굵은소금이 눈에 들어가는 지옥의 고통을 아니?
내가 일했던 고기공장의 TMI
1일 도축수
- 양: 9,600마리
- 소: 400~500마리(소파트가 아니라 잘 모름)
내가 일하는 곳
- skin part afternoon shift(양가죽 쌓기, 오후근무)
여기서 알게 된 새로운 고용형태
- full time job: 그냥 정규직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주 38시간(이 정도쯤) 근무하며 각종 복지혜택 가능함.
- casual job: 나 같은 워홀러 들이며 복지혜택은 받지 못할 가능성도 있고 근무시간 보장 따위 없음. 하지만 full time job보다 시급이 높아 같은 일수, 같은 시간으로 일하면 훨씬 더 많은 돈을 번다. 대신 ester holiday나 queens birthday 같은 명절에는 돈 안 나옴. 하지만 그런 공휴일에 일하면 시급은 무조건 1.5배임.
공무원에도 급이 있듯 여기에도 기술에 따라 레벨이 나뉜다. 보통 나같이 처음 오거나 아무런 기술이 없이 오로지 힘만 쓰면 level 5
칼을 잡던 뭔가를 계량하던, 아니면 지게차를 운전하거나, 스킨 종류를 분류하면 level 4
level 3부터는 잘 모르겠다. 여하튼 그때부턴 좀 더 높다. 아마도 현장매니저는 level 3 정도일듯하다.
당연히 level이 올라갈수록 시급이 올라가는데 3급 부터는 꽤 차이가 난다.
호주 청소년의 그 말도 안 되는 한국 욕 인사를 받고 스킨 파트에서 30분 정도 간단하게 돌아가는 현장을 파악한 후 퇴근하라고 했다.
공장 근처에는 중개인이 몇몇 집을 렌트해서 나도 그중 한군대에 머무를 수 있었고 우선 형에게 전화를 했다.
"형. 나 여기 취업됐어요"
"진짜? 야 자식, 그래 넌 될 줄 알았어. 어디야? 내가 갈게"
내가 있는 곳을 알려줬고 그 형은 이미 중고차 한 대를 구매했었다. 그리고 우리는 눈물의 재회를 했다. 정말 southport에서는 돈 못 받는 서러운 워홀러 생활을 하던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차도 있고 나 역시도 그냥 평범하게 일만 해도 2주 페이가 세금 포함 1700 ~ 1900달러가 보장되어 있었다.
(왜 돈을 못 받았는지는 이유 있는 호주 11편을 참조해주세요.)
그 형은 참 친절했다. 나한테 돈 있냐고 물어보고 100달러도 없다고 하니까 400불 먼저 턱 주고 우선 2주 동안 버틸 수 있을 거니까 나중에 돈 받으면 천천히 갚으라고 했다.
그리고 자기 집으로 가서 같이 사는 한국인들을 만났다. 다들 고기공장에 다니고 있고 내 파트를 말했더니 거기 있던 다른 형이 말했다.
"어? 나 스킨 오전 파트야. 이야.. 너도 참 재수 더럽게 없구나. 하필 스킨 파트냐?"
그 집에는 한국인 5명이 살고 있었고, 1명은 오전 파트, 다른 동생 2명은 나와 같은 오후 파트였다.
저녁에 또 조촐한 파티와 함께 그간 내 시드니의 삶을 얘기해줬고 그 사람들은 고생 많이 했다며 여기서 열심히 일해서 그 돈 아쉽지 않을 만큼 벌 수 있다고 격려해줬다.
당시 11월 초였고 호주의 겨울 날씨는 건조하고 춥다. 11월 초면 그래도 낮 기온도 따뜻한, 약간은 늦봄 날씨이지만 밤이 되면 이불 없이 잤다간 입이 돌아갈 수 있었다. 하필 침낭도, 이불도 아무것도 없이 달랑 케리어만 끌고 왔기 때문에 덮을 것이 없었다. 그냥 반팔 긴팔 양말 모든 껴입지 않으면 새벽에 추워서 잠을 못 잘 정도였다.
다음날 오후가 되었다. 오후 조 근무시간은 공식적 15:30 ~ 00시 30분. 9시간 중에 8시간은 근무시간, 40분은 점심시간이고 남은 20분은 5분, 10분, 5분으로 나눠서 현장 매니저가 담배 피우는 제스처를 하며 "smoking time" 이면 5분, 엄지손가락을 들고 뒤쪽으로 이동하라면 10분이다.
공식적 근무시간 시작은 15시 30분이지만 15시부터 일을 할 수 있다. 바로 오전 조와 함께 근무하면서 약간의 인수인계 시간인데 그렇게 되면 30분은 오버타임으로 계산되어 시급의 1.25배로 계산된다. 그래서 나 역시 15시에 와서 일을 시작했다.
옷을 갈아입으려 컨테이너 박스로 이동하는데 또 그 호주 청소년이 나한테 욕 같은 인사를 건넨다.
나도 가볍게 웃으면서
"그래 반갑다 이 꼬맹아"라고 한국말로 인사를 하니까 녀석이 뭐라고 말했냐며 물어본다. 그래서 네가 한 인사랑 같다고 했더니 웃으면서 간다. 이 녀석은 분명 욕 같은 인사의 의미를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옷을 갈아입고, 안전화를 신고 슈퍼바이저에게 가서 "hi kim" 하면 편안한 목소리로 "hello han" 하고 출석체크를 한다.
스킨 파트 오후 조 에는 현장 매니저가 2명 있다. 오전 조 에는 성격도 까칠, 목소리는 쩌렁쩌렁, 모든지 급하고 느릿느릿 움직이는 인도와 수단 사람을 극도로 싫어하는 빈 디젤 같은 매니저가 있었다.
오후 조 에는 슈퍼바이저 kim이 5시쯤 퇴근을 하기 때문에 현장 매니저가 2명이고, 한 명은 큰 체구와 배나온 뚱보아저씨 darren과 왜소한 체격, 파란 눈, 발음이 영 엉망이고 목소리 또한 걸걸해서 더 알아듣기 힘든 wayn.(그냥 편하게 와인이라고 부른다)
이 두 명의 성격은 정말 극명하게 갈렸다. 대런은 언제나 상대방을 존중하며 성격은 매우 차분하다. 말끝에는 언제나 please를 붙이며, 천천히 해결하고 작업자들을 신경 쓴다. 7개월 간 대런이 화낸 모습은 정말 딱 한번 밖에 못봤다. 반면 와인은 그야말로 폭주전차 같았다. 느릿느릿하면 옆에 와서 엄청 빠르게 일하며 왜 이렇게 느려? 나이가 나보다 많아? 엉덩이 좀 걷어 차줄까? 하면서 항상 갈군다.
양가죽은 공장 내부에서 도축된 양들에게서 나온다. 지게차가 커다란 쇠 덩어리 상자를 싣고 오는데 거기엔 양가죽들이 쌓여있고 그 가죽들을 넣기 위해 돌아가는 믹싱기계 앞에는 키 큰 수단 녀석들이 칼을 들고 서있었다. 쇠 덩어리 상자가 수단애들 앞에 놓이면 양가죽의 다리 쪽을 칼로 자른 후 기계에 넣는다. 도축 후 가죽을 벗기는 기계로 가죽을 벗기다 보니 다리 쪽에는 미쳐 다 벗겨지지 못한 부분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가끔 내장이 잘 안 떨어지거나 하는 것들 또한 칼로 잘라야 한다.
가죽을 다 넣으면 소금 10포대를 갖고 와서 우리 같은 level 5 들이 기계에 소금을 넣고 1시간 동안 섞는다. 이런 기계가 약 20대가 있어서 쉼 없이 8시간을 내리 일할 수 있다.
첫 번째 믹싱기계가 믹싱을 끝냈고 나는 거기로 갔다. 기계옆에는 파란색의 front 버튼과 빨간색의reverse 버튼, 그리고 가운데 검정색의 stop 버튼이 있다. reverse버튼을 누르면 기계가 반대로 돌면서 안에 있던 양가죽들이 소금과 뒤엉켜서 나온다. 그렇게 양가죽들이 나오다 가끔 막히는 경우가 생기면 가죽을 잡아당겨서 꺼내다 보면 자연스레 나머지 가죽들도 따라 나온다. 그런 가죽을 나무로 된 팔레트에 한장씩 반으로 잘 접어서 반듯하게 잘 쌓으면 된다.
팔레트 한 개에는 45~50개 정도의 가죽을 쌓는다. 가죽이 다 쌓여진 팔레트에는 A4만한 종이에다 가죽의 종류와 수량을 작성한 후 팔레트에 쌓인 가죽들 사이에 꽂아둔다. 그리고 지게차 운전자 "다니엘"을 외치거나 손을 흔들어 쌓인 가죽을 가리키면 지게차로 팔레트를 들고 외부의 스킨 보관소로 이동한다.
가죽을 손으로 잡아 끌어내리고 팔레트에 쌓았다. 뭐 나도 나름 고생 많이 했으니 열심히 일하자 라는 생각으로 정말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 하지만 왜 재수가 더럽게 없다고 했는지 그제야 알았다.
스킨과 뒤엉킨 굵은소금덩어리들이 같이 나온다. 양가죽을 잡아당기다 보면 의도치 않게 소금이 튄다. 머리나 팔, 아니면 미쳐 작업복이 막지 못하는 몸속으로 들어가는 것 까지는 괜찮다.
하지만 수정체가 있는, 식염수로만 헹굴 수 있다는 우리의 eye, 눈에 소금이 들어간다면 너무 아프다. 아픈 정도를 떠나 눈을 감고 소리를 지른다. 반사신경이 그때만큼은 얼마나 쓸모없는지 알게 되었다. 눈에 소금이 들어가니까 바보같이 소금이 잔뜩 묻은 손으로 나도 모르게 얼굴에 갖다 데다가 반대쪽 눈에도 소금이 들어간다.
"아으..."
(처음에는 분명 한국말로 욕이 나온다. 하지만 2~3개월부턴 정말 외국 욕이 절로 나왔다.)
눈이 멀 것 같았다. 한쪽 눈에만 들어가면 저 멀리 눈 세척하는 곳에 가서 세척하면 되는데 두 눈에 소금이 들어간 나머지 난 자리에 주저앉았고 한국인 동생 두 명이 얼른 나를 부축해서 그곳까지 끌고 가서 눈 세척을 해줬다.
한 5분 동안 진정시키고 얼굴을 들었더니 희미하게 눈앞에 누군가가 서있었다.
바로 현장매니저 와인이었다. 내 앞으로 와서 알아들을 수 없는 그 영어 문장 중 딱 한 문장이 들렸다.
"welcome to pucking hell skin part"
고기공장에서 정말 많은 욕을 배웠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나도 욕을 엄청 하게 되었다. 아.... 내 영어 인생이 욕으로 시작해서 욕으로 끝나는 안타까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