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반말이 싫었던 아이

by 한수

나는 반말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나보다 나이가 많다고 무작정 반말을 하는 사람이 정말 싫었어요. 물론 반말 자체가 문제라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사실은 그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거예요. 자신보다 어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부분에서 나를 무시하는 것으로 보였거든요. 저도 존중받고 싶었는데 말이죠.


그렇다고 “왜 나에게 반말하느냐”며 따질 수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기분 나쁘지만 그래도 예의는 지켜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섭기도 했습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 특히 어른에게 반기를 드는 건 그 자체로 죄를 짓는 듯한 기분이 들었으니까요.


그러고 보면 어른들은 참 이상했습니다.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는 예의를 차리지 않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나이 어린 사람이 무슨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말이죠. 그게 무례한 행동이라는 것을 인식하지도 못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나이가 많으면 어떻게 행동하든 괜찮다고 생각했던 걸까요? 나이가 어리면 어떤 대접을 받아도 억울해할 것 없다고 여겼던 걸까요? 내가 타고 다니던 버스에서는 ‘당당히’ 자리를 내놓으라는 분들도 꽤나 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쩌면 어린 사람을 하나의 인격체로 여기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른들은 종종 어린 사람을 향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라고 했으니까요. 어른의 말에 반기를 들 때 특히 더했습니다. 하지만 그저 내 의견을 밝히고자 할 때도 비슷한 반응이었던 걸 보면, 확실히 어떤 어른에게는 ‘어린 사람’을 바라보는 일관된 태도가 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일부 어른들은 나름의 사정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유를 불문하고 기분은 정말 좋지 않았습니다.


그 어른들은 대접받을 자격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한창 날카롭던 시절의 내 마음은 그랬습니다. 그러한 태도를 보여주며 잘하라고 훈계하니 곱게 들릴 리가 없었죠. 그러지 않아도 이미 나에겐 ‘말이 안 통하는 어른’이었으니까요. 게다가 어떤 어른들은 말하기를 매우 좋아했습니다. 물론 자신의 이야기만 하는 경우가 많았지요. 얘기를 하자고 하지만 그것이 ‘대화’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일방적인 통보에 가까웠어요.


공부는 왜 해야 할까?

내가 하고 싶은 건 뭐지?

나는 왜 태어났을까?


십대가 되고부터는 늘 가슴 한켠이 답답했습니다. 항상 어떤 질문이 따라다녔거든요. 어릴 때와는 뭔가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에 낯선 변화가 있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었습니다. 늘 보던 것도 달리 보였어요. 궁금한 것이 차고 넘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속 시원히 설명해주지 않았어요. 아니, 그 이전에 제대로 물어보지도 못했다는 게 더 정확합니다. 내 말을 진지하게 들어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애초에 부모님이든 선생님이든 무언가에 대한 설명은 잘 안 하셨으니까요. 그래서 내 마음을 꼭꼭 숨겨 두고 지냈습니다. 말해 봐야 대답 대신 쓸데없는 소리 한다고 핀잔만 들을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인지 그 상황을 바꾸려 노력하지도 않았습니다. 시작도 전에 입을 다물고 귀를 닫아 버렸습니다. 스스로 키운 불신 때문에 어른들이 하는 말에 반발심은 더욱 거세졌지요. 꾸중이나 조언을 들으면 그에 대응하는 논리를 만들어 내기에 바빴어요. 나에 대한 어른들의 의견은 모두 틀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역시 어른들은 뭘 몰라’ 하면서요.


그렇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하고 높고 두꺼운 벽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결국 아무도 나에게 다가오지 못했어요. 어쩌면 다가오려는 시도를 알아채지 못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나의 말에 귀 기울이며 함께 고민해 줄 사람이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 건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으니까요.


갓 성인이 된 후의 나는, 아마도 내가 갖게 된 ‘나이’에 꽤 빠져 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여러분과 같은 십대들을 대하는 게 정말 힘들었어요. 너무 어려 보이더라고요.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였어요. 한심하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꼭 같은 시기를 겪어 놓고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것도 불과 몇 해 전이었는데 말이죠. 모든 사람이 각자의 고충을 안고 또 견디고 이겨내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던 겁니다. 내 눈엔 그저 나 자신만 보였나 봅니다. 여전히 부끄럽네요.


시간이 조금 더 흐른 후에는 다행히도 여러분의 그 생기발랄함이 좋아졌습니다. 그 뚜렷한 개성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새로운 것을 대할 때도 편견과 주저함 없이 심취하는 그 모습이 참 부럽기도 했고요.


그와 동시에 안쓰러운 마음도 생겼습니다. 학생들에게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어요. 어른들의 어떤 마음이 여러분을 그 길로 몰아가는지 알고는 있지만, 한편으론 그것들 전부가 모두에게 필요한 건지 의문이 생기기도 했지요. 당장 바뀔 수 없는 현실에 한숨이 나왔습니다. 여전히 여러분의 소리를 잘 듣지 못하는 어른들일 테니 올바른 소통이 이루어지기도 힘들 거고요. 세상은 늘 변하고 있지만, 그에 따라 사람들도 어제와 달라지고 있음이 확실하지만, 누구나 그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닐 테니까요. 물론 나도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사실 어른들은 여러분만큼 바쁩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부끄러움도 많아요. 그래도 어떤 건 자랑하고 싶습니다. 칭찬받고 싶거든요. 넓게 보면 사람 마음 비슷하더라고요.


또 하나, 어른들은 몇몇 분야를 빼고는 매우 서툴러요. 그래서 많은 어른이 여러분과의 대화에 어려움을 느낍니다. 대화가 종종 산으로 가요. 어떤 날은 좋은 말을 굳이 가시로 만들어서 찌르기도 하지요. 마음을 전달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말입니다. 힘이 되는 말로 위로해 주고 싶고, 잘하고 있다고 칭찬해 주고 싶은데 곧잘 어긋납니다. 궁금해하는 것을 함께 찾아 보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서도 내가 모른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아 대충 얼버무리기도 해요. 당연히 대화는 점점 줄어들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지요.


하지만 대화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고 싶은 말도 듣고 싶은 말도 아주 많거든요. 어른들 역시 미처 전하지 못한 말이 있고요.


내가 어렸을 때 궁금해하던 것 혹은 듣고 싶었던 말들을 떠올려 봤습니다. 여러분이 사는 세상은 내가 지낸 그곳과 매우 다르겠지만, 여러분의 마음가짐 또한 나와 같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분명 몇 가지 통하는 부분은 있을 테니까요.


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자진해서 나설 만큼 적극적인 사람도 아니에요. 하지만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 이 정도 의무감은 가져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나의 말이 모두 옳을 수는 없습니다. 세상 어딘가에는 이런 의견을 가진 어른도 있다고 기억해 주길 바랄 뿐입니다. 그중 조금이라도 취할 부분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을 갖겠습니다.