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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한 Nov 16. 2020

빠직 8장: 이유식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빌어먹을 이유식! 쳇!

‘내가 만든 이유식은 최고로 신선한 식자재를 사용한다’라는 나만의 약간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다. 당시 예능은 그야말로 셰프들의 세상이었다. 그들의 조리법, 그들의 식자재 선택 방법, 그들의 식품 저장방법 등을 자주 접하면서 나 역시 그들의 방식대로 흉내 내고 있었다. 마트에서 내 눈으로 모든 물품을 유심히 살펴보고 그들의 식자재 선택 방법을 어설프게 따라 했다.


흙이 붙어있나, 벌레가 있나, 벌레가 파먹었나, 상했나, 시들시들한가, 생선의 눈은 선명한~~ 가? 연홍색의 돼지고기 인가, 붉은색의 소고기 인가, 마블링 같은 인위적인 것들이 있나, 유통기한은 잘 적혀있는가? 인공색소는? 나트륨 함량 % 는? 포장재는? 사카린은? 당은 원당? 비정제당? 뭐는 뭐는 뭐는....


이 모든 검증과정을 거친? 최고의 재료들을 사 왔다. 그리고 첫째님에게 이유식을 시작한다. 이유식을 머리털 나고 처음 하다 보니 간이 베이면 안 된다는 인터넷 정보를 철두철미하게 믿고 저얼대 소금 한 꼬집도 넣지 않았다. 모든 채소류는 신혼 때 구매한 매우 날카로워서 한방에 모든 걸 잘라버리는 식칼로 나의 정성과 사랑을 함께 마구마구 조각냈다. 쌀은 또 전날에 아예 불려놓고 믹서기에 갈아서 부드럽게 했다. 이 모든 재료들을 쉐킷 쉐킷 해서 만들었다.


"간이 안 돼있으니 맛없을 거야. 참기름 작은 한 숟가락 추가, 소금은 안되니 치즈 두장 추가"

계란은 또 일반 마트 계란이 아닌 부모님이 키우는 청계의 그 개당 1,500원이나 한다는 청란을 넣었다.

모든 것은 완벽했다. 아니 모든 영양소는 헌드레드 퍼센트 완벽했다.


첫째님의 숟가락은 또 주워들은 건 많아서 그놈의 비스페놀 A free(BPA free) 실리콘으로 뒤덮여있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한 숟갈 퍼서 첫째님의 입에 넣었다.

'두둥'


하지만 결과는 이랬다.

첫째님은 뱉었다. 처음에는 뜨거워서 뱉었다.


"아.. 뜨거웠어? 후후 불어줄게"

첫째님은 또 뱉었다. 두 번째부턴 맛없어서 뱉었다.


"감히??? 네가??? 이걸 뱉어?? 먹어, 먹으라고. 이게 얼마나 몸에 좋은데."

하지만 또 뱉었다. 모조리 다 뱉고, 뱉은 것들을 또 손으로 조물조물거렸다.


예전 아내가 이유식 할 때 분노하면서 이유식을 사달라고 했던 이유를 알았다. 그때 나도 분명 힘들면 사 먹이라고 했었다. 이번엔 아내가 만류했다. 만들지 말고 사 먹이라고. 하지만 '난 아내보다 요리를 좀 더 잘한다고 자부하고 내가 만든 건 달라'라는 건방진 생각으로 이유식 만들기를 강행했고 첫째님에게 평가를 요청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처참했다. 차디찬 첫째님의 반응과 그저 먹을 것이 아닌 장난감이 되어버린 내 최고의 재료들 이였다.


만든 이의 정신건강을 위해선 역시 이유식은 사 먹여야 한다. 즉석밥보다 비싼 저 이유식들을 살 수밖에 없었다.

친척 누나가 일하고 있던 이유식 공장에서 직원 할인가로 구매해 먹여봤다.


첫째님이 숨도 안 쉬고 잘 받아먹었다. 끼니를 굶긴 마냥 너무나 잘 먹는다. 반응이 재깍재깍 왔고 심지어는 엉덩이가 들썩였다.

'기회는 이때다' 재빠르게 내 이유식으로 바꿔치기했다.


뱉었다.


뭐가 차이야 하면서 그 이유식을 한 숟갈 떠먹어봤다.

"아... 뭐야 내게 더 맛있는데"


내가 만든 거니까 객관적인 평가가 안되었나 보다. 객관성은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분명 내가 만든 게 더 맛있는데! 분명한데!!! 왜 안 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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