐는지를 체크하려고 했다.

가끔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며 시간은 언제 가냐는 말을 해댄다. 여느 애들이나 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했지만 둘째 놈은 아빠의 변명과 합당하지 않은 거짓말 때문에 더 빨리 키 크고 머리 기르고 어른이 되고 싶어 했다.

그러던 중 둘째 놈이 갑자기 말했다.

"아빠는 좋겠다. 어른이라서!"

아침이라 나 역시도 아침에 뇌가 미처 깨어나지 못한 상태로 의식의 흐름에 따라 대답해 버렸다.

"넌 좋겠다. 애..라서?"

아주 확신에 찬 대답은 아녔기에 어른이던 애던 각자의 위치가 중요하고 그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 서둘러 부연설명을 했지만 둘째 놈은 그걸 절대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이었다.

둘째 놈이 어른이 되고 싶은 이유는 위의 것들을 다 할 수 있었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다. 힘도 세서 뭐든 들 수 있고 축구나 농구 같은 게임을 해도 아빠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임만큼은 절대 둘째 놈에게 봐주지 않고 진심으로 경기에 임했기 때문에 매번 둘째 놈은 졌다고 울면서 바닥을 뒹굴렀다. 지는 것을 싫어하는 저 둘째 놈은 급기야 자기가 갖고 있는 용돈을 걸고 하자며 대들다가 지면 또 울며불며

"아빤 돈이 많잖아. 그러니까 당연히 난 이길 수 없어" 

라며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어른이 되면 돈도 많다고 생각한다.

"야! 아빠 돈 없어. 그거 다 엄마 줬거든. 그리고 너네 간식 사주고 책 사주고 반찬 사고 옷사고 장난감 사주고... 아빠도 돈 없거든!"


그렇다. 둘째 놈은 모를 테지만 나도 돈은 없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월급은 꼭 아내 통장에 입금해야 집안이 돌아갈 수 있고 요즘 물가도 올라 점심 사 먹기도 겁날 정도이다. 이런 어른들의 걱정거리는 하나도 모르고 그저 보이는 것만 보며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저 아이와 말다툼하는 나도 참 기가 막혔다.


불혹을 살짝 넘긴 나는 아이와는 다른 입장이다. 시간이 좀 천천히 가서 늙는 속도가 늦춰졌으면 좋겠다. 젊어지고 싶다는 바람은 없다. 젊어지는 건 불가능하지만 늙는 속도를 늦추는 건 여러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트니스 회원권을 구입하고 꾸준히 운동하고 있다. 이젠 홈트에 꽂혀 빨래걸이가 될지도 모르는 실내 자전거와 철봉기구를 샀고 3달째 다행히 열심히 운동하는 중이다.



얼마 전 만 나이가 통일되면서 난 1살 젊어졌고 둘째 놈은 연말생이라 8살에서 6살로 2살이나 어려졌다. 하지만 둘째 놈에게 그걸 아무리 잘 설명해도 그냥 눈물부터 흘리면서 유치원 가기 싫다고 했다. 여전히 빨리 나이를 먹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은 어렸을 적 우리가 바랬던 것과 동일하다.

반대로 난 쾌제를 불렀다. 어려지는 걸 좋아하면 나이가 든 결과라고 하지만 한 살이라도 젊어지는 느낌이 나니깐 말이다. 물론 운동을 하면서 체력도, 몸도 좋아지는 나 자신을 보면서 젊어지고 있음을 한껏 더 실감하게 되니 더 기분이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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