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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있는 호주 18: 카지노와 마약의 차이는 활용방법

목표를 바로 잡으면 중독될 수 있는 것들을 활용할 수 있다.

by 찰리한

시드니에서 하루는 황사가 정말 심한 날이 있었다. 밤에 시드니 타워를 구경할 수 조차 없던 붉은 하늘이 새벽까지 지속되더니 다음날이 되어서도 여전했다. 붉은 아침을 맞이하면서 '혹시 세상의 종말이 오나' 할 정도로 심했었다.목이 텁텁할 정도였기에 창문을 닫고 오후가 되길 기다렸다.

역시 오후가 되니 대기 순환의 법칙(?)에 따라 황사가 어느 정도 날아갔다. 거리를 나서니 온갖 것들에 붉은 모레들이 쌓여있었고 나는 그걸 바라보기보단 생각이 났다.

'어? 이거 완전 세차장 난리 나겠는데?'

돈이 필요한 나에게는 그저 이 현상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얼른 웹사이트를 찾아보니 정말로 세차 인원을 급구하는 공고가 올라왔다. 빠른 연락으로 인해 난 세차장에서 이틀 정도 일 할 수 있었다. 그것도 풀타임으로.

11시 ~ 20시까지 무려 9시간이나. 그것도 점심, 저녁시간 따로 없이 9시간을 온전히 시급 10달러로 벌 수 있게 되었다. 중간에 김밥을 사서 10분 정도 먹을 시간만 줄 정도로 세차장은 미어터졌다.

건물 주차장 한편에 마련돼있고 4명이 1대에 붙어 10분 만에 세차를 끝냈다.

나는 역시 초보이다 보니 휠 세척을 맡겼다. 부드러운 솔과 천으로 휠을 닦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특히 지금도 기억에 남는 건 미쯔비시 마그나라는 차였다. 휠이 무슨 그물처럼 뭔 구멍이 그리도 많던지. 한 100개 정도 뚫려있었다. 보통 휠 한쪽에 1분 30초로 7~8분 안에 끝내야 하는데 이차는 10분 걸렸다. 혼날 줄 알았는데 다른 경력직 사람들은 나한테 소리치지 않았다.

그들도 이미 알고 있었다. 아니 경험이 있었다. 마그나가 들어온다면 15분 정도로 시간을 늘려줬다.

(미쯔비시는 일본 브랜드란다. 그때부터 가뜩이나 싫었던 일본을 증오하게 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핑계가 생겼다)

그렇게 이틀 동안 18시간을 세차장에서 일하다 보니 거기 있던 관리자가 군말 없이 일하는 내가 좀 괜찮았는지 주말에 정기적인 출근을 요청했고 나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이렇게 주말에는 180달러를 벌 수 있는 고정 Job이 생겼다.

돈을 벌었으니 당연히 영어를 체험할 현장이 필요했다. 시드니 RSL은 영어를 배울 수 없었다. 하지만 southport RSL클럽을 생각하면서 포커를 떠올렸고 달링하버 쪽에는 스타시티라는 카지노가 있었다.

이번엔 미리 동생들에게 물어봤다. 회원카드를 만든다면 음료 2잔이 매일 무료로 제공된다는 꿀팁을 얻었다.


스타시티로 향했다. 약간 찢어진 청바지, 노란색 옷, 두터운 후드 집업을 입고 카지노 앞에 섰다. 내 인생에 처음으로 카지노를 가보니 아주 고급졌다. 여기저기 영어로 대화하는 사람들. 그냥 가만히 있어도 리스닝은 저절로 되는 느낌을 받으며 입장하려고 했다.

드웨인 존슨 같은 가드 여러 명이 있었고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자연스럽게 입장했는데 나를 불렀다.

"Excuse me, sir"

"Me? Yes. any problem?"

괜히 문제 있나 하면서 물어봤는데 문제가 있었다.

가드가 나한테 바지를 가르치며 찢어진 청바지는 입장할 수 없다고 한다. 뭐지? 동양인 차별이야? 하면서 연신 why?를 외쳤다. 정말 다행히도 한국말을 할 수 있는 가드가 한 명 있었다. 찢어진 청바지나 복장이 좀 어수룩하면, 그러니까 돈 없어 보이면 입장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바지만 갈아입고 오면 괜찮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기 보이는 분들은 슬리퍼를 신었지만 가드들이 잡지 않는 이유는 슬리퍼에 반짝이는 구찌 로고, 이름 모를 명품가방 때문이란다.

친절하게도 아주 자세히 설명해주셨다. '나참.. 카지노 들어가기도 이렇게 힘들구나.'

집으로 가서 단정한 청바지에 신발은 그나마 메이커 나이키로 바꿔 신고 다시 갔다.

역시나 아주 쉽게 입장할 수 있었고 끝이 보이지 않는 겜블 머신과 포커 테이블, 블랙잭, 바카라, 룰렛 등등.

세상에나! 갑자기 흥분됐다. 도박할 생각이 아니라 그냥 다른 문화를 접하고 있어서였다. 그리고 카지노를 갈 때 '내 원칙은 지갑에 딱 5달러 지폐만'이다. 분명 돈이나 카드를 들고 간다면 결과는 뻔하다. 돈을 더 따 보려고 계속 돈을 쓸 테고 한번 돈을 땄다면 아마 거기서 헤어 나올 수 없을 '중독'된 삶을 살 것 같았다.

'카지노에 온 목적은 영어를 배우고 타 문화를 간접적으로 체험하기 위함'인 만큼 사전에 유혹될 만한 것들은 미리미리 가지치기해야만 했다.

그렇게 카지노를 매일 저녁에 들락날락 거리며 음료 2잔을 꼬박 챙겨 먹으면서 영어를 배워가고 있었다.


셰어하우스에 새로운 손님이 왔다. 기존에 있던 동생 한 명이 나가고 호주를 여기저기 떠돌다 시드니에 온 나와 나이가 동갑인 친구가 들어오게 된 것이다.

새로 오면 버릇처럼 우리는 파티를 했고 그 친구는 호주에 1년 좀 안되게 머물고 있던 경험이 다양한 친구였다.

저녁을 같이 먹고 내가 만들었던 그 형편없는 양배추 김치를 다들 맛있게 먹고 맥주를 사서 우리들만의 조촐한 파티를 하고 있었다. 나도 사기당하고 이렇게 지금 지내고 있다는 얘기에 그 친구 역시 그런 사기를 여러 번 당해서 아주 단단한 정신력을 갖고 있었다 생각했다.

룸메이트들 중에 나를 제외한 3명은 다 담배를 피우는데 호주는 담배 한 갑이 거의 10달러로 꽤 비쌌다. 그래서 담뱃재와 필터, 종이로 나눠지는 말아서 피우는 수재 담배를 많이 산다. 직접 담뱃재를 덜어 종이에 넣고 필터를 끼워 말아 버리는, 제조사의 인건비 절약 차원의 조금 저렴한 담배였다. 근데 그 친구가 갑자기 담배 피우는 다른 동생들에게 자기는 마리화나 갖고 있다고 한번 같이 피우자고 하는 것이다.

시드니에 와서 폐가구 폐가전 수거 일할 때 그 아파트의 여자와 남자가 생각났다. 그 엉망인 집과 방금 만난 사람조차 기억 못 하는, 그리고 역한 냄새들.(이유 있는 호주 15 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대놓고 홍보중)

하지만 동생들은 너무나 순진하게도 그 친구를 따라 발코니로 나가서 담배에 마리화나를 넣어서 피는 것이다.

5분 정도 후 들어왔다. 냄새가 아주 그때의 그 역한 냄새였다.

그 친구가 나한테 말했다.

"너무 기분 좋아. 너도 해"

"난 싫어. 안 할 거야"

"한번 해봐. 날아다닌다니까. 너 지금 정말 울적하잖아. 진짜 한 번만 빨아봐. 인생 뭐 있어?"

솔직히 술도 마셨겠다, 같은 민족에게 사기도 당했겠다, 펴야 할 만한 판은 다 짜여있었다. 담배는 피워본 적이 없지만 타국이고 아는 사람도 없는데 눈 한번 딱 감고 펴볼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정말 기분이 좋을까? 정말 날아다니는 기분일까?

하지만 난 목표가 있었다. 그것도 내가 세운 목표, 내가 호주에서 이뤄야 할 목표에 마약이란 것은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야! 너넨 호주 왜 왔냐? 기껏 마약이나 하러 왔냐?"

거부의사를 떠나서 녀석들을 질책했다. 하지만 녀석들은 약에 취해서 시시덕거리면서 웃기만 했다.

그리고 이상한 현상이 생겼다. 동생 2명은 뭔가에 꽂혔는지 계속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1명은 화장실 갔다 변기를 부여잡고 변기와 대화하면서 위로하고 웃고 있었다. 또 한 명은 티브이에 심슨이 우연히 방영 중이었는데 심슨에 꽂혀서 심슨 만화가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심슨 보여달라며 티브이에게 사정사정을 했다.

1시간 정도 지난 후 다들 정신이 돌아왔는지 침대로 돌아와 좀비처럼 움직이지 않고 잠을 청했다.


그 모습을 보고선 더욱더 확신이 들었다.

절대로 마약은 손대지 말자!



지금 생각해도 난 마약을 손대지 않았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낯선 땅, 낯선 환경이니만큼 익명성 또한 보장되니까 쉽게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약은 내가 이루려는 목표에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사기당해서 멘털이 흔들리고, 유혹에 쉽게 빠질 수 있는 나를 버티게 해 준 건 내가 세운 목표 때문이었다.

여행 가는, 워킹비자를 받고 타국으로 가려는 사람들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면 되냐고 물어본다.

그럼 난 언제나처럼 자신 있게 대답한다.


"여행을 가려는 목표를 확실히 해! 그럼 진짜 해야 되는 것과 하지 말아야 되는 것을 구별할 수 있어!"


확고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 낯선 땅에서 익명성이 보장되어 있으니 유혹에는 더 쉽게 흔들릴 수 있다. 한 번은 어렵지만 두 번부터는 매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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