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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있는 호주 17: 한국이 그리워? 그럼 만들어!

까짓 거 별로 어렵지 않아! 현지화시켜볼까?

by 찰리한

호주에 온 지 6개월이 지났다. 고작? 겨우?

언제나 한국 가는 꿈을 꾼다. 그렇다고 호주 생활이 아주 불행하지는 않았다. 물론 돈 좀 없고, 한국과는 계절이 반대여서 좀 춥고, 먹고 싶은 거 좀 안 먹고 하루하루 그냥 최선을 다해 일 구하고, 안 구해진다고 너무 속상해하지 말고 자연이 주는 편안한 하이드파크 나 보타닉가든에 가면 된다.

그러다 인위적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오페라하우스와 하버 브리지를 감상하고 사람들의 즐거운 표정을 감상할 수 있는 서큘러키에 가서 사람 멍을 하고, 페리들의 오고 가는 물결을 보며 물 멍을 하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워홀 비자 1년은 채우고 돌아가야 뭔가 친구들에게 허세 아닌 허세를 부릴 수 있다는 엉뚱한 생각부터 내가 세운 목표를 내가 만족할 정도로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은 돌아갈 수 없었다. 늘 그립지만 좀 금의환향하고 싶었다.

하지만 도저히 한국이 그리워서 안 되겠다 생각이 들어 최대한 안 가려고 미루고 미뤘던 한국식품점에 갔다.

물 건너온 반가운 라면과 김치, 온갖 종류의 과자들이 너무나 많았지만 멀리서 왔기 때문에 역시나 비쌌다. 김치는 1kg에 14달러 정도였고 라면도 1 봉지에 3달러가 넘었다. 당시 환율이 1,000 ~ 1,200원을 오고 가기 때문에 먹고 싶지만 저걸 사 먹었다간 아마도 단백질 주 공급원인 돼지껍질을 못 사 먹을 것 같았다.

'생각을 해보자! 자, 김치의 재료가 뭐였지? 배추, 무, 액젓, 쌀풀, 고춧가루, 소금, 그 밖에 마늘, 파 등등.'

호주 대형마트에서 저 재료 중에 구할 수 있는 건? 마늘과 소금 정도였다. 소금도 굵은소금이 아닌 가는소금.

그리고 저렇게 모든 재료를 다 준비했다가는 사 먹는 게 저렴할 정도의 비용이었다.

'줄여보자. 가장 핵심적인 김치에 필요한 재료는? 배추, 액젓, 소금, 고춧가루'

이걸 대체할 수 있는 것은? 배추 대신 양배추, 액젓은 woolworth에 아시안 코너의 피시 오일, 문제의 고춧가루는 칠리파우더.

(피시 오일은 건강식품보조제로 판매하지만 woolworth의 아시안 코너에는 액젓 비슷한 피시 오일이 있다. 우리가 익히 잘 아는 그런 맛은 아니지만 이게 건강식품 보조제라고 오해하고 들이켰다간 토 한 다.)


재료비가 확 줄어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김치 1kg 살 돈으로 한 2~3kg 정도 분량이 나왔다. 같은 값이면 이렇게라도 하는 게 훗날을 위해 더 좋은 투자였다. 이제 어머니의 김치 맛을 생각하며 만들어봤다.


1. 양배추를 큼지막하게 썬다.

2. 썰어놓은 양배추를 스튜용 큰 냄비에 담고, 가는소금을 조금씩 뿌려가며 숨을 살짝 죽인다.(처음엔 막 뿌렸다가 거의 바닷물 수준의 쓴맛 때문에 양배추 하나가 음식물쓰레기로 직행했다)

3. 피시 오일을 붓는다. 멸치, 까나리액젓 같은 강한 향도, 극강의 짠맛, 쓴맛도 아닌 어중간한 맛들 과 약간 단맛 때문에 소금과 적절히 섞어 단맛을 최대한 없애준다.

4. 칠리파우더는 정말 미세한 컨트롤이 필요할 만큼 적절히 넣자.(생각보다 엄청 매웠다. 우리가 잘 아는 스위트 칠리소스 생각하면 '큰일이'가 날 수 있다)

5. 마늘은 무진장 저렴해서 많이 사서 죄다 갈아준다. 믹서기는 있어서 믹서기에 넣고 다 갈았다.(마늘 껍질 까기는 역시 물에 불려서 까면 아주 깔끔하게 잘 벗겨진다)

6. 대망의 쌀풀은 주인장이 무한 제공하는 쌀을 미리 불려놨다가 물을 넣고 끓여 죽처럼 만든 다음 부어준다.

7. 이제는 힘으로 모든 걸 해결한다. 다 버무려준다.


다 버무리고 나서 하나 집어먹었다.

"세상에, 이거 누구 맛이니?"

정말 니맛도 내 맛도 아닌 이런 맛도 없을 것이다. 너무 맛이 없었다. 칠리파우더와 소금 더 넣고 마늘 더 때려 넣고 피시 오일은 거의 한통은 다 사용했다. 다시 맛을 봤다.

"세상에나, 여전히 맛없어"

하지만 국산 재료가 아닌 해외 재료로만 만든 것이라 그냥 칭찬하고 넘어갔다. 락앤락 통 같은 곳에 소분하여 냉장고 깊숙한 곳에 2통 넣고 한통은 밖에 꺼내놨다. 참 지금 보니 별짓을 다한 것 같았다.


또 하나는 찹쌀떡이 그렇게 먹고 싶었다. '이건 사 먹어야지' 하고 한인마켓에서 찾아봤지만 팔지 않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만들어 먹어야지요.

인터넷을 찾아봤다.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하고 찾아보니 나와 같은 고민을 한 워홀러들이 상당히 많았고 그중에 엄청난 레시피를 발견했다. 찹쌀가루는 어쩔 수 없이 한인마켓에 가서 샀다. 팥을 쑤을까 말까 엄청 고민했지만 한 번의 즐거움을 위해 몇 시간을 불 앞에 서서 팥을 쑤는 건 아니라 생각 들어 팥앙금 역시 거금을 주고 샀다. 찹쌀떡 만들기는 김치보다 훨씬 더 정말 쉽다.


1. 찹쌀가루와 물을 거의 1:1 비율로 섞는다.

2. 그릇을 랩에 싸고 포크로 구멍을 살짝 낸 다음 전자랜지에 1분 돌린다.

3. 숟가락으로 한번 휘젓고 30초 또 돌린다. 이렇게 한 4번 정도 반복한다.

4. 약간의 쫀득함이 보이면 꺼낸다. 반죽이 엄청 뜨겁지만 손에 물을 묻혀서 꺼낸다음 필요 없는 치대기를 한다. 나에게 사기 친 그 한국녀석을 생각하면서 마구 치댔다.(손에 물을 계속 묻혀가며 치대야 손도 덜 뜨겁고 나중에 손을 씻을 때 그나마 깔끔해진다.)

5. 계속 치댄다고 더 쫀득해지진 않지만 기분이 풀릴 때까지 치댄다.

6. 손에 식용유를 묻히고 치대기가 끝낸 반죽을 떼어 송편처럼 가운데를 움푹 파고 거금을 주고 산 팥앙금을 사정없이 넣어준다.

7. 완성된 찹쌀떡은 아직 따뜻하여 쫀득거림이 덜 하다. 그릇에 찹쌀가루를 살짝 뿌리고 떡을 올려놓은 다음 찹쌀가루를 떡에 뿌려 서로 달라붙는 걸 방지한 후 반드시 검은 봉투로 싸서 냉장고 깊숙한 곳에 넣는다.

(8명이 사용하는 냉장고에서는 원치 않는 도난사건이 가끔 발생 난다. 내가 셜록홈스가 아닌 이상 범인을 추적하는 건 불가능하다. 냉장고 깊숙한 곳에 검은 봉투로 싸놓으면 그래도 내용물 확인을 하지 않을뿐더러 건들고 싶지 않다.)


그리운 고향 음식을 만든 후 서큘러키에 가서 물 멍하고 오면 2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저녁시간, 내돈내만(내 돈으로 내가 만든) 양배추 김치, 밥 그리고 단백질 공급원 돼지껍질을 먹었다.

절대 한국 생각이 나지 않는 김치 맛이지만 한 번쯤 고향이 주는 포근함을 느껴보려고 용을 썼다. 다 먹고 난 후 가장 기대에 찬 찹쌀떡을 집어 입에 넣었다.

"오홍! 이 맛이야. 고향의 맛!"

찹쌀의 쫀득함이 아니라 팥앙금의 단맛 때문이었다. 역시 이런 건 돈 주고 사 먹어야 제맛이 난다. 그렇게 잠시 동안 향수병을 날려버린다.

상온에 놔둔 양배추 김치는 2~3일 지나면서 꽤 빠르게 발효되었다. 약간 타이밍을 놓쳤는지 쉰 맛보다는 물도 엄청 나오고 먹지 못할 음식으로 변해서 버렸지만 냉장고 깊숙한 곳에 넣어둔 양배추 김치는 기대 이상의 맛을 냈다. 이젠 주중에 coles의 그 면들과 치킨스톡으로 버티던 내게 아주 반가운 고향 친구 김치가 생겨서 주중 밥상이 마냥 외롭지는 않았다.

이 기세라면 아마 두부도 만들어 먹지 않았을까??
하나씩 하나씩 헤처 나가는 거다. 하나씩! 욕심내지 말고 천천히 하다 보면 어느샌가 꽤 많이 해내고 있음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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