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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한 Nov 21. 2020

우리 집 중심에서 '비명'을 외치다

나만 이런 경험 있는 거 아니지?

코로나 시기에 아이들이 밖에서, 키즈카페에서, 사람 많은 곳에서 놀기가 어려웠다. 집에서 무료하게 보내야 하기에 아내도 점점 지쳐갔다. 때마침 첫째님의 유치원 친구 엄마가 아내한테 줄 장난감이 있다면서 받으러 올 수 있냐고 물었다.

"그래. 새로운 장난감이 온다면 잠시 동안은 행복할 거야!"


우리는 아주 반가운 기색을 보이며 당장에 달려갔다. 중고물품이지만 그 엄마는 물건을 너무 깨끗하게 쓴 나머지 산 게 아닌가 의심될 정도였다. 그렇게 물품들을 한 보따리 받아와서 이것저것 꺼내어 아이들에게 보여줬다.

첫째님한테 준 장난감인데 눈치 없는 둘째 놈이 더 신나 한다.

"언니 꺼야!"

아내와 나는 동시에 말했다.


첫째님은 욕심이 거의 없다. 사물에 집착하는 건 그저 긴 막대기 같이 흔들기 좋은 것들, 불빛과 함께 멜로디가 나오는 멜로디 북 또는 멜로디가 나오는 사물들, 자기 입에 들어갈 수 있는 everything.

그래서 갖고 온 장난감을 보고는 휙 돌아서는데 뽀로로 버스가 있었다. 그것도 도레미파솔라시도에 맞춰 영어와 한글노래가 나오고 번쩍번쩍 불빛이 나왔다. 그걸 보고는 무심한 척 옆에 와서 털썩 앉아 연신 눌러대고 불빛을 보고 노래를 듣는다.

하지만 둘째 놈은 아기 인형을 봤다.

"우아 아빠 인형이야. 아기 인형"


인형을 꺼내는데 나는 보자마자 "헙" 했다. 멀리서 본다면 이건 분명 아기라고 오해할 만큼, 드라마에서 그냥 아기 포대기에 넣어도 믿어줄 정도의 정교한 아기 인형이었다.

"도대체 이 인형은 왜 받아 온 거야. 깜짝 놀랐네"


근데 둘째 놈은 그 아기 인형이 마음에 들었는지 품에서 놓지를 않았다. 언제나처럼 옆에 끼고 작은 빈백에 앉을 때 옆에 앉히고, 아기 인형이 잔다고 아빠 엄마 조용히 하라고 소리친다.

"둘째야! 더 시끄러워!"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이불을 구해야 한다면서 어디서 황금색 식탁보를 들고 와서 아기 인형한테 덮어주고

"잘 자"라고 한다. 이불을 덮어줘야지 라고 하면 그게 이불이라고 한다.

아기 인형이 아프네, 감기 걸렸네, 밥 먹어야 하네 등등 뭔가 조짐이 셋째를 원하는 것 같아서 장난으로 물어봤다.

"동생 갖고 싶어?"


당연히 '아니야'를 외칠 줄 알았다. 왜냐면 둘째 놈은 태어나자마자 언니가 있는, 외동이 되어본 적이 없으니 욕심도 많겠다, 먹고자 하는 욕구도 크겠다, 이기주의의 끝판왕이라 동생이 생긴다면 여왕처럼 보내는 집에서 당장 하녀로 신분 급 하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놈이 대답한다.

"어"

"뭐?? 동생 갖고 싶어?"

"어, 동생 갖고 싶어"


우리는 서로 잠시 심각해졌다가 쳐다보고 웃었다. 그리고 둘째한테 얼른 사과했다. 둘도 힘든데 셋은 못하겠다. 가끔 셋째 갖은 부모들이

"셋이면 생태계가 알아서 형성되듯 지들끼리 놀아서 편해"

라고 말하는 거짓말에 휘둘릴 뻔했다. 약간 군대 갔다 온 사람들이 '군 생활할만해'라는 거짓말처럼.

둘째 역시 진심은 아녔던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그 아기 인형에게만 온갖 정성을 다하고 있었다.


이렇게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을 받아서 아내는 내가 출근할 때 그래도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풀어놓고 원 없이 놀게 했다. 저녁 10시에 카페 일을 끝마치고 집에 오면 11시였다.

첫째님은 이미 9시면 꿈나라로 보내버렸고 둘째 놈은 버티고 버티다 10시 전에 같은 나라로 알아서 가셨다.

아내는 드디어 육아 탈출을 외치며 안방에 들어가 밀린 웹툰을 보면서 cyber love 중 이셨다.


집안이 아주 어두컴컴하다. 집에 도착한 나는 혹시나 모를 아이들이 깰까 봐 휴대폰 플래시를 켜서 안방까지 걸어간다. 여느 날처럼 플래시를 켜는 순간 비명 지를 뻔했다.

누워있는 인형에 식겁했다

플래시를 켜는 순간에 나온 셋째 같은 놈

플래시를 켰는데 흰 바닥이 보여야 할 장면에서 저 인형이 나를 보고 있었다. 어렸을 때 인형 나오는 영화라고 해서 봤던 '사탄의 인형'의 충격에서 헤어 나오기 힘들 정도였는데 하필 셋째 같은 놈이 저러고 누워있어서 너무 놀랐다.

안방으로 얼른 들어가 아내한테 말했다.

"여보, 인형이 왜 저기 누워있어? 나 정말 놀랐어. 소리 지를 뻔했다"


아내는 웃으면서 저 인형을 선물해 준 친구 엄마의 아빠도 이런 경험이 있었다고 한다.

'아하! 나만 그런 게 아니네'


하지만 문제는 또 생겼다.

다음날 저녁에도 어김없이 퇴근하고 집에 오면 불은 다 꺼져있었다. 이번엔 마음먹고 바닥에 나올 셋째 같은 놈에게 놀라지 않겠다 하고 플래시를 켰다.

"얼레?? 뭐야 어디 갔어?"


보이지 않았다. 셋째 같은 놈이.

근데 왜 공포영화 보면 그러지 않나? 굳이 가지 않아도 될 곳을 가고, 굳이 찾지 않아도 될 것을 찾다가 봉변당하는 그 장면들. 왜 그런지 알겠다. 나도 '이게 어디 간 거야' 하면서 바닥을 마구 찾아 헤맸다.

그러다 '없구나' 하면서 플래시를 옆으로 돌리다 "끼옵" 하고 소리가 세어 나왔다.

'소리 지르면 안 된다. 소리 지르면 애들 깬다'

아니... 네가 왜  또 거기서 나와!


다음날이었다. 이젠 다시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어디서 튀어나와도 나는 크게 놀라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또 바닥을 먼저 비취고 다음 책장을 비췄다. 역시나 없었다. 하지만 이젠 찾아 헤매지 않으련다. 안방에 가서 아내한테 인사하고 입던 옷을 잠옷으로 갈아입고 부엌으로 걸어가 세탁바구니에 옷을 넣으려고 했다. 근데 걸어가는데 뭔가 '물컹'헸다.


"헙? 큰일 났다. 애들 밟은 거 아냐?"

하면서 나는 혼비백산  휴대폰을 꺼내 플래시를 비췄다가 "으악" 하고 소리 질렀다. 그리고 진짜 기절할 뻔했다.

둘째 놈을 밟은 줄 알았다.

안방으로 와서 아내한테 그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난 일에 대해 설명하니까 아내는 또 웃는다.

이쯤 되니까 왠지 의심이 된다. 그래서 아내한테 말했다.

"너... 나 멕이는거지?"


내가 뭐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었니? 크게 잘못했니?? 싫으면 말로 하지. 이건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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