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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직 10장: 젊은 아빠! 힘내!

오해 아닌 오해를 받게 된 사연

by 찰리한

아내는 강원도 주문진에서 태어났다. IQ도 꽤 높은, 머리가 좋다고 말할 수 있다. 상황 파악도 빠르고 책을 정말 많이 읽어서 글 읽는 속도 또한 나의 거의 3배 정도 빠르다. 그런 아내가 서울에 대학을 와서 남자 친구 따라 교회에 왔다가 나를 만났다. 참 웃긴 인연이지만 우린 그렇게 결혼을 하고 첫째님과 둘째를 갖고 잘 키우고 있다.


고로 처갓집은 주문진이 되겠다. 당시 첫째님 육아휴직으로 몸과 영혼이 피 패해지다 못해 얼굴살 마저 쪼그라드는 것이 안타까운 장모님과 장인어른은 첫째님도 보고 싶을 겸 겸사겸사 오라고 했다.


"여보, 불편하면 안가......"

아내가 이 말을 하자마자 난 바로 딱 잘라 대답했다.


"뭔 소리야. 안 불편해. 무조건 GO"

장모님 장인어른은 정말 좋다. 나 대신 아내한테 잔소리를 5만 번, 그것도 마음의 상처를 입힐 정도로 마구마구 날려주신다. 미쳐 내가 해야 할까 말까 했던 것까지 속사포로 쏟아내셨다.


그리고 맛있는 걸 정말 많이 사준다. 장인어른은 사업을 하셨었기에 손이 매우 크다. 내 평생 먹을 소고기를 그 짧은 시간에 다 먹을 정도로 사주셨고, 장어, 회, 복어 등등 좋다는 것은 죄다 사주셨다.


장모님은 우리 둘이 나가 놀라면서 자유시간을 허락하셨다. 첫째님은 인지가 부족했던 탓인지 부모가 떨어져도 울지 않는다. 낯가림도 크게 없었다. 좋아해야 하는 건지 아닌지 헷갈리지만 그때는 좋았다.


아내와 데이트를 했다. 오랜만의 데이트라 카페에 가서 커피를 연신 들이켜고, 머리도 하고, 영화도 보고.

결혼 전 모습으로 2시간 동안 신나게 놀고 돌아오면 첫째님 입에는 초콜릿과 바카스 마신 흔적이 남아있다.

장인어른은 가끔 엉뚱한 철학을 갖고 계셨다. 바카스 먹어야 똑똑해진다며 아내가 똑똑한 이유는 다 바카스 덕분이란다. 아내도 바카스 광팬이다. 장인어른이 마시고 남긴 바카스를 먹고 자라서 그런지 처가집에 오면 1일 1바카스를 실천하신다. 하지만 첫째님은 이제 두 돌도 안된 완전 '미물'인데, 아내는 불같이 짜증을 냈지만 이미 다 마시고 덤으로 초콜릿과 아이스크림, 과자 등을 해치운 상태였다.


그렇게 2박 3일을 주문진에서 휴가처럼 보내고 집에 오는 길이었다. 저녁까지 챙겨 먹고 첫째님은 애매한 시간에 자서 저녁을 먹지 못했다.

영동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내가 제일 사랑하는 휴게소는 바로 횡성휴게소였다. 높은 고도에 있어 바람이 차긴 해도 너무 시원했다. 미세먼지 꺼져! 를 외칠 정도로 공기가 신선했다.

그리고 여기엔 나의 사랑 와플전문점이 있는 곳이다. 하행선에는 있지만 상행선에는 없다는 것이 함정이지만.


고속버스들도 쉬어가는 곳이라 시설, 규모, 깔끔함 이 3박자를 두루 갖췄다.

저녁 8시 30분 정도 도착해서 첫째님을 흔들어 깨웠다. 밥을 먹어야 하는데 역시나 식욕이 크게 없으신 첫째님이 어영부영 일어난다.


아내는 차에서 쉬라고 하고 첫째님을 들고 기저귀 가방에 이유식을 챙겨 휴게소 안으로 들어갔다.

유아휴게실에서 비치된 전자랜지에 이유식을 데우고 기저귀를 갈고 식당으로 나와 첫째님을 아기의자에 앉힌 후 늦은 저녁을 먹이고 있었다.


당시 2015년에 아빠 육아휴직은 앞서 말했지만 4~5% 밖에 안되었고, 아직은 매우 낯선 풍경이었다.

저녁을 먹이는데 고속버스 몇 대가 들어오고 어머니 같은 분들 3명이 휴게소에 들어왔다.

딱 봐도 꽃놀이 또는 등산 놀이를 해서 기분이 매우 좋으셨다. 화려한 고어텍스 등산복에 등산화, 밤이지만 선글라스를 목에 걸고 있으니 누가 봐도 기분 좋게 친구들과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가는 걸 알 수 있었다.


근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였다. 3명이 나를 보더니 좋았던 기분의 표정이 변했다.

그리고 내 옆으로 왔다. 특유의 오지랖으로 나와 첫째님의 상황을 파악하셨다.


늦은 저녁, 아빠 혼자 아이에게 밥을 먹인다. 여긴 휴게소인데... 엄마가 안 보인다. 뭐지? 이 낯선 풍경? 아빠의 표정은 매우 지쳐있다. 아이는 이유식을 받아먹는 게 신통치 않다. 이 아빠는 분명 육아 초보인 게 분명하다. 초보인데 아이를 본다??? 혹시?? 이 아빠는 이혼해서 어쩔 수 없이 아이를 키우는 아빠인 게다. 그래도 힘드니까 강원도 놀러 갔다 저녁 줄 타임도 놓친 정말 왕초보 아빠다.


어머니 3명이 내 옆에 앉았다. 그리고 위로 아닌 위로를 시작했다.

"아이고 젊은 아빠 혼자 힘들지? 그래도 힘내! 엄마 없어도 아이 잘 클 수 있어. 괜찮아!"


나는 미쳐 대답할 타이밍을 놓쳤다.

"아.. 아니.. 아내는 저기.. 차에..."


하지만 걱정과 위로를 해야겠다는 사명감 투철한 어머니 3명은 내 대답은 들을 생각도 안 했다. 연신 나를 걱정해주고 아이에게 축복의 말씀들을 쏟아내셨다. 아빠도 밥 사 먹으라며 뭐라도 주려는 것을 만류하느라 진땀 뺐다.


"아.. 네. 괜찮습니다. 저 잘할 수 있어요"

라고 대답했고 어머니 3분은 그제야 안심이 된 듯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졸지에 난 그분들에게 싱글 데디가 돼버렸다. 당시에는 여전히 남자가 육아하는 모습이 어머니들에게는 낯설었나 보다.


양육에 참여하는 아빠들이 늘어나면 이젠 당연하단 듯이 웃으면서 넘어가는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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