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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한 Oct 26. 2020

아빠인가 ATM인가 : Chap.2

왜? 무엇 때문에? 이유는 뭐야?

진로교육이, 그에 맞는 학부모 교육이 붐을 일으켰다. 각 시, 도청에서 학부모 교육을 위한 입찰공고를 올렸고 교육업체를 선정하였다. 심지어 교육을 위한 센터를 만들 정도였다.

 

이제는 자녀교육에 대한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음에 기뻤다. 당시 회사 대표님이 강의 가서 항상 하는 말이 '노벨수상자 하나 없는 우리나라, 아니 전문분야가 아닌 노벨수상자는 있지만 기술, 학문적인 부분에서 없는 수상자가 없는 이유는 바로 인재를 위한 교육, 부모를 위한 교육이 부족했기 때문이다'였다. 하지만 공교육, 지자체가 움직이면서 앞으로 자라날 아이들에 대한 기대감이 가득했다.


교육의 현장으로 갔다. 4~12주 과정의 기나 긴 학부모 교육과정을 기수별로 1년 동안 운영하면서 또 다른 현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학부모만 대상으로, 그리고 오전 시간이다 보니 대부분은 '엄마'들 이였다.


중학교 엄마들이 제일 많았다. 뒤이어 초등 고학년, 고등학교 엄마들이 많았다. '부모의 마음가짐'에 대한 강사가 강의를 끝나면 4~5명의 엄마들이 강사를 붙잡고 질문을 하다 눈물이 터져 나온다.

얼른 현장을 정리하고 밥 먹고 회사 복귀하면 밀린 업무들을 처리해야 해야 하는데 야속하게도 강사는 한 명 한 명 상담하고 안아줬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았다. 그리고 난 그때 미혼이라 크게 공감될 내용도 없었다.


하지만 회차를 거듭할수록, 기수가 바뀌어도 그런 엄마들이 끊임없이 나왔다. 강의 도중에 울기도 하고, 끝나고 상담하면서 또 울었다. 심지어 초등학생을 자녀로 둔 엄마들 역시나 그랬다. 그래서 한 번은 자세히 들어보니 알게 되었다.


왜 이들이 답답해하며 눈물을 흘리면서까지 강사를 붙잡고 하소연시키게 만들었을까?


아이들은 점점 자라면서 내 의지와 반대로 자라고 있다.

그래서 남편에게 교육에 대한 얘기를 하면 바쁘다고, 힘들다고, 오늘은 좀 쉬자고, 주말에는 피곤하다고 잠을 자야 해서 대화를 거부한다.

엄마는 방법을 찾아본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주변의 비슷한 처지의 엄마들을 만난다.

그럼 우리 아이는 무슨 상을 받았고, 뭐를 했다, 뭐를 학습하고 있다 라고 한다.

전형적인 '엄친아', '엄친딸'이 생겨나고 선행학습의 신호탄을 울린다. 우리 아이가 뒤쳐지는 것 같아 남편에게 말했더니 교육비가 왜 그렇게 많이 드냐며 소리를 쳤다.

엄마와 아빠의 교육 방향이 다르고, 아이가 자라날수록 그 차이는 더욱더 커져간다. 교육문제로 다툼 아닌 마음이 급한 엄마의 정보들이 아빠한테는 그저 잔소리로 받아들여지면서 조금씩 어긋난다.

아이 교육을 위한 돈을 벌어야겠다. 하지만 엄마는 경력이 단절되어 돈을 벌 수 없다. 사회제도도 미약하고 집안일을 온종일 하다 보면 그럴  시간조차 없다.

주변에서는 '엄마들은 아이 학교 보내면 카페에서 노닥거리는데 편한 거 아냐?'라는 말이 속상하다.

'나는 안 그런데, 나는 바쁜데, 아이들 뒷바라지하느라 속상한데'라고 말해봐야 이미 시선들은 노는 엄마, 그저 남편이 벌어다 준 월급으로 생활하는 '속 편한 주부'라는 직업이 되어 버렸다.

집이 더럽다며 남편의 핀잔이 들어온다. 우리 애는 더 말을 안 듣고 공부도 안 해요. 그래서 더더욱 강하게 밀어붙이면 더더욱 말을 안 들어요. 그럼 더더 더욱 말하면 더더 더욱 안 듣고 버럭버럭 대들기만 하고 도대체 얘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어요.


위의 내용들이 주를 이뤘다. 듣다 보니 갑자기 나도 모르게 감정이 이입돼 버렸다. 내가 현장에서 보는 엄마들의 삶은 그렇지 않았는데, 이들은 마음 편히 교육을 들으러 온 것이 아닌, 절박한 마음으로 교육을 신청하고 해결책을 찾고 싶은 건데 왜 일부분을 보고 이렇게나 엄마들의 삶을 왜곡시켰을까? 


아빠들은 도대체 뭐 하는 거야? 왜 그렇게 가정에 소홀해?


감정이 요동치더니 혼잣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엄마들은 그런 얘기를 하면서 눈물만 주르륵 흘릴 뿐 감정이 격해져서 소리치지 않았다. 이미 일상이 돼버린 건지 그저 혼자만 앓고, 외롭고, 누구 하나 자신의 이야기를 듣지 않은 채, 그렇게 독박 육아를 하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아이의 잘못된 책임은 모두 주 양육자인 엄마에게로 향했다.


엄마들은 눈물을 흘릴만했다. 엄마들은 화가 나도 참아야 했다. 아니 화가 나서 아이와 대판 싸우고 미안해야 했다. 하지만 이미 미안하다는 말이 통하지 않는 사춘기를 지난 아이들과의 깊은 감정의 골이 커져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던 것이다. 이 문제를 남편과 얘기하려고 해도 남편 역시 등을 돌리고 있다.


아이들은 나와 다른 삶을, 행복한 삶을 살게 해 주겠다는 내 마음이 지나친 욕심이 되어버린 것이 아닐까 후회한다. 내 삶도 행복하지 못한데 아이들이 나를 보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라며 자책한다.


'외롭다' '아이를 잘못 키우고 있다' 후회와 증오를 매일마다 반복하는 삶이었다.


아빠들은, 그들은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이토록 아내의 마음을 모르고 그렇게 교육에 소극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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