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부산지역에 200mm가 넘는 기록적인 호우가 쏟아지면서 3명이 사망하고 50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하는 등 피해가 잇따랐다.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도심이 물바다로 변하면서 침수된 지하차도에 갇힌 차량에서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산사태, 옹벽 붕괴, 주택과 지하차도 침수 등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들로 몇 시간동안 고립된 사람들이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넘나들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기도 했다.
23일 많은 비가 내린 부산 동구 초량동 부산역 인근 제1지하차도에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곳에 갇혔던 60대가 병원에 이송됐으나 숨졌다. 사진=연합뉴스
하늘에 구멍이 난 것처럼 물폭탄이 쏟아졌고, 이 소식을 미처 접하지 못한 사람들은 퇴근길 침수된 버스나 지하철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그때 대한민국 재난주관방송사라는 KBS는 편성표대로 다큐멘터리와 음악 방송을 내보냈다. 최소 2~3시간에 걸쳐 발생한 폭우였지만 편성은 바뀌지 않았다.
만약 이런 비 피해가 서울이나 경기지역에서 발생했더라면 어땠을까. 굳이 비 피해로 치환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빌딩에 화재가 발생하더라도 곧바로 재난방송으로 전환된다. (빌딩에 발생한 화재가 가벼운 일이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 재난의 범위가 이번 비 피해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좁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예로 들었다)
이런 댓글과 트위터들이 넘쳐나고, KBS 시청자 게시판에는 항의글이 빗발치고 있다. 지난번 강원도 산불 때에도 재난 방송 편성 타이밍이 늦어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사실 이런 일은 한 두번이 아니다. 지난 2017년 9월 부산에 폭우가 쏟아져 일상이 마비된 날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나는 출근하는 차 안에 있었다. 아래는 그날 일기장에 끄적여뒀던 소회다.
<'비가 꽤 많이 내리네. 아침에 차 막히겠다.' 딱 그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20~30분 만에 상황은 급변했다. 누군가는 물에 반 쯤 잠겨버린 차를 버리고 도망쳐야했고, 누군가는 무너지는 집에서 살기 위해 뛰쳐나와야만 했다. 믿을만한 건 카톡, 페북, 트위터로 날아드는 실시간 중계글 뿐이었다. 각자도생 외엔 길이 없었다.
서울에 빗대면 강남 한복판이 물에 잠긴 정도일까. 물론 수도 서울과 부산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겠지. 그렇다더라도 너무했다. 얼마 전 인천 물난리와도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많은 언론은 "멀리 부산에 이런 일이 있었답니다"라고 전하는 수준에서 보도를 마쳤다. 언론의 보도는 대중의 수요와 입맛을 고려하는 법이니 무턱대고 비난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수도권과 수도권이 아닌 지역의 간극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2017년 9월 발생한 부산 폭우. 사진=부산일보
인구 350만의 도시 부산에서 재난이 발생해도 이럴진데, 이보다 인구가 작고 사람들의 관심이 적은 지역에서 재난이 발생한다면 어떨까. 비단 KBS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런 일들은 주로 지상파 3사 뉴스의 끄트머리 쯤, 그날의 정치 경제 뉴스가 모두 소화됐다고 생각될 때, 느즈막히 보도된다. 뉴스는 그 재난에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었다는 듯, 태연한 방식으로 '딴나라 이야기'하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전달된다. 신문사는 대개 사회2면 정도에 보도하고, 사진이 함께 실리면 감지덕지 정도일까. 우리는 우리가 사는 곳에 따라 재난의 크기도 다른 나라에 살고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