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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직 9장: 육아보단 가사!

남자 주부가 가진 약간의 부작용들!

by 찰리한

가사

1. 살림살이에 관한 일

2. 한집안의 사사로운 일


육아휴직 한지 어느덧 100일이 넘었다. 주부로 변한 지 149일. 이젠 점점 주부다워지고 있다.

처음 휴직하면서 주차별로 나의 심리상태는 이러했다.


1주 차: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간다. 첫째님의 반응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재활치료에선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아빠였다. 훼방 안 놓으면 다행이지!


2주 차: 어설프게 반응한다. 그리고 뭔가 적극 적으려 하려는 마음이 굴뚝같다. 허나 행동은 찔끔찔끔 나온다. 육아 스트레스를 인정하지 않고 아내한테 감정적 잔소리만 마구마구 한다.


3주 차: 나름 여유를 부리려고 하지만 체력이 벌써 고갈되어 버렸다. 뭐든지 하기 귀찮아진다. 하지만 앞으로 10개월이나 남았기 때문에 여기서 무너지면 안 된다 라는 정신으로 또 뭐든지 하려고 한다.


4주 차~: 아내를 꼬셔서 치웠던 티브이를 설치했다. 요리 예능프로그램을 주구장창 시청하면서 셰프들의 요리실력을 보면서 쓸데없는 용기와 객기가 튀어나왔다. "그래 난 할 수 있어"를 100번 외치면서 또 뭐든지 하려고 한다.


"뭐든지 열심히 하려고 했다. 방향도 없이 그저 열심히."


1달 만에 모든 정신무장을 하고 주부로써의 삶을 살다 보니 이상한 부작용들이 튀어나왔다.


1. 건망증이 심해졌다.

ep.1: 첫째님의 복지관 수업, 재활치료에 가면 꼭 무언가를 하나씩 놓고 온다. 100만 장이나 있던 가제수건은 10장 남짓 남았고 양말은 왜 짝이 안 맞는지 모르겠고 가끔은 젖병을 두고 오고 제일 이해할 수 없던 건 도저히 놓고 갈 수 없는 아이스박스에 아이스팩 까지 놓고 간다.


“00 아버님 휴대폰이죠”

하고 어디선가 전화가 오면 난 대답한다.


“네, 제가 그거 두고 왔죠? 죄송합니다”


어쩌다 전화를 못 받으면 아내한테 전화가 왔다.

"여보 아이스박스 놓고 갔어?"


"어?? 아이스박스? 설마 그걸 놓고 가냐?"

대답을 했다. 하지만 집안을 뒤져봤다. 역시나 없다.


"어.. 어떻게 알았어?"


"전화 왔던데? 여보 신발장 위에 고스란히 놓고 갔다고"


ep.2: 젖병에 분유를 4스푼 넣어 240ml 물에 맞추는데 2스푼 넣고 딴생각하다 몇 스푼 넣는지 까먹는다. 그럼

다 쏟아붓고 다시 넣어야 했다. 한 숟갈 더 들어가면 첫째님이 분유 안 나온다고 짜증내고 한 숟갈 덜 들어가면 묽다며 짜증 낸다. 도대체 그놈의 한 숟갈, 뭣이 그리 중헌데!


2. 투철한 절약정신

ep.1: 아내가 아침마다 거의 늦잠을 잔다. 그러면 출근할 때 택시를 타야 한다. 그럼 난 잔소리 1발 장전한다.

"세상에나 택시비가 얼마인데 말이지"

아내에게 폭풍 잔소리를 투척한다. 그리고 플러스 여분의 1발 더 장전한다.


"금리가 낮다, 이자가 어쩌다 하지 말고 택시비 아끼세요"

그 돈 아껴서 첫째님 치료 하나 더 늘려야 합니다.


ep.2: 첫째님은 어쩔 수 없이 이유식을 사 먹는다. 내가 만든 건 핵폐기물 맛이었는지 다 뱉기 때문이다.

햇반보다 비싼 이유식을 시켜서 먹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남는다. 난 공대 출신이라 그런지 정확한 수치가 있어야 한다. 첫째님의 이유식 양 조차도 눈대중으로 마추 지도 못해서 250g의 밥을 계량기에 달아 정확히 180g을 첫째님에게 제공한다. 남은 70g은 냉장고에 잘 보관했다 같은 종류의 밥이 오거나 아니면 섞어도 맛있을 이유식 메뉴가 오면 섞는다. 아내가 퇴근을 하고 집에 오면 "밥 줘"라는 짧은 한마디를 외치고 안방으로 또 허물 벗듯 옷을 팽개치고 들어간다. "inner peace"를 한번 외치고 저녁을 차린다.

아내한테는 갓 지은 쌀밥을 주고 난 첫째님이 남긴 이유식 영혼까지 끌어모아한 공기를 만들었다.

안방에서 아내님이 나오더니

"아니 그걸 왜 먹어?"


"버리기 아까우니까"

라고 대답했다.


아내는 그냥 버리라고 한다.

잔소리 2발 장전한다.

"한팩에 2,500원이야. 250g짜리 한 개가 말이지. 1g에 10원짜리를 버려요? 네? 70g 남은 거 8개면 어디 식당 점심 한 끼야. 어디서 주부한테 말이야! 어!"


'이유식을 버리는 자! 절대 용서치 않으리!'


그리고는 남은 이유식을 모아서 하나씩 해치운다. 절약정신은 투철하다. 아니, 이건 다른 엄마들 역시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3. 이상하게 마트 가면 과소비는 필수요 까먹는 건 선택!

분명 난 마트 가기 전에 김치찌개에 들어갈 목록을 적었다. 양파, 파, 마늘, 삼겹살, 호옥시 모르니 요리수. 이렇게 5가지를 적고 갔다가 카트를 끌고 계산대를 나오면 왜 내 카트에 전혀 상관없는 수제 소시지, 달걀, 어묵국용 패키지가 담겨있는지 매우 의문스럽다.

"김치찌개를 끓여야지. 근데 양파가 어딨더라? 여보 양파 못 봤어?"


어머니를 떠올려봤다. 냉동실에 뭐가 그리 많이 처박혀있고 찬장에는 수많은 소스들이 즐비했는지, 마트 가서 두 봉지 양손 가득 들고 들어갈 자리 없는 냉동실에 또 넣고, 다음날 되면 또 장 보러... 반복적인 패턴들.

그때는 왜 저러실까 했는데 왜 저러셨는지 백번 공감했다.

우리 집 냉장고 역시 힘겹게 펜을 돌리면서 미여 터지기 일보직전이었다.


점점 어머니를 이해하게 되었다. 아니 어머니의 삶을 이해하게 되었다. 아이 키워보니 알았다. 그게 어머니의 최선이었고, 지금의 나 역시 이게 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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