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찰리한 Oct 29. 2020

아빠인가 ATM인가? : Chap.4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의 역할은 여전히 진행 중!

대학생 때 파트타임 일을 했었다. 기업 워크숍 스텝으로 1박 2일 일정 동안 진행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고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참석자의 뒷바라지를 했었다.

워크숍인 만큼 협동심을 키우는 활동부터 업무에 필요한 영상과 강의도 준비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이가 꽤 드신 경영컨설턴트 강사가 나와서 경제학의 대가'스티븐 코비'가 나오는 동영상을 틀어줬다. 영상은 아주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유리병 1개, 작은 돌 한 바구니와 유리병에 겨우 들어갈 만한 큰 돌이 있다. 작은 돌들을 유리병에 쏟아부은 다음 큰 돌을 넣을 수 없기 때문에 큰 돌을 먼저 넣고 작은 돌들을 쏟아부어야 한다 라는 내용이다.

여기서 큰 돌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고 작은 돌은 중요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 이였다. 


시간관리 메트릭스를 설명하면서 '중요한 것을 먼저 하라'는 내용이었다. 업무효율을 높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내용이었지만 인생에 대입해보면 소중한 것을 먼저 하지 않으면, 아니 놓친다면 결국은 다시 하기는 어렵다고 강사가 설명했었다.


난 무엇 때문에 그렇게 치열하게 일을 했던 걸까? 열심히 돈을 벌어야 가족을 부양할 수 있기 때문인가?

단체생활에서 뒤처지지 않고 인정받고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함인가? 일에 대한 열정이었는가? 책임감이었는가? 


어쩌면 이런 것들... 혹시 나에게는 작은 돌 아녔을까? 


교육을, 현장을 그렇게 봐왔던 나 조차도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어린 자녀 두 명에게 '최고의 아빠'가 되겠다던 마음가짐은 '돈 열심히 번 다음, 인정 먼저 받고'라는 행동으로 변모되고 있었다.

그렇게 야근을 하고, 지방으로 출장을 가고, 주말 출근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둘째가 나를 보고 웃지 않았다. 둘째는 날 아빠라는 인식조차 못하는 듯했다. 첫째는 장애가 있어서 내가 와도 모를 수 있다 치더라도 비장애인 둘째가 엄마 아빠의 얼굴을 알아볼 나이에 그렇지 않다는 것에 조금 충격을 받았다.


잘못되었다. 현장의 목소리와 가정에서의 눈빛을 보니 내 행동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당장의 급한 업무들은 안 하면 바로 티가 난다. 하지만 중요한, 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것들은 바로 티가 나지 않는다. 위험신호를 조금씩 무시하면 서서히 잠식되어 가다가 어느 순간 돌이키기엔 너무나도 어려운 결과를 낳게 된다.


행동을 바꿔야 했다. 야근을 끊어야 했고, 지방 출장은 최대한 자제했고, 지방을 가더라도 당일치기로 어떡해서든 마무미를 하고 집에 왔다. 아내의 가사를 도와줬다. 설거지는 아침 출근 전에라도 했다. 첫째는 근처 어린이집에 보내고 싶었지만 보는 시선이 그리 곱지 않았다. 다행히도 병설유치원에 우선 배정권이 있었지만 거리가 멀어 출근시간대의 버스를 타고 가기엔 아내한테는 고역 중의 고역이었다.

탄력근무제를 활용하여 10시 - 19시로 업무시간 변경을 요청하고 첫째의 등원을 맡아서 했다.

주말에는 아이들과 외출을 했다. 직접 만지고, 보고, 느끼는 감각들이 자라나게 하고 싶었다.


조금씩 가족의 일원이 되어가는 느낌이 든다. 아이들이 웃는다. 아이들이 반긴다. 말은 못 하지만 무언가를 말한다. 야근하는 날에는 아내가 영상통화를 하던가, 아이들의 영상을 보내준다. 둘째가 나를 조금씩 알아본다. 요즘은 거의 반말하지만 괜찮다. 

'아... 내가 친구 같아 보이는구나. 친구, 가까이 있는 사람이라고 인식하는구나'


홍수가 나면 마실물이 없어 탈수로 사망한 다는 말을 들었다. 정답이었다. 교육회사에서 넘처나는 교육정보들을 보면서 정작 내 자녀를 위한 교육 없이 살았던 삶을 후회했다.


그런데, 난 그래도 변화를 감지하고 겨우 알아채기도 쉽지 않았는데 다른 아빠들은 어떨까.

그들은 알아차렸을까? 그들은 정말 중요한 것을 먼저 하려고 할까? 아니면 중요한 것을 잃고 있지 않았을까?


행동하면 아빠 안 하면 ATM

우리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이 가족들의 생활비로 충당된다. 혹은 부족할 수도, 넘칠 수도 있다. 이번 한 달도 열심히 가족을 위해 돈을 벌었다고 뿌듯할 수 있다.


집에 오니 아내는 교육에 대한 기관총을 발사하지 않는다. 아이는 말을 걸어오지 않는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았지만 점점 말이 없어졌다. 아침 출근길에 '다녀오세요' 퇴근길에는 '잘 다녀왔어요'를 들어본 지 오래되었다.


집안에 생기가 없다. 뭔가 좀 이상하다. 왜 우리 집은 이렇게 조용하고 사람 사는 것 같지 않을까 하면서 오늘은 칼퇴를 했다. 집에 도착해서 "얘들아, 밥 먹자! 여보, 맛있는 거 사 왔어 같이 먹자!"

"얘들아 오늘 학교생활 어땠어? 재밌었어?" 묻는다. 그럼 얘들이 "오늘 이런 일이 있었어. 저런 일이 있었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냥 빨리 먹고 방에 들어간다. 아니, 그냥 집에 있는 것 자체가 싫어서 안 들어온다.


아빠는 잘못된 것을 알았다. 하지만 아이들, 아내에게 다가가려 해도 계속 멀어진다. 마치 자석의 같은 극처럼 일정한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여보 애들 교육 말이야, 내가 봤는데 그 뭐 내신 중요하다고.."


이미 정보가 넘쳐흐르고 그에 맞는 것들을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는 아내에게 그런 정보 따위야 귀담아들을 가치조차 없었다.

아빠는 그렇게 가정에서 점점 멀어져 버린다.


안타깝지만 우리 집, 우리 아버지의 현실이었다.

술 마시고 집에 와서 감정표현을 격하게 하시고 소리치고, 물건 던지고, 훈계는 새벽을 넘어서까지 하셨다.

다음날에는 또 말없이 조용히 아침 먹고 출근하셨다. 야근하고 만취돼서 오면 또 반복했다.

너무 꼴 보기 싫었다. 아버지와 나의 삶에는 좁혀질 수 없는 거리가 생겼고, 더욱더 커져만 갔다.

집에 생기가 없다며 어머니에게 한소리 하신다. 하지만 늦었다. 어머니 조차 그냥 조용히, 대답 없이 듣기만 했었다.


그저 아이들이 필요할 때 쓰는, 아내가 생활비를 위해 인출해야 하는 하나의 ATM 이였다.

열심히 일만 했을 뿐인데, 그게 가족을 부양하는 최고의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반쪽뿐인 아빠의 역할이었다. 안타깝게도 우리 아버지의 역할이 나한테까지도 남아있었다.


여전히 엄마들은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적어도 내가 마지막 근무했던 2018년 까지.


무엇을 위해 열심히 살았는지 다시 한번 되묻고 싶다. 아니, 내 삶의 목표를 내가 세웠었나 라고 묻고 싶다. 내 인생의 선택권은 나한테 있었나? 부모의 기대로 인해 내 선택권을 강요받지 않았나? 그렇게 아버지처럼 나도 같은 사람으로 일하고 있지 않았나. 그렇게 싫은 아버지의 행동을 나도 내 자녀에게 하고 있지 않았나 말이다.


우스갯소리지만 자녀가 좋은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조건이 있다.

1. 엄마의 정보력

2. 할아버지의 재력

3. 아빠의 무관심


위와 같은 삼박자가 맞으면 자녀가 좋은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고 한다. 우스갯소리지만, 현장의 엄마들은 빵 터졌다. 그러나 단 한 명은 웃을 수 없었다. 아빠의 '무관심' 이란 단어가 그날따라 유난히도 마음이 아팠다.



시대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육아 프로그램이, 아빠들이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예능 프로그램이 나오면서 젊은 아빠들이 변하고 있다. 첫째의 유치원 참여수업으로, 운동회로 가보면 많은 아빠들이 아이와 함께 웃으면서 즐기고 있다. 너무 반가웠고, 그들이 존경스러웠다.


하지만 갈길이 멀다. 육아 휴직하는 아빠들이 17% 까지 늘었지만 아직 부족하다. 물론 '육아 휴직하는 아빠는 좋은 아빠'라는 공식은 아니다. 

그래도 직접 체험해보면 아이들을 양육하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걸 느낄 수 있다. 힘들지만 그만큼 아이들과 함께 지내다 보면 생각지 못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아내의 행동들이 이해가 된다. 그러면 공감할 수 있다. 적어도 아내의 기관총 같은 육아 스토리에 귀 기울일 줄 안다.


이렇게 하나씩 변하면 된다. 이렇게 하나씩 변하면 학부모 교육에 그렇게도 눈물 흘리는 엄마들도 줄어들 것이다. 그럼 우린 이제 더 이상 적어도 가족이 돈을 인출하는 ATM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나는 필요에 의해 육아휴직을 신청했지만 그 이면에는 이런 모든 경험들을 토대로 결심하게 되었다.

육아휴직을 하면서 아내를 이해했다. 아이들을 이해했다. 여전히 첫째의 진학 문제에 아내의 말을 귀담지 못해서 서운하게 한 적도 많았다. 

언제나 다짐하지만 또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려는 습관 때문에 집에 돌아갈 때 또다시 마음속으로 다짐을 한다.

'오늘은 아내 말에 꼭 귀담아 들어야지'

한 10번 중에 3~4번은 성공하고 있다. 성공률을 높일 수 있도록 끊임없이 되뇌고 되뇐다.

 

일반화시킬 순 없다. 내가 겪고 들었던 것들을 모든 가정에 일반화시킨다는 건 더욱더 잘못되었다. 각 가정마다의 상황이 있고, 각자의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아빠의 행동이다. 아빠가 무엇을 먼저 소중하게 생각하는지를 찾고 그것을 실천해야 한다.

우리는 아빠, 육아에 책임이 있는 아빠이기 때문이다. 15세기부터 아바라는 말이 20세기에 아빠가 되었지만 15세기부터 쭈욱 그렇게 우리는 아빠였기 때문이다.


아빠들이여! 우리 ATM 은 되지 맙시다. 우리도 교육받아야 합니다. 엄마들이 아침시간에 수다 떨러 오는 것이 아닌, 위로받으러 오는 것이 아닌, 정말 절실하게 필요하기 때문에 오듯 우리도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절실하게 찾아봐야 합니다. 서적은 이미 많습니다. 해외의 사례들이 번역되어 잘 준비돼있습니다. 행동만 남았습니다. 그 행동 하나로 아빠냐 ATM이냐는 결정됩니다.


작가의 이전글 아빠인가 ATM인가 : Chap.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