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있는 호주 20: 고기공장! jola 반갑다18?

뭐야. 누구야? 누가 이렇게 알려줬어?

by 찰리한

에들레이드 공항을 나서는데 어디선가 내 이름이 적힌 커다란 종이를 들고 웬 한국인 아저씨가 서있었다.

"찰리 한 씨"


영문도 모르고 난 그 아저씨에게 가서 "제가 찰리 한 입니다"라고 말했더니 따라오라고 한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미쯔비시 마그나 웨건에 나를 태우고 어디론가 향했다.(왜 마그나 웨건 차가 싫은지는 이유 있는 호주 18​에 나옵니다 글 홍보)

도착한 곳은 어느 어학원이었다. 그리고는 나한테 갑자기 뭔가를 들이밀었다.

이게 뭐냐고 물어보니까 영수증이라고 한다.

어학원에서 고기공장의 일자리를 주선해주는 이른바 중개인 역할을 하는 분이셨다.

이분도 하필 이름이 Dr.kim 이였다.(허이고... 퀸즐랜드 타일 돈 때 먹은 놈도 Dr.kim인데 이 놈도... 퀸즐랜드 Dr.kim은 이유 있는 호주 11을 클릭하면 됩니다. 또 글 홍보중)

그래서 무슨 일인지 잘 몰라 물어봤더니 상황은 이랬다.

구인구직을 올린 고기공장에 서류를 내야 하는데 나는 시드니에 있었고 서류를 낼 수 없는 상황이라 그 형이 어학원을 통해서 중개인에게 연계했다. 중개인에게 연계하면 고기공장 면접 통과 후 취업이 되면 1000달러를 지급하는 것이고 영수증은 그것에 대한 일종의 계약서 같은 것이다.

급구만 아니었다면 그 형이 공고 올라왔을 때 에들레이드로 오면 자기가 픽업하고 공장에 맞는 이력서를 만들어 중개인 연계 없이 바로 면접 볼 수 있게 하려고 했는데 상황도 급하고 사기당한 동생을 그냥 둘 수 없어서 중개인라도 연계해서 면접 기회라도 주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에겐 1000달러라는 돈은 없었다. 그래서

"죄송하지만 전 지금 돈이 100달러도 없어요"

그러자 그 중개인은 괜찮다고 했다. 취업되면 2~3번에 나눠서 지불하면 되니 우선 영수증은 계약상 서로에게 피해를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날 안심시켰고 난 거기에 서명을 했다.

그렇게 그 중개인이 안내한 백패커에 갔더니 나 이외에 남자 1명이 더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일 고기공장 면접 보냐고 물어봤더니 그렇다고 한다. 호주에 온 지 2~3달 정도 됐고 돈 많이 벌고 싶어서 왔는데 때마침 고기공장 구인구직 보고 어학원 중개인을 통해 모든 것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난 시드니에 있다 오늘 당장 넘어왔고 내일 면접 잘 보자는 파이팅과 함께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 7시에 중개인이 왔다. 우리를 태우고 여자 1명까지 총 3명을 데리고 에들레이드에서 동쪽으로 1시간 30분 떨어진 murray bridge라는 곳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호주에서 나름 꽤 크다는 T&R 고기공장이 있었다. 여긴 양과 소를 도축부터 가공, 그리고 냉장유통시스템까지 모든 것이 구비되었다.

면접은 10시라 우린 8시 30분에 도착했고 중개인 Dr.kim이 맥도널드에서 햄버거를 사줬다. 주린 배를 햄버거 하나 먹고 공장의 출입구 옆 HR office에 들어갔다. 시간이 좀 여유가 있었고 중개인은 우리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우선은 무조건 알아듣는 척, 그리고 모르면 정확하게 Sorry I don't konw. 를 말하라고 했다. 애매하게 시간 끌거나 막히면 탈락되는 수모가 생기니 되도록이면 알아듣는 척하고 정말 모르겠으면 위와 같이 말을 하라고.

우리 3명은 확신에 찬 'OK'를 외쳤고 10시가 되자 HR의 슈퍼바이저 보다 더 직책 높은 여성이 들어왔다.

그 여성의 이름은 sarah 였다. 근데 난 이 여성을 보자마자 웃음이 갑자기 터져버렸다.

sarah가 날 보더니 자리에 앉아서 왜 웃냐고 물어봤다.


호주에 올 때 내가 즐겨봤던, 영어 공부하려고 봤던 게 바로 그 유명한 미국 시트콤 friends 였다. 처음 봤는데 너무 재밌고 유쾌해서 호주에 가서도 시즌8만 그렇게 돌려봤다. 거기에 나오는 여성들 중에 피비라는 다소 엉뚱한 캐릭터가 있다. 근데 너무 웃기게도 sarah와 피비가 정말 한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이 생겼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엉뚱한 캐릭터 피비를 떠올리며 웃음이 튀어나왔다.


"Sorry but did you know friends. it's american sitcom"

"Yes i know, but why are you smiling?"

"cuz I think you seem like phoebe. exactly the same. And I like her"

굳이 I like her 이란 말은 필요 없지만 그래도 약간의 아부가 들어간다면 좋지 않을까 해서 뒤에 소심하게 말했다.

갑자기 sarah가 크게 웃더니

"Are you charile han?"

"Yes I am. How did you know that?"

"You are so crazy. little funny so I guess. People don't usually name him charile"


그랬다. 내가 갑자기 웃으며 이유를 좀 엉뚱하게 대답하니까 sarah는 찰리라는 이름을 짓는 사람은 흔치 않다고 얘기했고 그게 나라고 생각했구나 했지만 그건 내 생각이었고 이미 sarah는 알고 있었다.

진짜 찰리라는 이름을 쓰는 사람이 흔치 않냐며 물어봤더니 sarah가 이력서를 들어서

"No photo" 라고 보여줬다. 다른 2명은 이력서와 사진이 있는데 난 이력서에 사진이 없으니까.


sarah는 나한테 질문을 거의 하지 않았다. 1시간 동안 면접 보는데 남은 2명만 30분씩 죽어라 압박면접을 봤을 뿐 나한테는 왜 호주 왔냐? 호주 살만하냐? 정도만 했을 뿐 구체적인 것은 단 한마디도 던지지 않았다.

마지막 질문에 any question? 하길래

"Why don't you ask me any question? Was i too rude?"

내가 너무 무례하게 굴어서 질문 안 하는 거니 라고 물어보니까 sarah가 또 웃는다. 그리고는

"넌 이미 프렌즈 얘기할 때부터 얼추 영어 쓸 줄 안다고 생각해서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었어."라고 말했다.


이건 아주 날 과대평가한 것이다. 하지만 참 재밌는 건 역시나 남에게 약간의 재미를 줄 수 있다는 건 그 나라의 문화를 대충은 파악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나 보다.

그렇게 2명은 진땀 면접을, 나는 홀가분하게 끝내고 간단한 메디컬 테스트를 진행했다. 그리고는 파트를 정해줬다. 남자애는 양 파트의 패킹 쪽으로, 여자애는 소파트의 내장 패킹 쪽으로, 그리고 나는 야외 쪽에 있는 스킨 파트였다.

스킨 파트는 공장에서 양 도축 후 양가죽을 기계가 벗기면 그것을 레미콘 트럭처럼 돌아가는 기계에 넣고 소금을 붓고 1시간 동안 소금과 가죽이 섞이게 한 다음 꺼내서 쌓는다. 소금과 섞는 이유는 양가죽 안쪽에는 이제 막 도축하였기 때문에 생 살들이 드러나있다. 만약 유통과정에서 기간이 길어진다면 자연스레 살이 썩을 수 있기 때문에 소금과 잘 섞으면 천연 방부제 역할을 한다. 그리고 소금과 양가죽이 내는 마찰열 때문에 가죽 안쪽의 살들이 겉에는 살짝 구워지는 약간의 양고기 냄새가 난다. 양의 가죽, 그러니까 스킨은 우리도 익히 잘기도 하고 유명한 ugg의 어그부츠부터 겨울용품에 거의 다 들어간다고 보면 된다.


공장에서 일할 필수품은 바로 안전화, 청력보호구, 고무장화였다. 패킹 쪽 일이라면 고무장화만 필요하지만 스킨 파트는 안전화를 신고 일한다. 스킨 파트에서 고무장화를 신고 일할 때는 스킨 파트의 꽃이라 불리는 "shot"이라는 곳에 갈 때만 신는다.(shot은 어떤 곳인지 후에 설명합니다)

피복류를 받고 1시간만 현장을 적응하는 체험을 했다. 나는 외부로, 다른 두 명은 공장 내부로 들어갔다. 저 멀리 살아있는 양들을 실어 나르는 대형 트럭과 트레일러. 대형견이 양들을 도축장으로 모는 풍경, 지게차가 도축된 양가죽을 실어 어디론가 가는 그곳, 거기가 바로 공장에서 유일무이하게 야외에서 일하는 그 유명한 스킨 파트, 바로 내가 일하는 곳이다.

도착해서 슈퍼바이저를 만났다. 슈퍼바이저의 이름은 또 kim이다.(이쯤 되면 그냥 kim은 은인이다 생각한다)

"Hello han."

이분은 나이 한 60 정도 돼 보이는 배 나온, 슬램덩크의 안 선생님 같이 인자하셨다. 그는 내 이름을 찰리 한 이 아닌 그냥 han이라고 부른다. 출근하면 옷을 갈아입고 출근도장을 슈퍼바이저에게 찍은 후 일에 투입하면 된다.

난 첫날이라 우선 슈퍼바이저에게 인사를 먼저 하고 작업장 뒤쪽에 있는 컨테이너 박스로 갔다. 컨테이너 박스는 탈의실이고 그 옆에는 1층짜리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이 있었다. 옷 갈아 입고 식당 한번 둘러보고 작업장으로 이동하는데 어떤 호주 청소년쯤 돼 보이는 사람이 나한테 왔다.

"Are you korean?"

"Yes hi buddy"

그때 갑자기 이 녀석이 나한테 말했다.


"안녕! jola 반갑다 18"

이러고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누구냐? 도대체 누가 이 아이에게 이런 몹쓸 한국어를 가르쳐준 거냐고? 안 되겠다. 내가 공장 나가기 전에 꼭 반드시 바로잡아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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