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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있는 호주 19: 기회다 생각하면 망설이지 말자!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생기다.

by 찰리한

호주에서 공장의 경우에는 주간, 야간에 따라 시급이 달라진다. 주간은 morning shift 야간은 afternoon shitf라고 한다.

주간조의 시급은 17달러, 야간조의 경우는 좀 더 추가되어 19달러 정도 한다. 그리고 시간이 넘어가면 연장근무로 계산된다. 아주 칼같이 계산한다.

근무시간 이외의 추가 근무 시 최초 1시간은 시급의 1.25배로 지불되며 1시간 이후부턴 무조건 1.5배이다.

이 점은 정말 좋았다. 한국과 다르게 연장근무를 할 경우에는 꼭 본인의 의사를 물어본다. 일은 힘들지만 이런 조건을 칼같이 지키는 호주는 참 부러웠다.



주중에는 언제나 웹사이트에서 잡서칭을, 저녁에는 카지노에 5달러만 들고 가서 음료 두 잔과 함께 영어공부를, 주말에는 세차장에서 일을 하면서 약간의 루틴이 생겼다. 일을 못 구하면 써큘러키에 가던가 오페라하우스를 가던가 아니면 그냥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시드니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southport에 있을 때 같은 숙소에 있던 형이 갑자기 생각났다. 고기공장 간다고 했던데 잘 되고 있는지도 궁금했고 혹시 나도 거기서 일을 구할 수 있는지 겸사겸사 전화했다.

"형! 저 찰리예요 잘 지내요?"

"오! 찰리. 야 반갑다. 시드니는 살만하니?"

한 달간 같이 살았지만 그 한 달 동안 이 형과 정말 많이 친해졌다. 머나먼 호주에서 스타크래프트 대결도 하고 저녁에 서로 위로하면서 맥주도 한잔씩 하면서 한국에서 뭐하고 지냈는지 대화도 하고. 서로가 힘듬을 잘 알았기에 터울 없이 지냈었다.


"형 저 여기서 사기당하고 아주 지옥 같았지만 이제야 조금 뭔가 하나씩 해나가고 있어요"

"이야... 넌 참 기가 막히는구나. 타일 때는 돈 못 받더니 거기선 또 사기당하고? 그러게 나랑 같이 가자니까"


이 형은 진심 걱정되어 얘기를 해주었다. 그것만으로도 참 위로가 되었다.

"형, 혹시 거기 고기공장에서는 사람 안 구해요? 나도 거기서 일 하고 싶은데?"


아직은 구인구직이 없다고 한다. 대신 웹사이트를 하나 불러줬다. 그리고 틈나는 대로 확인하라고 했다. 바로 그 형이 있던 고기공장 사이트였고 구인구직은 거기서 올라온다고 한다.

"형 혹시 구인구직 올라오면 잽싸게 전화드릴게요"

"야... 진짜 올라오면 꼭 지원해라! 나도 확인해볼게"


그렇게 잠시 옛 추억을 생각하면서 나는 혹시나 하고 시드니 일자리 사이트를 열었다.

맨 위에 또다시 급구라는 글과 함께 빵공장에서 일할 사람을 구한다고 했다. 당시 10월 중순이어서 12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기 때문에 미리 빵공장에서는 인력을 충원해서 물량으로 승부를 봐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내용을 확인해봤다. 시급이 무려 17달러였다. 공장장은 호주인이지만 매니저가 한국인이다. 그래서 17달러라는 시급으로 온전히 보존하지만 21:00 ~ 06:00로 야간 근무이다. 야간근무이면 엄연히 19달러 정도이지만 매니저가 공장장에게 케시 잡으로 하자는 얘기한 것 같다. 19달러 텍스 잡이 아닌 17달러 케시 잡으로 돌린 것이다. 공장장으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다. 더 저렴하게, 텍스 신고 없이 고용할 수 있고 다쳐도 다친 사람 책임이다. 워홀러에게는 다소 불리하지만 17달러라는 높은 시급의 케시 잡이기에 경쟁률이 치열했다. 난 공고가 올라오고 난 후 1분 뒤에 전화를 했고 진짜 운이 좋게도 10명 뽑는데 당첨된 것이다.

근데 당장 구인구직 한 날부터 출근하라는 것이었다. 공고를 확인한 날은 월요일이었다. 다음 주 월요일까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얼른 세차장 매니저에게 이번 주말은 죄송하지만 일을 못 나가겠다고 했다. 자초지종은 잘 설명해드렸고 세차장 매니저 역시 그런 아픔은 알고 있던 분이기에 흔쾌히 허락해줬다.

공고 확인은 7시쯤 이였다. 당장 2시간 뒤까지 공장으로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해서 도시락을 얼른 쌌다. 돼지껍질에 간장 양념을 하고 매운 칠리파우더를 듬뿍 뿌렸다. 공장이면 분명 힘이 필요하고 정신 차리려면 맵고 짠 음식이 필요할 것 같았다. 1시간 만에 뚝딱 만들고 알려준 공장으로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이동했다.

정류장에서 내리는데 한 15명 정도 되는 한국인들이 내렸다. 분명 이들은 빵공장 가는 사람들이다 생각해서 그들과 어색한 동행을 했다. 정말 빵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맞았다.


도착한 빵공장은 규모가 아마 200평 정도로 아주 크진 않았지만 물량을 찍어내기엔 충분했다. 처음 온 10명은 각자 자리를 배치했고 내가 배치된 곳은 이미 숙련자 2명이 있었다.

아마 고속도로 휴게소에 보면 호두과자 만들 때 호두과자 판에 기계에서 반죽이 쭈욱 하고 나오는 걸 안다면 쉽게 이해가 될 것 같다. 내가 하는 일은 가로로 6개의 반죽이 나오는 기계에 맞게 틀을 맞춰서 8줄, 즉 48개의 머핀을 만드는 일이다. 처음 숙련자 2명이 하는 법을 보여줬고 틀에 맞지 않아 새는 경우가 생기지만 처음 하는 사람은 6개 중에 4개 정도만 맞춰도 크게 혼나지 않는다고 했다.

머핀 틀을 잡고 이동해봤다. 처음에는 집중해서 잘 됐지만 5줄이 넘어가서부터 뭔가 꼬이기 시작했다.

숙련자가 틀을 잡고 도와주면서 어렵사리 한판을 완성시켰고, 등에는 땀이 줄줄 흘렀다.

한판을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1분 정도였고 4시간 동안 그렇게 230판 정도를 만들고 나니 30분 식사시간이 주어졌다. 미리 싸온 도시락을 먹으면서 잠을 쫓았다. 역시 매운 게 들어가니 정신이 번뜩 났다.

이후 4시간도 그 힘으로 열심히 머핀 반죽을 받았다.

아침 6시가 되니 오전 조 사람들이 와서 잠깐의 인수인계 후 오후 조 사람들은 퇴근했다.

손가락, 특히 검지 손가락이 끊어질 듯 아팠지만 그날 하루 번 돈만 무려 136달러였다. 돈 받으니까 힘들고 아픈 건 기억에서 사라졌다.

집에 와서 잠을 자고 오후 2시쯤 일어났다. 야간일이다 보니 아무래도 먹는 걸 잘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얼른 coles에 가서 닭가슴살을 샀다. 그리고 계란, 밀가루, 빵가루와 식용유까지.

집에 와서 닭가슴살을 와인병으로 마구 치고 밀어서 넓게 펼쳤다. 밀가루를 묻힌 다음 계란물에 담가 빵가루를 묻혔다.

맞다. 바로 닭가슴살 돈가스를 해놓은 것이다. 일이 고되고 자야 할 시간에 일을 하다 보니 근육의 근원 단백질이 필요한 것이다.(그냥 기름지면서 건강한 걸 먹고 싶었다) 그렇게 20장 정도 만들어 2개는 바로 튀기고 나머지는 냉동실에 잘 보관해놨다.

이렇게 단백질을 보충하면서 일주일 동안 밤에는 빵공장에서 돈 벌고 낮에는 잠을 자고 일어나 서큘러키 까지 걸어갔다 와서 닭가슴살 돈가스를 튀기고 다시 빵공장으로 갔다.

일주일간 900달러의 돈이 들어왔다. 얼른 숙소 주인장에게 연락했다.

"주인장님 저 찰리예요. 저 돈 좀 벌었어요. 밀린 방값에 10% 가산해서 드릴게요."

주인장은 그냥 원금만 달라고 했다. 열심히 번 돈인데 꼭 이자까지 받고 싶지 않다고. 하지만 난 너무 고마웠기에 이자는 저의 마음이라고 이거 안 받으면 사준 쌀 다 창문에 던져버린다고 집을 깽판 놓겠다는 농담을 했고 주인장은 400달러에 40달러를 받았다. 그리고 그날 40달러에 자기 돈 60달러를 보태서 100달러어치의 고기와 야채를 사들고 와서 파티를 열어줬다. 참 감사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기분 좋게 오후 5시에 밥을 먹었는데 전화가 울렸다.

"찰리야. 나야. 야 너 공고 봤어?"

"누... 아 형. 공고요? 아니 못 봤는데요?"

"야. 빨리 봐봐. 빨리 보고 연락 줘"


고기공장에 갔던 형이 다급하게 연락을 했다. 무슨 일인가 봤는데 아니 도대체 이놈의 호주는 왜 죄다 급구하는 건지. 고기공장에 구인구직 글이 올라왔다.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르겠는데 당장 내일이라고 한다.

"형. 당장 내일인데요? 어떡해요?"

"야. 너 빨리 에들레이드로 날아와"

"형 근데 거기 애들레이드에서 1시간이나 가야 하는 곳이라면서요?"

"아... 그냥 일단 애들레이드로 와. 나머진 내가 알아서 해결해줄게"


어안이 벙벙했다. 하지만 지체할 수 없었다. 주인장에게 미안하다고 얼른 에들레이드로 가야 한다고 비행기표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케리어 챙겨서 서둘러 센트럴 스테이션으로 뛰어갔다. 거기 있던 모든 이들에게 작별인사 조차 제대로 못하고 얼른 튀어갔다.

시드니 공항으로 도착하니 6시가 좀 안되었다. 얼른 비행기표를 알아봤다. 7시 비행기표가 남아있었고 여권을 들고 구매했다.

정말 아슬아슬하게 탑승했다. 표를 살 때 어떻게 그런 영어가 튀어나왔는지 모르겠지만 7시 비행기 타려고 하는데 제발 기다려달라고 했다. 그리고 제발 나 태워달라고 했다. please만 아마 200만 번은 외쳤을 것이다. 판매원은 진정하라고 얘기하고 게이트 승무원에게 승객 한 명이 지금 표 구매하니까 게이트 아직 오픈인지 확인했고 다행히도 가능하다는 승인이 떨어졌다.

게이트까지 진짜 우사인 볼트처럼 뛰어갔다.

저 멀리서 "here"이라고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배낭 메고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뛰어오는 사람은 나 밖에 없었고 그 게이트 승무원도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내 목소리의 간절함을 들어서인지 딱 봐도 '쟤다'라는 게 너무 티 났을 것이다.

그렇게 난 비행기에 무사 탑승했고 2시간을 지나 에들레이드 공항에 도착했다.

NSW에서 S.A(south austraila)의 도시 에들레이드에 첫발을 내디뎠다.


시드니는 제일 배고프고 힘들고 지치고 어려웠다. 하지만 시드니가 제일 기억에 남는 이유는 그 힘든시절에 도와준 사람들 덕분이다. 돈은 없지만 행복한 추억이 남아있다는 건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통해 일어날 수 있는 힘과 목표를 확고하게 다졌던 이유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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