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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한 Oct 28. 2020

아빠인가 ATM인가 : Chap.3

그들도 그들 나름의 사정은 있다.

그렇게 교육의 현장을 보면서, 엄마들의 고된 삶을 보면서 나 역시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녀 2명과 함께 나도 그들과 같은 아빠가 되었다. 엄마에게 독박 육아를 시키는 아빠. 

아빠가 되어보니 이해가 갔다. 왜 그들이 그렇게 소극적으로 그랬는지.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눈치는 필수였다. 내 의견을 피력하다 보면 일거리가 늘어난다.

줄을 잘 못서서 동기는 진급하고 연봉이 올라갔다며 기뻐하는데 내 직급과 연봉은 일만 늘어난 채, 그대로 정지해있다.

매출이 안 오른다며 나오지 않는 아이디어를 쥐어짜 낸다. 짜낼 때로 짜낸 아이디어 기획서는 이미 쓰레기통으로 들어가 있다. 목표 매출에 도달하지 못하면 그 이유를 분석해야 한다. 분석한 이유가 타당하지 못해서 다시 작성한다. 도대체가 보이지 않았던 오탈자는 왜 검토받을 때마다 튀어나오는지 모르겠다.

나이가 몇 갠데 나잇값을 못하냐며, 직급이 있는데 그에 맞는 행동을 못한다며 질책이 날아온다.

때로는 고객한테 잘못된 응대로 매출에 타격을 입고, 쏟아지는 컴플레인에 연신 '죄송합니다'를 입에 달고 산다.

위에선 무리한 요구를 하고 후임은 아직도 문서 작성 한 장에 하루를 다 소비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업무 때문에 오늘도 야근, 내일은 또 어김없는 출근. 야근한다는 말에 아내는 짜증을 내고, 하고 싶지 않은 야근 때문에 짜증 나는데 아내의 짜증에 더 화가 난다. 인사평가 점수가 떨어지면 안 되는데 체력이 떨어지는 건 막을 수 없었다. 하루하루 잠은 부족하다. 삶의 여유은 그냥 건물주만 가능했다.

그저 다른 팀 동기들과 잠시나마 커피 한잔 하면서 하소연하다 보면 이내 호출로 다시 책상에 앉아 다시 분석하고 제안하고 고객 응대하고 후임에게 업무 알려주고 외근, 나갔다 오면 어느덧 퇴근시간에 내 업무를 시작한다.


그들의 삶도, 나름의 사정도, 아니 그들도 역시 '외롭다'. 이런 얘기를 집에 가서 하고 싶다만 아내는 이미 육아로 인해 지칠 대로 지쳐있다. 하루에 일어난 자녀와의 일들을 기관총 쏘듯 막 쏟아낸다. 집에 오면 생각을 멈춰야 하는데 오늘 회사에서 일어난 일들이 아직도 괴롭히고, 또 그에 대한 생각을 하다 보니 아내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히려 일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었다. 아빠는 귀를 닫는다. 하루 종일 고객 상대로 지쳐있는데 아내마저도 고객으로 변해버린다. 내 마음속 불만과 하소연은 어디로 표출해야 할지 방향과 방법을 잃었다.

그렇게 쌓여만 가는 불만 위에 아내는 자녀 교육비가 얼마가 나간다, 아이가 이런 행동한다 저런 행동한다, 

여보, 여보 내 얘기 듣고 있는 거야?


나 좀 내버려 두어 줄래? 아무것도 신경 쓰고 싶지 않아. 나는 나가서 돈 벌잖아. 내가 육아하냐? 네가 하는 건데 왜 시시콜콜 자꾸 보고하고 돈만 더 달라고 하는 거야?


그만 참지 못하고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을 내뱉었다.

그들도 사정이 있었다. 나름의 사정이. 말할 수 없었지만 그들 역시도 사회에서 상처를 받고 아물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한 채로 흉터만 남고 있었다.


분명 결혼할 땐 손에 물 안 묻히겠다는, 평생 사랑해주겠다는 다짐을 했고, 말도 안 되는 계약서에 지장을 찍어서까지 믿음을 줬었다. 자녀가 태어날 때는 축복을 해주면서, 모든 걸 잘해줄 수 있는 '슈퍼 대디'가 될 수 있다고 했는데 지금의 내 모습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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