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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기자 Jul 17. 2020

'지방 청년'으로 살아간다는 건

'서울 공화국'이 영토를 넓히는 데 반대합니다.

제주 애월읍의 한 카페에서 만난 댕댕이



며칠 간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다. 특별한 목적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많이 먹고 많이 걷고 많이 읽으며, 무한히 반복하던 일상의 고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처음 며칠은 비즈니스 호텔에 묵었고, 그 뒤 며칠간은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냈다.


게스트하우스라는 게 원래 다소 불편하지만 저렴하게 숙박공간을 제공하기에, 나처럼 주머니는 가볍고 어디서든 뒹굴 자신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네이버에 '제주 게스트하우스'를 검색하면 주르르 쏟아지는 파티 위주의 게하는 아니었고, 조용한 분위기에 소수의 사람들만 받는 그런 게하였다. 20대 초반들과 서로 무릎을 맞대고 앉아 감자튀김이나 치킨너겟 따위를 먹으며 술게임을 할 자신은 이제 아예 없어졌다. 그래도 내가 묵었던 게하에서는 해 질 무렵 거실 테이블에 모여앉아 각자 차나 맥주 따위를 마시는 자유시간이 있었다.




"어디에서 오셨어요?"


지나치게 선을 넘지 않으면서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엔 100점 만점에 80점 정도를 줄 수 있는 질문이다. 사람들이 사랑하는 여행지의 게스트하우스에서라면 추가 점수로 10점 정도를 더 줄 수 있을만하다. 이날 게하에서도 누군가가 어김없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


나를 비롯해 한 두 사람만 빼놓고 모두 '서울'에서 왔다는 대답 내놨다. 이런 류의 게스트하우스 경력이 많고 분위기를 주도하던 A가 나를 향해 "처음에 '저는'이라고 말을 꺼내실 때부터 어디서 왔는지 알아챘다"고 하며 화기애애한 자리를 이끌어냈다. 내가 가진 사투리 억양을 두고 한 말인데, 사실 맞는 말이니 기분 나쁠 이유는 없었다.


친구 사이인 게스트들이 인스타그램 '부메랑'을 하기에 나 역시 "우와 이게 뭐예요"라며 대화를 이어나가려고 했다. 그러자 B가 "요런건 지방에는 없는, 서울 도시 사람들만 하는 겁니다"라며 농담 아닌 농담을 던졌다. 대구에서 왔다고 밝힌 C가 "제주에는 유독 서울서 오신 분들이 많은 것 같다"고 하자 A가 "서울 사는 사람들이 지방 사람들보다 많으니 당연한 것 아닌가요"라며 본인 나름의 정답을 알려주기도 했다. 그날 게하에서 지방에 대한 이야기는 5분 남짓 오고 간 뒤 끝이 났지만, 내게는 유독 기억에 남았다. 지방 일간지에서 근무하며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꼴로 '지역 균형발전'을 외쳐왔던 게 직업병처럼 남아있었기 때문에 그랬는지도 모른다.




서울 사람들이 생각한다는 지방 지도 (출처=SBS)


 


우선 명확히 짚고 넘어가자면, 서울 인구가 비서울 인구를 추월했다는 건 틀린 말이다. 올해 6월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서울특별시에 등록된 인구는 972만 명으로 1000만에 조금 모자라는 수준이다. A는 아마 수도권 인구를 서울 인구로 착각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통계청이 6월 발표한 '최근 20년 간 수도권 인구이동과 향후 인구 전망'에 따르면 올해 수도권 인구는 2596만 명으로 비수도권 인구인 2582만 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인천과 경기도가 포함된 건데, 통계 작성 이후 수도권 인구가 비수도권을 넘어서는 건 처음이라고 한다.


아니, 어쩌면 A가 착각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A를 비롯해 이날 게스트하우스에 모인 여럿이 정확히 따지자면 '서울특별시'에 사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분당과 일산, 의정부, 안양 등지에 살았지만 이들은 뭉뚱그려 '서울에서 왔다'고 했다. 특별한 의도를 갖고 한 말은 아닐 것이다. 직장, 대학, 친구, 소모임, 자주 가는 카페와 맛집, 심지어 헬스클럽까지 일상생활의 대부분을 실제로 서울 권역에서 하기 때문일 거다. 서울 생활권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구태여 콕 집어 경기도 의정부시 ㅇㅇ동에서 왔다는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기도 하다.


그렇지만 나는 이렇게 서울의 영역이 커지는 게 두렵다. 지하철 노선도는 조금 더 복잡해질 수 있겠지만, 서울특별시라는 행정구역이 지도 상에서 실제로 더 커질 일은 아마 없을 거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서울'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영향력은 점차로 커지고 있다. '서울 사람들일 생각하는 지방 지도'가 언론에 보도될 때 편집국은 이를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받아들였겠지만 이런 생각은 그들의 예측보다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지도에서 서울을 그려놓은 동그라미는 조금씩 조금씩 커질 것이다.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GTX 구간이 완공되는 속도와 얼추 비슷하게 말이다.




국가는 지역 간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하여 지역경제를 육성할 의무를 진다. (헌법 제123조 2항)


지역 균형발전은 헌법에 명시돼 있는 헌법적 가치다. 굳이 헌법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균형발전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을 많지 않을 거라고 기대한다. 개인적으로 일간지 머리기사로 나오는 사회 문제들의 절반 정도는 '서울 공화국'에서부터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서울이라는 도시로 편입되기 위해, 서울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나아가 서울에서 남들보다 조금 더 잘 살아보기 위해 수많은 갈등이 빚어지고 있단 거다.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이야기처럼 나도 학창시절의 유일한 목표는 '인서울'이었다. 대학 입학 이후 혜화동 근처에 처음 잡은 나의 보금자리는 고시원이었다. 중국인 유학생이 대다수고 공용 화장실과 샤워실이 있었던 그 고시원에서 나는 1년 간 살았다. 처음으로 독립을 했다는 생각에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정신없이 즐거웠지만, 아들의 짐을 옮겨주고 부산으로 가던 기차에서 어머니는 다리를 쭉 펴면 벽에 발바닥이 닿는 고시원을 생각하며 오랫동안 울었다고 했다. 이후로도 '서울 물' 좀 먹겠다고 나선 아들 때문에 매달 나간 생활비는,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감당을 했을까 싶을 정도다.


그래서 서울 공화국이 영토를 넓히는 데에 반대한다. 대학생이든 직장인이든 지방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서울에서 살아간다는 것과 비교하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원칙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걸 목표로 두고 하나씩 하나씩 바꿔가야 한다. 지금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넘어, 살아남기 위해선 서울과 수도권에 어떻게든 발을 붙이고 버텨야 하는 형국이다. 점점 기울어지다 90도로 꺾여버린 지방은 그야말로 낭떠러지다. 우리는 선택을 한 것이지 승리하거나 패배한 것이 아니라고 누구나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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